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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인만, 쾌활함 속에 가려진 사랑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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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인만, 쾌활함 속에 가려진 사랑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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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밸런타인데이가 일요일인데다 설날과 겹쳐 경기가 예전만 못할 것이라고 한다. 밸런타인데이에 직장 동료들에게 초콜릿을 돌려야할지 고민하던 여성들에겐 다행일 수도 있겠다. 과학자의 경우 밸런타인데이에 어울릴만한 인상적인 러브 스토리를 좀처럼 떠올리기 어렵다. 그런 드문 예가 리처드 파인만과 그의 첫 아내 알린의 슬픈 사랑이 아닐까.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노벨상을 받은 업적과 함께 다채로운 에피소드로 아인슈타인만큼이나 유명한 과학자다. 1988년 사망한 이후 그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왔고 국내에도 많이 소개됐다. 1960년대 초 파인만이 칼텍(캘리포니아공대)에서 한 강의를 기반으로 집필한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물리학 교과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이 됐고 3권 모두 한국어판이 나와 있다. 파인만하면 개구쟁이처럼 신나는 표정으로 봉고를 두드리는 사진이나 세례를 주는 사제처럼 양 팔을 벌린 채 강의를 하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물리학자 파인만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장면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파인만의 이런 쾌활함이나 카리스마 뒤에는 젊은 시절 겪은 사랑의 아픔이 새겨져 있다. ● 맨해튼 프로젝트 참여로 인생이 바뀌어 기자가 파인만의 삶에 대해 다소 알게 된 건 1994년 ‘No ordinary genius’란 제목의 책을 우연히 구해 읽으면서다. ‘보통이 아닌 천재’나 ‘천재 중의 천재’ 정도로 번역할 만한데 크리스토퍼 시케스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편집한 책이다. 시케스는 파인만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두 편을 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the illustrated Richard Feynman(삽화로 보는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부제가 알려주듯 책 속에는 다채로운 자료사진이 가득하다. 또 시케스가 글을 쓴 게 아니라 파인만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글이 번갈아 편집돼 기록된 독특한 구성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우리글로 번역이 안 된 것 같다. 파인만이 유명해진 뒤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볼 때면 기자는 16전 년 이 책에서 본 젊은 시절 파인만을 담은 사진 한 장이 떠오르곤 했다. 1942년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칠 무렵 파인만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당시 24살로 물리학에 대한 열정에 불타던 그는 학문을 계속할지 나치와의 원자탄 개발경쟁에 힘을 보태야할지 고민하다 결국 후자를 택한다. 위의 사진은 1942년 12월 맨해튼 프로젝트 기지가 있는 로스앨러모스에 모인 과학자들이 누군가의 발표를 경청하는 모습이다. 두 번째 줄 왼쪽에 프로젝트를 이끈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보이고 그 오른쪽 옆에 입술을 꼭 다물고 뭔가를 적고 있는 파인만이 있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에는 전설적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보인다. 오펜하이머는 당시 38세로 거대 프로젝트의 책임자로는 젊은 편이었지만 천체물리학에서 핵물리학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섭렵한 물리학의 대가였다. 이런 사람이 막 박사학위를 받은 신참 물리학자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무척 신선했다. 또 대가 옆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뭔가를 해 보겠다’는 표정이 역력한 파인만의 진지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자는 1993년 기업체 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신입사원이 건방지다’는 이유로 팀장한테 찍혀서 고생하다 1994년 팀을 옮겨 한시름 놓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대학원 때는 일(연구)에 있어서는 교수나 선배들 앞에서 눈치 안 보고 의견을 말하고 그 분들도 그런 걸 좋아했는데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다가 된통 당했다. 그 뒤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화가 부자연스러운 곳이 많다는 걸 깨달았고 기자가 대학원 생활을 하던 실험실이 우리나라에서는 예외적인 곳임을 깨달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위의 사진이 떠오르곤 했다. “내가 로스앨러모스에 도착했을 때, 난 그동안 말로만 듣던 유명한 과학자들을 모두 만났고, 그건 내게 엄청난 기쁨이었다.” 인류를 위해 지적 호기심을 희생한다는 심정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파인만은 이들을 만나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행운을 붙잡았는지 깨달았다. 더욱 놀라운 건 로스앨러모스의 분위기였다. 파인만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로스앨러모스는 너무나 민주적이었다. 우리는 오펜하이머의 사무실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누구나 누구에게 말을 할 수 있었고 우리가 우리 자리를 알아야 할 그런 위계질서 따위는 없었다. (중략) 오펜하이머는 심오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두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기술적인 모든 사항을 얘기할 수 있었는데 그가 그 모든 걸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들을 요약하고 결론을 내리는데 능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그의 집에 자주 가곤했다. 놀라운 사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파인만에게 또 다른 행운은 역시 이미 유명했던 코넬대의 물리학자 한스 베테가 파인만을 대화 파트너로 찍었다는 사실이다. 베테는 기발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파인만을 찾아가 의견을 구했는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헛소리 마세요!” 같이 파인만이 격렬하게 반대할수록 더 좋아했다고 한다. 파인만은 물리적 직관 뿐 아니라 수학 실력도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파인만이 로스앨러모스에서 한 일은 어떤 설계가 타당한지 수치적으로 검토하는 일이었다. 당시는 컴퓨터가 막 만들어지던 때라 사람이 계산해서 시뮬레이션을 한 셈인데, 그의 팀을 “인간 컴퓨터가 비인간적인 속도로 작업을 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베테는 그를 팀장으로 발탁했고 프로젝트가 끝난 뒤 코넬대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파인만은 양자전기역학(QED) 이론을 완성해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그의 인생을 바꾼 셈이다. ●결핵으로 첫 아내 잃어 파인만은 15살 때 한 파티에서 그보다 두 살 어린 소녀를 만났는데 그의 첫 아내인 알린이다. 둘은 그 뒤 죽 사귀었고 파인만이 대학(MIT)에 들어가 집에 없을 때도 알린이 찾아와 한 식구처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목이 부어 병원에 찾아갔는데 결핵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당시 결핵은 심각한 병이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파인만이 알린과 결혼을 서두르려고 하자 어머니가 반대했다고 한다. 파인만은 알린을 뉴저지에 있는 병원에 데려가는 길에 결혼식을 올렸고 신부는 바로 요양소에 들어갔다. 파인만이 로스앨러모스로 갔을 때 그의 사정을 안 오펜하이머가 그곳에서 160km 떨어져 있는 앨버커키의 요양소로 아내를 옮기게 조치해줬다. 파인만은 주말이면 요양소를 방문했다. 1944년 요양소에서 누군가가 찍은,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한 장은 파인만 부부의 모습이다. 침대에 누운 채 책을 읽고 있는 알린 곁에서 파인만은 그녀의 한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아내를 응시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알린은 이듬해 사망했다. 아내가 죽은 지 만 2년이 더 지난 1947년 10월 파인만이 아내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의 슬픔이 삶에 얼마나 깊은 그늘을 드리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난 여러 여자를 만났고 그 중에는 함께 있고 싶은 멋진 아가씨들도 있었지. 하지만 두세 번 만나면 다들 재가 돼 사라지는 것 같아. 내게는 당신만이 남겨져 있지. 당신만이 진짜야. (중략) 추신. 이 편지를 부치지 못한 걸 용서해줘. 하지만 난 당신의 새 주소를 알지 못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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