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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법, 성폭력 막을 묘약인가 인권침해 독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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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과도한 신체적 형벌은 인권침해다.” “일종의 정신적 질환에 대한 약물치료일 뿐이다.”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일명 화학적 거세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치료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만큼 법안의 부작용 가능성은 없는지 살펴봤다.》 친구들과 어울려 강도 강간 폭력을 일삼던 알렉스는 어느 날 농장에 혼자 있는 부인을 겁탈하려다 조각상으로 부인의 머리를 내리쳤다. 정부는 교화될 여지가 없는 그를 ‘루도비코법’의 첫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2주간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받은 그는 폭력이나 성적 충동을 느끼면 극심한 구토 증세를 보이는 인간으로 ‘개조’된다. 1971년에 제작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는 권력기관에 의한 인간성 말살을 풍자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국회가 지난달 29일 본회의에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안’(화학적 거세법)을 통과시키면서 ‘제2의 루도비코법’이 시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법안에 따라 내년 7월부터 19세 이상 성인이 16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하면 법원 판결에 따라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받게 된다. 2008년 9월 성범죄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하는 제도가 도입되고, 올해 1월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제도가 시행됐다. 그럼에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가 그치지 않자 논란이 많았던 화학적 거세(去勢) 방안까지 도입된 셈이다. ○ 논란 1 이에 따라 상습적 아동 대상 성범죄자들은 법원에서 장기간의 징역형과 함께 약물치료, 전자발찌 부착, 신상정보 공개 명령 등 이중 삼중의 보안처분을 받게 된다. 화학적 거세법은 초범도 약물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본인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성범죄 대책에 비해 훨씬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성적 충동을 약물로 억제하는 ‘치료’ 대책이지만 ‘거세’라는 징벌적인 표현이 여론의 지지를 얻는 데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따져 보면 국내 입법이 지나친 인권침해 요소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등에선 아동 성폭력 재범자는 법원 결정에 따라 반드시 약물치료를 받게 했고 초범도 죄질에 따라 약물치료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대상자에게 부작용을 고지할 뿐 동의는 받지 않는다. 본인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대부분 고환을 적출하는 외과적(물리적) 거세에 한해서다. 플로리다 주는 본인이 신청하면 화학적 거세 대신 외과적 거세를 받을 수 있게 했다. 텍사스 주는 본인 동의를 받아 외과적 거세만 하며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도 마찬가지다. 법무부 관계자는 “외국에선 수십 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범죄자가 가석방을 조건으로 약물치료에 동의하는 등 ‘숨겨진 강제성’을 띤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논란 2 2008년 9월 발의된 화학적 거세법은 국회 법사위원회 회의를 거치면서 법안 명칭과 주요 내용이 바뀌었다. ‘화학적 거세’라는 용어는 ‘성충동 약물치료’로 순화됐지만 피해자 연령은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확대됐고, 치료대상자 연령은 25세 이상에서 19세 이상으로 낮아졌다. 치료 대상이 크게 늘어났지만 이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 관계자는 “청소년보호법 등 국내 입법과 해외 입법 사례를 비교 검토해 연령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정신과 전문의의 의견을 들어 검사가 치료 명령을 청구하되 법원이 기간을 결정하게 한 것도 문제다. 해외에선 치료를 맡은 교정당국이 전문가가 포함된 심사위원회 등을 열어 치료 기간 연장 여부 등을 결정하지만 국내법은 법원이 치료 기간을 정하도록 해 치료가 이미 끝난 사람도 계속해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치료 기간을 연장하려고 해도 매번 법원의 결정을 받아야 한다. ○ 논란 3 치료제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법무부가 약물치료제로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은 루프론(Lupron). 현재 미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 화학적 거세에 이용되는 이 약은 일시적으로 성적 충동이 강해지는 부작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의 체질에 맞는지 등을 살피는 임상시험도 아직 남아 있다. 흔히 화학적 거세제로 쓰이는 데포 프로베라(Depo Provera)도 고혈압, 고혈당 등 부작용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치료제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입 비용도 너무 많다. 루프론을 쓰면 1인당 연간 투약 및 검사비용으로 500만 원, 감정비와 인건비로 180만 원이 든다. 법무부는 연간 기소되는 성도착 범죄자가 100여 명으로 시행 첫해 치료비용이 9억 원가량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최장 15년간 약물치료를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시행 15년째에 필요한 예산은 80억 원이다. 현재 복역 중인 성범죄자가 가석방 후 약물치료를 받게 될 때는 비용을 스스로 내게 할 방침이지만 이들이 경제적 능력이 없을 때 국가가 부담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최창봉 동아일보 기자 ceric@donga.com

