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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노벨상]노벨은 왜 텔로미어를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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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노벨상]노벨은 왜 텔로미어를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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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버섯이 핀 쭈글쭈글한 피부,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시력. 1918년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난 아이(벤자민 버튼)는 노인 같은 외모로 세상에 태어났다. 벤자민의 괴상한 외모에 놀란 아버지는 그를 낳다 아내마저 목숨을 잃자 ‘노인 아이’를 도시의 한 양로원 앞에 버린다. 그의 나이 12살. 해가 지날수록 자신이 젊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때쯤 벤자민은 할머니를 찾으러 양로원에 온 6살 꼬마 데이지를 만난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수차례. 벤자민과 데이지는 마침내 함께 하게 되지만 그는 날마다 어려지고 데이지는 늙어만 간다. 시간의 역행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늙어서 태어나 아기가 돼 죽음을 맞는다는 상상력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말 그대로 시간이 거꾸로 흘렀기 때문이다.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렇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는다. 사람들은 왜 늙어가는 것일까. 데이지가 늙는 건 노화시계 ‘텔로미어’때문 답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에 있다. 지난 5일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상선정위원회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61)와 존스홉킨스의대 캐럴 그리더 교수(48),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 잭 조스탁 교수(57)를 선정했다. 위원회는 “염색체 끝에서 세포의 수명을 알려주는 생체시계인 텔로미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세 사람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람의 체세포는 46개 염색체(상염색체 44개+성염색체 2개)로 이뤄져 있다. 부모에게서 각각 23개씩 받는다. 염색체는 유전정보 DNA를 담고 있고, DNA는 다시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네 염기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네 가지 염기만 있을 경우, 염색체 복제가 온전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ATGCGGTAG라는 DNA가 염색체에 담겨 있다고 하자. DNA 복제효소가 각 염기를 지나며 A→G 방향으로 복제를 시작한다. 복제는 끝에 있는 G염기 앞에 있는 A염기까지만 이뤄진다. 더 이상 염기가 없어 효소가 G염기를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G염기를 복제하려면 해당 염기 뒤에 또 다른 염기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텔로미어(telomere)’다. 텔로미어는 ‘끝’을 뜻하는 그리스어 ‘telos’와 ‘부위’를 가리키는 ‘meros’의 합성어다. 텔로미어는 DNA 양 끝에 붙어있는 ‘무의미한’ 반복 염기서열(TTAGGG)이다. 다시 예로 돌아가면 DNA는 AATGCGGTAG-TTAGGG-TTAGGG-TTAGGG-TTAGGG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 염기까지 온전히 복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세포분열(DNA 복제)이 한 번, 두 번 반복될수록 텔로미어의 길이는 짧아진다. 마찬가지로 DNA 복제 효소가 맨 끝은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것이 언론에서 ‘세포가 분열할수록 텔로미어가 짧아진다’고 말하는 실제 의미다). 사람 체세포에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는 보통 5~10kb(1kb는 DNA 염기 1000개 길이). 세포분열을 할 때마다 50~200bp(1bp는 1염기 길이)만큼 짧아진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다가 노화점(사람의 경우, 1~2kb)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세포는 복제를 멈춘다. 노화 상태에 빠진 세포는 결국 죽는다. ‘세포분열→텔로미어 길이 짧아짐→노화점보다 짧아지면 세포분열 멈춤→세포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정상적인 노화 과정이다. 데이지가 늙는 것도 텔로미어라는 ‘노화 시계’ 때문이다(벤자민 버튼은 역으로 텔로미어가 계속 길어진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임대식 KAIST 생물과학과 교수는 “텔로미어는 노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표지자”라면서도 “사람보다 텔로미어 길이가 긴 쥐(80kb)는 사람보다 빨리 죽기 때문에 단지 텔로미어 때문에 노화가 일어난다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텔로미어에서 보면 노화와 암은 동전의 양면 흥미로운 점은 암세포의 85%는 세포분열을 격렬하게 하지만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탓에 암세포는 죽지 않는다. 계속 증식한다. 텔로미어 관점에서만 본다면, 노화와 암은 반대의 선에 서 있는 것. ‘동면의 양면’인 셈이다. 이는 텔로미어를 노화점 이상으로 유지하는 텔로머라제 효소 때문이다. 텔로머라제는 정상 체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있는 특이적인 효소로 텔로미어를 합성한다. 과학계에서는 암세포의 텔로머라제 활성을 떨어뜨리면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암세포의 죽음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은 보통 3가지 방법으로 치료했다. 외과수술로 암 덩어리를 잘라내던가 항암제로 암 세포를 죽이거나 방사선으로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몸 안에 있는 암 세포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머리가 빠지는 등 여러 부작용도 나타났다. 하지만 암 세포의 텔로머라제 효소를 감소시켜 암 세포를 인위적으로 자연사하게 하면 부작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텔로머라제를 이용한 항암치료방법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정인권 연세대 생명시스템대 교수는 “항암요법은 보통 왕성하게 세포분열을 하는 세포를 죽이도록 디자인 돼 있어 상대적으로 암세포를 많이 죽이는 것뿐이지 다른 세포들도 죽인다”고 말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근세포는 활발하게 세포분열을 한다. 그는 “텔로머라제의 활성을 줄이는 것은 암세포 특이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부작용을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지난 수십 년 간 암을 정복하기 위해 엄청나게 투자했는데도 치료율이 크게 좋아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암 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진화하는 세포”라며 “암 세포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암이 단지 텔로미어 길이를 줄이면 치료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것”이라고 말했다. 암세포 정복이란 동전을 뒤집으면 장수(長壽)의 꿈이 엿보인다. 텔로머라제가 정상 체세포에서 작동해 텔로미어 길이가 노화점 이하로 짧아지는 것을 막는다면, 세포의 노화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시황의 불로초가 텔로머라제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텔로머라이제가 과하게 활성화될 경우, 암세포로 변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염색체 섞이는 것 막아 텔로미어는 운동화 끈을 감싼 플라스틱의 역할도 한다. 끈의 양 끝이 헤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플라스틱처럼 염색체 끝을 보호하는 것. 만약 텔로미어가 없다면? 염색체에 담긴 DNA가 흘러나오거나 뒤섞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개의 염색체가 붙어 하나의 염색체가 될 수도 있다. 임 교수는 “염색체 안에 있는 DNA가 섞이면 유전자 과다발현이 되거나 과소발현이 돼 돌연변이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텔로미어는 이같은 돌연변이를 예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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