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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조직에서 기린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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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조직에서 기린의 리더십

2011.06.16 00:00
[동아일보]

뭍에 사는 동물 가운데 키가 가장 큰 동물은? 기린이다. 눈이 가장 큰 동물은? 역시 기린이다. 기린은 가장 큰 키와 가장 큰 눈을 자랑한다. 키는 5.5m 정도, 눈은 테니스공만 하다. 큰 키와 큰 눈 덕택에 1km 앞까지 내다볼 수 있다. 기린은 귀도 크다. 큰 키 때문에 작아 보이지만 귀가 당나귀 귀만 하다. 그래서 작은 소리도 잘 듣는다. 하지만 기린은 소리를 낼 줄 모른다. 작은 소리를 잘 듣지만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린은 가장 온순한 동물로 ‘초원의 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스티븐 베리는 신혼여행으로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들렀다가 그 매력에 빠져 저술한 ‘세렝게티 전략’을 통해 비즈니스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제시했다. 코끼리, 얼룩말, 하마, 치타,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 가운데 기린은 멀리 내다보는 ‘시력의 전략’을 구사한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3월 말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에 부임한 김도연 위원장은 멀리 보면서 자율을 중시하는 기린처럼 일하는 스타일이다. 키가 190cm쯤 돼 기린처럼 훤칠하다. 기린처럼 작은 소리도 잘 듣지만 스스로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 성격이다. 국과위 현판식에서 기념 촬영하다가 현판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과’자를 가릴 만큼 키가 컸고, 취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보시다시피 제가 키가 좀 큰데,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멀리 내다보고 일하라고 발탁한 것 같다”고 에둘러 말해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국격(國格)을 높이고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과학기술 구현’을 비전으로 내건 국과위는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정책 수립에서 예산의 배분과 조정에 이르는 총괄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그야말로 ‘기린의 전략’이 필요한 조직이다. 정부 조직은 신설될 때 관계 부처에서 정원의 거의 대부분을 조달한다. 신설 조직의 특성상 ‘빈자리’를 노리는 로비도 많다. 지방에서 근무하기 싫은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서울에 남기 위해 국과위로 자리를 옮기고 싶어 했다는 소문마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정원의 절반 정도를 대학, 연구소, 기업 등 민간 출신 전문가로 채웠다. 전체 119명에서 민간 비율이 45%나 되는데도 50%까지 맞추지 못한 걸 오히려 아쉬워한다. 핵심 요직인 과학기술정책국장과 심의관을 뽑는데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난항을 거듭할 것 같았던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배분과 조정에 있어서도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상당한 권한을 확보했다. 요즘은 ‘성과평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에 설명하러 다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출연연구기관의 구조개편 작업도 곧 시작한다. 과학기술 연구개발 정책은 물론이고 조직에도 창의성, 개방성, 전문성, 자율성 같은 민간의 특징을 도입하려는 김 위원장이 국회나 다른 부처를 다니면서 기린처럼 큰 키를 숙여 인사하고 설명할 때 설득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국과위를 영어로 발음하면 ‘굿가이(Good Guy)’가 된다는 게 그의 농담이다. 국과위 출범 과정에서 이미 과학기술계의 지지를 얻은 김 위원장은 정치인과 공무원이 판치는 정글에 등장한 ‘초원의 신사’처럼 보인다. 국과위 위원장으로서 그의 행보가 과학기술계의 행정조직 개편 차원이 아니라 공무원 조직에 대한 신선한 실험으로 눈길을 끄는 이유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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