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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리학의 아킬레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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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리학의 아킬레스건

2007.05.08 14:10
라인 부부의 헌신적 노력 심령연구는 19세기 후반부터 3단계를 거쳐 초심리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하게 된다. 제1단계는 심령주의(spiritualism)의 극적인 번성이다. 심령주의는 뉴욕 교외의 조그만 마을에 살았던 대장장이 존 폭스의 집안에서 비롯된다. 폭스 가족이 이사온 1847년 겨울부터 다음해 봄까지 열네살 된 딸과 열두살 먹은 막내딸이 침실과 지하실에서 톡톡 두드리는 소리(rap)를 듣게 된다. 폭스 자매는 불행한 영혼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손가락을 튕기거나 손뼉을 쳐서 문답을 시도했는데, 놀랍게도 그 망령은 랩 소리로 의사를 전달했다. 두 소녀가 죽은 사람의 영혼과 대화를 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펴져나갔다. 이를 계기로 육체가 사멸한 뒤에도 영혼이 존재하며, 죽은 사람은 영매를 통해 산 사람에게 뜻을 전달한다는 심령주의가 출현한다. 영매는 망자와 생자가 의사를 통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심령주의에 대한 서구 사회의 열광적인 관심에 편승하여 전성시대를 누린다. 캄캄한 방에서 랩 소리를 내거나 주문을 외는 따위의 갖가지 강신술을 동원하였으나 속임수이기 일쑤였다. 심령주의는 종교로 발전되는데 실패하여 시들해졌으나 학자들의 심령연구에 불을 지폈다. 제2단계는 심령주의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일군의 학자들이 단체를 결성하면서 시작된다. 1882년 영국 런던에 모인 학자들은 심령현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구심점으로 심령연구회(SPR,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를 창립한다. SPR의 발족은 심령연구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사례연구를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실험을 시도함으로써 심령연구가 비로소 과학적 얼개를 갖추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성과는 1886년 발간된 ‘생자의 유령’이라는 1천3백쪽 짜리 책이다. 유령 연구를 집대성한 이 책은 향후 초심리학의 사례연구에 주춧돌을 놓은 업적으로 평가된다. 열정적인 설립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SPR이 무기력해짐과 아울러 심령연구의 영웅시대는 막을 내린다. 20세기 초반까지 심령연구는 숨을 죽이게 된다.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면서. 제3단계는 무대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뀌면서 1927년 조셉 라인에 의해 막이 오른다. 라인은 1920년 루이자 라인과 결혼한다. 둘다 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심령연구에 심취한다. 라인은 대학교수 자리와 식물학을 포기하고 심령연구를 위해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한다. 1927년 듀크대학의 제안을 받아 심리학과의 책임자가 된다. 1930년에는 대학 안에 초심리학 연구실을 만들어 독자적인 심령연구에 착수한다. 이를 계기로 심령현상을 엄밀한 실험에 의하여 연구하는 과학이라는 의미에서 초심리학이라는 용어가 채택되었다. 라인은 1934년 ‘초감각적 지각’을 펴낸다. 심령연구의 역사에 이정표를 세운 명저로 평가된다. 라인은 1965년 정년퇴임하면서 듀크대의 연구실을 ‘초심리학 연구소’로 확대개편한다. 이 연구소는 1995년 라인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하여 라인연구센터로 개명된다. 오늘날 초심리학의 메카이다. 라인은 1980년 사망할 때까지 아내와 함께 초심리학 연구에 생애를 건 독보적인 이론가이다. 의사과학 또는 반과학으로 비난 라인이 터를 닦은 초심리학 연구는 몇몇 열성적인 후계자들, 이를테면 ESP의 찰스 호노턴, PK의 헬무트 슈미트, 로버트 얀, 딘 라딘에 의해 학문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라딘은 ‘심령현상의 과학적 진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의식의 우주’(1997)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과학으로 수용되는 4단계, 즉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그 아이디어가 기존의 과학법칙을 위반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단계(1단계), 회의론자들이 서서히 그 아이디어를 수긍하지만 효과를 과소평가하는 단계(2단계), 과학자의 주류가 그 아이디어의 중요성과 효과를 인정하기 시작하는 단계(3단계), 그 아이디어의 버판자들이 도리어 지지자가 되는 단계(4단계) 중에서 초심리학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힘든 대목인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도중에 있다고 주장한다. 초심리학이 바야흐로 과학자들의 극렬한 비판에 시달리던 시기를 마감하고 과학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라딘의 기대와는 달리 초심리학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거센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가령 ‘초상현상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위원회’(CSICOP)는 초심리학을 의사(擬似) 과학 또는 반과학으로 몰아붙인다. CSICOP은 사이캅(sci-cop)이라 발음한다. 경찰 기능을 가진 과학자 조직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이다. 이들이 초상현상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초심리학의 주장이 현재의 과학이론과 상층됨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을 수정시킬만큼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결코 과학으로 성립될 수 없는 사이비 과학이라는 것이다. 1976년 폴 커츠 주도로 설립된 사이캅은 ‘스켑티칼 인콰이어러’라는 잡지를 펴낸다. 주요 필자는 커츠를 비롯해서 레이 하이먼, 제임스 알콕, 제임스 랜디, 수잔 블랙모어, 캔드릭 프래지어 등 쟁쟁한 논객들이다. 초심리학의 아킬레스건 초심리학을 둘러싼 논쟁의 초점은 반복가능성(replicability)으로 모아진다. 무릇 과학은 한 현상이 발견되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과정을 통해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초심리학이 제시한 실험결과가 이러한 과학의 전제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는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복가능성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심령현상의 본질에서 비롯된다. 가령 텔레파시를 되풀이해서 실험했을 경우 유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물론 비판자들은 이러한 초심리학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진다. 초심리학에서는 반복가능성의 난관을 메타분석(meta-analysis)으로 돌파한다. 말 그대로 분석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초심리학자들은 라인 이후 50여년 간 실험을 통해 수집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는 과학적 증거로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메타분석으로 얻은 괄목할만한 성과는 호노턴의 텔레파시 실험분석이다. 호노턴의 노력 덕분에 ‘심리학 개론’의 1990년 개정판에 사이현상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애트킨슨 등 4명이 집필한 이 책은 미국 대학생들의 심리학 교재로서 가장 인기가 높다. 이 책의 저자들이 초심리학에 대한 유보적인 입장을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텔레파시가 언급된 사실 자체가 고무적인 사태 발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메타분석의 효율성에 자신감을 얻은 초심리학자들은 심령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기염을 토한다. 초심리학은 과학이 현 상태에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람이 정보를 얻거나 물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오늘날 과학이 자연의 본질과 인간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모든 과학의 법칙이 재검토 되어야 하며 우리의 세계관 역시 수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심리학을 비롯한 초상현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의 당사자들은 찬반 어느 쪽의 입장에 서있건 좀더 성실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임해야 할 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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