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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약사 부부 둘째아이 키우기]위생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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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13일 09:18 프린트하기

아내가 변했다. 아이 둘을 낳더니만 변해도 너무 변했다. 요즘 집안이 여간 지저분한 게 아니다. 방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장난감으로 어질러져 어수선한 데다 가구 위엔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다. 아내는 지원이가 지저분한 장난감을 빨고 있어도, 승민이가 꼬질꼬질한 손으로 손톱 밑에 낀 때를 파먹고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승민이만 키울 땐 이렇지 않았다. 위생관념이 철저했던 아내는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승민이 손을 닦아 주었다. 밖에선 피곤하다고 늘어져 있던 사람이 집에 돌아오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승민이를 씻겼다. 또 구석구석 먼지를 닦으며 나한텐 외투 좀 탈탈 털라는 둥 장난감 좀 소독해 달라는 둥 잔소리를 했다. 그렇게 깔끔하던 아내가 이제는 청소도 게을리하고, 점점 뻔뻔스러워지고 있다. “애 키우는 방에 먼지가 이게 뭐야?” “왜? 먼지가 어때서? 애들은 좀 더럽게 키워야 면역력도 생기고 튼튼해진다니깐!” 좀 더럽게 키워야 튼튼하다는 게 위생가설이다. 알레르기, 면역학 관련 학자들은 도시와 농촌,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비교연구를 통해 먼지가 많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는 아이일수록 천식 등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에 적게 걸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실을 토대로 해서 위생가설이 생겼다. 집 안팎에 떠도는 먼지에는 내독소가 있다. 내독소는 세균의 세포벽에 들어 있는 일종의 독소로 사람과 가축의 대변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것이 면역계를 자극하여 천식 등을 일으키는 알레르겐에 대한 방어력을 만들어 준다. 한번에 많은 양의 독소가 피부에 닿으면 유해하지만 적은 양을 자주 접촉하면 백신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릴 때 내독소에 많이 노출된 아이는 내독소에 대한 면역체계가 활성화돼 알레르기가 잘 생기지 않는 데 반해 평소 깨끗한 실내환경에서 생활한 도시 아이들은 성장 후에 사소한 먼지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알레르기 체질이 된다는 것이다. 위생가설은 아직 대규모 역학조사와 세밀한 검증과정이 더 필요하지만 가정의 청결도에 비례해 천식과 아토피 발생률이 급상승한 사실 등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도 많다. “이번 주말엔 시골에 내려가자. 시골 바람이 애들 면역력 키워 주는 데 좋잖아.” 내 눈엔 주말에 애들도 맡기면서 장모님이 해 주는 밥 먹으며 편히 보내려는 아내의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 아내는 또 면역력 핑계다. 여하튼 요즘은 위생가설이 아내의 게으름에 면죄부를 씌워 주는 변명거리로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이진한 동아일보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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