▼ 여론 들끓자 ‘사후약방문’ 입법 ▼ 2008년 첫 발의… 찬반 공방 “여론수렴 제대로 했나” 비판 ‘화학적 거세’ 관련법이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것은 1년 10개월여 전이다. 하지만 인권침해 논란으로 진전이 없다가 최근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사후약방문식으로 서둘러 심의, 입법됐다. 국회에서 ‘화학적 거세’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9월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부산 북-강서갑)이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면서부터다. 2007년 12월 경기 안양시에서 혜진, 예슬 양 살해사건이 일어난 뒤 거론되던 화학적 거세에 대한 입법이 시도된 것이다. 그러나 2008년 11월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선 “아무리 범죄자라도 형벌과 별도로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는 약물을 인체에 주입하는 것은 인권침해다”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입법에 제동이 걸렸다. 2009년 9월 ‘조두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자 언론들은 박 의원의 법안을 주목하면서 찬반논쟁을 벌였다. 그해 11월 국회에서 실시된 공청회에서도 찬반이 뚜렷이 갈렸다. 이런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올 1월 ‘김길태 사건’이 터지자 국회가 계류 중인 수십 건의 아동성폭력 관련법을 처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다. 여야는 3월 말 아동성폭행관련법을 일괄 입법했고 두 차례의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지 않았던 화학적 거세 방안도 심의했으나 본회의 상정 대상에는 제외됐다. 그러다 6월 초 학교에서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이 터지자 국회 내에서 법안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어 28일 서울 동대문구 초등생 성폭행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여야는 한 차례 소위 심의 뒤 화학적 거세 법안처리에 전격 합의했다. 이어 29일 단 하루 만에 법사위 소위, 법사위 전체회의, 본회의 모두를 통과해 법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애초 발의됐던 ‘본인 동의에 의한 약물치료’ 조항이 판결에 의한 강제조항으로 바뀌었고, 처벌 대상자도 성장이 완전히 끝난 ‘25세 이상’에서 ‘19세 이하’로 결정됐다. 이 때문에 “법안이 갑작스럽게 통과되면서 제대로 된 심의를 거치지 못해 위헌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최우열 동아일보 기자 dnsp@donga.com ▼ 남성호르몬 분비 억제제 ‘루프론’ 유력 ▼ 투약 초기 2, 3주간 성욕 되레 높아지기도 ■ 어떤 약물 사용하나 ‘화학적 거세’에 쓰일 약물로는 미국의 메이저 제약업체 애벗래버러토리스사에서 생산하는 전립샘암 치료제 루프론이 가장 유력하다. 루프론이 화학적 거세에 사용되는 이유는 성욕과 발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남성호르몬이 부족해지면 뇌 가운데 있는 시상하부에서 황체형성호르몬방출호르몬(LHRH)이 분비된다. LHRH가 증가하면 뇌하수체에서 황체형성호르몬(LH)이 흘러나오는데 이는 혈액을 타고 내려가 고환 속의 레이딕 세포를 자극해 성욕의 근원인 테스토스테론을 분비시킨다. 이 과정을 중간에서 차단해야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억제할 수 있는데 루프론은 이 중 LHRH의 생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루프론은 LHRH와 유사한 호르몬제이기 때문에 주사를 맞은 뒤 일시적으로는 체내에 LHRH가 증가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LHRH의 분비를 억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국내 병원에서 처방하고 있는 루프론은 주사제 용량에 따라 효과지속 기간이 4주와 12주짜리가 있다. 1회 투약 비용은 각각 22만 원, 59만 원 선이다. 국내 제약사가 만든 비슷한 성분의 카피(복제)약품은 4주형을 기준으로 할 때 3만∼4만 원 싸다. 비용은 주사제와 인건비 등을 합쳐 연간 680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 김대성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루프론은 투약 후 초기 2, 3주간은 남성호르몬이 증가해 오히려 성욕이 높아질 수 있어 성 범죄자에게 사용할 때에는 주의와 관찰이 필요하다”며 “드물게는 우울증, 간 기능 이상, 발열 증세 등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화이자사에서 생산하는 데포 프로베라도 후보 약물로 거론된다. 여성용 피임주사약이며 전립샘암 치료제로도 쓰이는 데포프로베라는 남성에게 투약하면 성욕 감퇴 효과가 있다. 하지만 장기 투약하면 심혈관계 질환, 골밀도 저하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화학적 거세에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견해도 있다. 전성철 동아일보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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