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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컬에세이]홍등(紅燈), 슬픔에 공감하기에는 너무나 매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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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컬에세이]홍등(紅燈), 슬픔에 공감하기에는 너무나 매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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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국 국립발레단의 발레극 ‘홍등’을 감상했다. 오래 전 영화로 본 ‘홍등’의 영상미와 주연배우 공리의 연기가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당시 연출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이 이번 발레극도 연출한다기에 영화 이상의 감동을 기대했다. 정말 무대의 영상미는 기대 이상이어서 출연 무용수들의 춤조차 빛이 바랠 정도였다. 봉건시대 습속이 여전히 남아있는 20세기 초 중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홍등’은 영화에서 발레극으로 형식을 바꾸면서 스토리가 좀 더 단순하게 바뀌었다. 나이 많은 부자에게 두 번째 첩으로 팔려간 여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지만 결국 굴복하고 만다. 어느 잔칫날 부른 경극단에서 옛 애인을 발견한 주인공은 다시 사랑을 불태운다. 두 번째 첩이 들어온 뒤 사랑을 뺏긴 첫 번째 첩은 이들의 밀회를 알고 남편에게 고자질한다. 두 사람은 잡히고 여전히 냉담한 남편에 절망해 난동을 부리던 첫 번째 첩까지 매를 맞고 죽는 장면으로 무대의 막이 내린다. 극을 보면서 언어가 아닌 동작이나 복장, 소품으로 스토리와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장르의 한계가 오히려 놀라운 창조성의 원동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여인의 복장만 해도 그렇다. 본부인은 녹색 옷에 녹색 토슈즈이고 첫 번째 첩은 짙은 노란색(주황색조를 띠는), 두 번째 첩은 빨간색이다. 첫 번째 첩을 들였을 때 좌절과 분노를 맛보았을 본부인은 담담히 새로운 사태를 받아들이는데 차분한 녹색이 잘 어울렸다. 자신이 박힌 돌을 빼냈다가 이번엔 뽑힌 신세가 된 첫 번째 첩은 애정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새로 온 여인을 질투하는데 역시 복장 색상과 잘 어울렸다. 노란장미의 꽃말이 질투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주인공의 빨간색은 다소 마음에 걸렸다. 두 번째 첩이 된 것에 대해 전혀 열정이나 의욕을 보이기는커녕 팔려온 신세를 한탄하는 역할이 아닌가. 왜 장이모우 감독은 슬픔을 표현하는 무채색을 쓰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유난히 두 번째 첩 역할을 하는 배우에게 더 시선이 갔고 강렬한 인상이 남았다. 최근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앤드류 엘리어트 교수팀이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남자들이 빨간색 복장을 한 여성들을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동일한 여성이 여러 가지 색상의 옷을 입고 있을 경우 유독 빨간색일 때 매력도가 높게 나왔는데 설문에 참가한 남성들은 차이가 옷 색상뿐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반면 여성들은 이런 경향을 보이지 않았다. 엘리어트 교수는 영장류 암컷이 배란기가 되면 신체부위가 붉게 변해 임신 가능한 상태임을 알리는 것과 관련된 반응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즉 여성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히 원초적(primitive)인 무의식적 판단에 의존하는 셈이다. 결국 장이머우 감독은 첩을 들이는 남자의 시각에서 욕망을 자극하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색상을 택해 여주인공에게 입힌 셈이다. 그래서인지 스토리상으로는 비극적인 운명의 여성을 애도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는 붉은색이 맴도는 아름다운 몸동작의 잔상이 압도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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