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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운(運)이 좋은 여성과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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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운(運)이 좋은 여성과학자입니다”

2010.12.07 00:00
“자, 여배우를 외치겠습니다. 여배우!”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시상식이 열렸던 1일 서울교육문화회관. 시상식 뒤 오찬이 시작할 무렵 한 참석 인사의 ‘여배우’ 건배사에 차분했던 장내 분위기가 이내 흥겨워졌다. 여배우는 ‘여성과학기술인의 배우자를 위하여’를 줄인 말이다. 남성 위주의 문화,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연구환경에서 이뤄낸 성과 뒤에는 반드시 가족들의 헌신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날 시상식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동아사이언스가 주관했다. 진흥부문 수상자 김지영(61·사진) 경희대 생명과학대학 교수는 “여성 과학자로서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라며 “오랜 기간 연구에 몰두할 수 있기까지 시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가족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여성과학기술인상 수상에서 지난 10여년 간 여성과학기술계의 네트워크 구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각계에 흩어져 있던 여성과학단체들을 모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과총)가 2003년 출범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으며, 2008년에는 회장으로 활약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 여과총은 어떤 단체이며, 왜 만들어졌나. “여과총은 각계에 흩어져 있던 여성과학단체들의 연합회 성격을 갖는다. 여과총이 있기 전에는 여성과학단체들끼리 서로 잘 모르고 있어서 소통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여과총이 결성되면서 과학계 각 분야에 퍼져있던 여성과학자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물꼬를 틀게 됐다. 여성과학계의 요구를 하나로 모으고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싣게 됐다.” ● 단체를 결성할 무렵 무척 바빴을 것 같다. “교수직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당시 막내아들이 중학생이어서 따로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뜻있는 단체 결성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전공학센터 시절부터 잘 알고 지냈던 나도선 박사 등과 의기투합해 하나씩 일을 해나갔다.” ● 다른 분야 여성과학자들과 소통해보니 어떤 공통점이 있었나. “분야는 다양하지만 여성과학자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크게 두 가지다. 여성과학자들의 정규직 진입이 어렵다는 것과 연구와 가정의 양립이 힘들다는 점이었다.” ● 정규직 진입이 어렵다는 건 단순히 인원수가 적다는 것인가. “비율의 문제다. 정규직 지원자 대비 합격자 비율이 남성보다 낮다는 의미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여성은 결혼과 양육 등으로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남자들만큼 조직문화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이유인 것 같다. 여성과학자 수 자체도 적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 국가 중 27위 수준이다.” ● 정규직이 된 뒤에는 어떤가. “사실 정규직이 되면 남녀 간 차별은 거의 없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승진 등에서 여전히 유리천장 같은 장벽이 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선진국이 이런 문제에서 많이 앞서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여전히 여성과학자는 비주류에 가깝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한국은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지금 앞서 있는 나라들을 보면) 언제 이런 문화가 완전히 사라질지 장담하기 힘들다.” ●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건 한국 직장여성이면 누구나 안고 있는 문제 같다. “아직 한국은 양육 문제 해결을 거의 다 개인에게 떠맡기고 있다. 따라서 연구에 매진해야 하는 여성과학자인 경우 더욱 어렵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여성 혼자 해결하기에 너무 큰 짐이다. 누군가 도와줘야만 한다. 개인에게 맡겨선 한계가 있어 사회제도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김 교수는 40년 가까이 생명과학 분야에 몸담으며 진핵세포에서의 유전자 발현 조절 등을 연구했다. 최근 3년간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학술지에 16편의 논문을 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연구에 매진하던 1984년 당시 KIST의 해외과학자 유치 때 귀국했다. 이후 1989년 경희대 유전공학과의 첫 여교수로 부임해 30여명의 남자 교수들 사이에서 홍일점으로 활약했다. 2004년에는 생명과학대학 학장을 지냈다. ● 교수님도 마찬가지로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거쳤을 것 같다.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건 헌신적으로 도와주던 시부모님 덕분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말 행운아다. 하지만 이런 도움도 우리 세대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는 나이 들어서도 사회생활을 하는 워킹맘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자식들의 양육문제를 뒷바라지 해주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 결혼 뒤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남편은 물리학을 전공한 같은 대학 동급생이었다. 유학을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24세 때 결혼했다. 그리고 곧 첫딸을 낳았다. 시부모님은 자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무척 좋아하셨다. 그래서 함께 유학 가라고 밀어주셨고, 갓 태어난 손녀딸을 흔쾌히 몇 년간 맡아 길러주셨다. 시부모님은 시집살이도 시키지 않으셨다. 나는 당시로서 꽤 드문 행운을 누린 것이다. 딸은 유치원 다닐 무렵 미국으로 데려 왔다.” ● 미국으로 딸을 데려갈 시기 다소 여유가 생겼나. “그때가 197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수준 박사 과정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전에는 매일매일 정신없이 공부만 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남편과 둘째를 낳기로 했다. 둘째를 낳기 전에 큰딸과 더 정을 들여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당시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1975년부터 미국 시카고대 생화학과에서 공부해서 198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미국은 정말 공부하기 좋은 곳이었다. 연구에 좋은 조건은 모두 갖춰놓은 것 같았다. 장학금 지원으로 생계에 어려움이 없었고, 캠퍼스 안에 아파트가 있어 실험실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집이었다. 초등학교도 근처에 있었다. 집에서 저녁식사하고 또 다시 실험실 가서 밤늦게까지 실험하고 지냈다. 가족들의 도움과 이런 좋은 조건들이 있었기에 계속 연구자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 중고교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전주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 이화여고로 유학 왔다.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사춘기 시기여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하기도 했다. 그 시기 독서에 빠져서 3일에 한 권씩 책을 읽어 나갔다. 주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과 고전, 위인전 등을 읽었다.” ● 그 때 독서가 훗날 살아가면서 도움이 됐나.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공감대라고 할까. 사회에는 어떤 종류의 삶과 인간들이 있는지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 위인전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 ‘퀴리부인’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읽으면 역경을 헤쳐 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때 접했던 여성들을 보면서 훗날 어려움이 있었을 때 알게 모르게 힘이 됐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 고전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 연구와 결혼, 육아 등을 고민하는 여성과학자 후배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일단은 부딪혀라. 그리고 포기하지 말라고 일러주고 싶다. 어려운 시기 몇 년만 참는다는 마음으로. 간절함과 의지가 있으면 길이 보인다. 주변에서 도움 주는 사람도 등장할 수 있다. 자기가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면 현실적으로 힘들다. 힘들면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재능 있는 여성 과학자가 연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남는 사례들이 있나. “제법 있다. 네이처 등에 수준 높은 논문을 내던 학자도 결혼 뒤 전업주부로 살기도 하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큰딸이 그렇다.(웃음) 과학고와 포스텍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까지 한 공학도였다. 20대 후반에 결혼하고 아이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해서 지금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옳고 그름을 따질 사항은 아니다. 각자 가치관의 문제일 수 있다. 각자가 처한 개인적인 상황도 다르고.” ● 여성과학계 네트워크를 이끄는 학자로서 한마디 한다면. “여성과학자의 문제를 도와주는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사회 제도나 인프라가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니 결국 가족이 도울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보육시설을 학교 근처에서 찾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대학이나 연구기관 주변에 맡길만한 보육시설을 찾기가 힘들다고 알고 있다.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돼야 여성과학자들이 더욱 연구에 전념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여성 고급인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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