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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윌리엄스, 다윈보다 더 다윈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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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윌리엄스, 다윈보다 더 다윈적인…

2010.10.25 00:00
미국 어디에서인가 열린 진화생물학회에 참석하여, 에이브러햄 링컨을 닮은 허연 구레나룻의 키 큰 사람이 청중들의 뒤에 수줍은 듯이 서서 미소짓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감탄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워낙 말수가 적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 안 곳곳에서는 “조지가 왔던데” 하고 수근댈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으로 그가 유명한 사람임은 금세 알 것이다. - 매트 리들리, ‘붉은 여왕’에서 ‘게놈’, ‘본성과 양육’ 그리고 최근 번역된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저자인 세계적인 과학 저술가 매트 리들리의 출세작 ‘붉은 여왕’(1993년)에 나오는 조지, 즉 조지 윌리엄스는 ‘20세기의 다윈’으로 불릴 정도로 현대 진화론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1957년 31살의 나이에 쓴 논문 한 편으로 진화론의 거장 반열에 오른 뒤 수많은 과학자들의 우상으로 ‘군림’하다 지난 9월 8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그의 삶을 들여다보자. ● 중요한 건 유전자다 1926년생인 조지 윌리엄스는 1955년 미국 LA 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57년 미서건주립대에 교수로 부임했다. 그가 이해에 진화생물학 저널 ‘Evolution(진화)’에 발표한 이론생물학 논문 한편은 지금까지도 진화생물학의 기념비적인 논문으로 남아있다. ‘Pleiotropy, natural selection, and the evolution of senescence(다면발현과 자연선택, 노화의 진화)’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노화를 자동차 같은 물건이 닳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설명하는 기존의 이론을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노화가 생명체가 자손을 가장 많이 보기 위한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다면발현 유전자가 선택되는데, 다면발현이란 어떤 유전자가 여러 작용을 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유전자가 활성이 높으면 젊었을 때는 번식 확률을 높이지만 정밀한 대사조절 능력을 잃게 해 갈수록 암이나 대사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즉 노화가 일어난다. (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08년 7월호 134쪽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 1957년 조지 윌리엄스 교수의 자연선택 담은 노화진화이론’ 참조). 1960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로 자리를 옮긴 윌리엄스 교수는 1966년 이제는 고전이 된 명저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적응과 자연선택)’을 출간한다. 이 책에서 그는 집단선택이론(개체가 아니라 무리나 종의 단위로 자연선택이 일어난다는 가설)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진화는 오히려 개체보다도 작은 단위, 즉 유전자 차원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유명한 책 ‘The Selfish Gene(이기적인 유전자)’(1976년 출간)의 영감을 준 책이다. 도킨스는 10월 1일자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쓴 추모의 글에서 “윌리엄스는 엄청난 연구비를 따지도 않았고 큰 연구 그룹을 이끌지도 않았지만 20세기 후반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며 “다윈처럼 그는 친절했고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고 결코 공격적이거나 과도하게 자기주장을 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 다윈처럼 뛰어난 저술가 현대 과학자들은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냄으로써 학설을 인정받고 유명해지는 것과는 달리 윌리엄스는 1957년 논문 이후에는 주로 책을 통해서 새로운 학설을 제시했다. 역시 찰스 다윈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1975년 ‘Sex and Evolution(성과 진화)를 펴내 성이 왜 진화하게 됐는가에 대한 미스터리에 도전했고 그 뒤에도 몇 권의 책을 펴냈다. 기자가 처음 접한 윌리엄스의 저서는 1997년 출간된 ‘The Pony Fish's Glow(주둥치의 발광(發光), 한국어판 제목은 ‘진화의 미스터리’)’로 윌리엄스가 본인의 학문여정을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명한 책이다. 책 본문 가운데 주둥치란 작은 물고기에 몸속에 왜 발광기관을 갖게 됐는가를 설명하는 부분(몸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물을 투과해 들어오는 햇빛과 비슷한 밝기여서 아래에 사는 포식자가 식별할 수 없게 한다고 함)이 있는데 원저에 특이한 제목이 붙은 이유다. 그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 한 권 더 있는데 바로 1995년 출간된 ‘Why we get sick(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유명한 책이다. 부제 ‘다윈의학(Darwinian Medicine)이라는 새로운 과학’에서 짐작하듯이 윌리엄스는 미시건대 의대 교수인 랜돌프 네스와 함께 쓴 이 책에서 질병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기자는 1999년 이 책을 사봤는데, 때로는 무릎을 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어 이 책은 “몸에 열이 나도 해열제를 먹지 말고 설사가 나도 지사제를 먹지 말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증상 완화에 초점을 맞춘 현대의학의 상식은 질병의 진화를 모른 결과라는 것. 즉 열은 몸속에 침입한 병균을 무찌르는 전략이고 설사 역시 장속에 있는 독소를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물론 40℃의 고열이나 콜레라에 걸린 경우라면 치료를 해야겠지만 웬만하면 그냥 두는 게 더 빨리, 뒤탈 없이 낫는다는 말이다. 또 우리 몸의 설계는 ‘신이 자신을 본 따 설계한 완벽한 창조물’과는 거리가 먼,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여정을 거치며 살아남은 타협물이다. 즉 진화는 환경이 바뀔 때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 최적의 적응형태를 갖게 변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존의 틀 범위 내에서 좀 더 나은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 그러다보니 인체에는 비효율적이거나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구조가 여기저기 남아있다고. 이 책은 원래 부제가 제목이었는데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쉬운 제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도킨스는 “출판업자들은 윌리엄스의 책에 이런 짓을 했다”며 “다윈의학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 책의 표지에 “두 권을 사서 하나는 당신의 주치의에게 줘라(Buy two copies and give one to your doctor)”라고 썼다”고 회상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이 책을 직접 번역한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말년에 알츠하이머병에 시달려 이 책 8장 ‘Aging as the Fountain of Youth(청춘의 샘으로서의 노화)’는 그가 젊은 시절 제시한 다면발현을 지지하는 여러 연구결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알츠하이머병(치매의 일종)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즉 알츠하이머병은 수백만 년 전 인류의 뇌가 급팽창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유전자 변이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 그는 “젊었을 때 지능이 높은 사람이 나중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확인해본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쓰고 있다. 최재천 교수는 얼마 전 한 신문에 기고한 칼럼(조선일보 9월 14일자)에서 ‘다윈의 해’였던 지난해 윌리엄스를 만나 인터뷰를 하려고 했으나 “이미 알츠하이머병이 깊어 지인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고 안타깝게 술회했다. ‘가장 명철한 지성의 소유자’였던 그가 지성이 붕괴되면서 죽어간 모습에서(그 자신 자신의 가정을 입증하며!) 삶의 페이소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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