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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천장 주름에서 튜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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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천장 주름에서 튜링을 만나다

2012.03.11 00:00
탁월한 인물이 어처구니없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스트리아와 영국의 수학자, 논리학자인 쿠르트 괴델과 앨런 튜링이다. 1931년 25세 때 ‘진리임에도 증명될 수 없는 수학적 명제가 존재한다’는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해 수학계를 흔든 논리학의 천재 쿠르트 괴델은 그러나 누군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며 음식을 거부하다 결국은 굶어죽었다(72세). 이때 그의 몸무게는 40㎏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컴퓨터의 수학 모델(튜링 기계)을 생각해내고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해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앨런 튜링은 동성애가 발각돼(당시에는 범죄였다)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여성호르몬 주사)를 택했지만 수치심에 괴로워하다가 1년 뒤인 1954년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를 먹고 자살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42세. 올해는 튜링이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2월 23일자에 튜링을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기자는 수년전 장 라세구라는 프랑스 사람인 쓴 ‘튜링: 인공지능 창시자’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지난 2008년 번역서가 나온 또 다른 튜링 전기의 제목은 그를 한 마디로 잘 요약해 준다.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The man who knew too much)’. ●친절한 튜링씨 튜링의 대표적인 연구라면 ‘튜링 기계'로 상징되는 컴퓨터 관련 분야겠지만 화학과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기자로서는 그가 말년(그래봐야 40세 때다)에 발표한 형태생성(morphogenesis)에 관한 연구가 가장 관심을 끈다. 튜링은 미분방정식을 이용해 생물계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패턴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그는 형태소(morphogen)라는 입자들이 간단한 수학적 관계식에 따르는 상호작용을 통해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홀로 이런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냈다. 60년 전인 1952년 ‘영국왕립학회지’에 발표한 그의 논문의 제목 ‘The chemical basis of morphogenesis’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pdf 파일을 내려 받아 볼 수 있다. 36쪽에 이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꽤 긴 이 논문은 그러나 대학에서 미분방정식과 일반화학을 들은 사람이면 절반 이상을 읽을 수 있는 난이도다. 한마디로 가정 몇 개와 수식을 써서 많은 분야에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이끌어낸 튜링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논문이다. 전기를 보면 튜링은 평소 얼빠진 사람처럼 보였고 옷입는 것도 촌스럽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또 극도로 소심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동료들에겐 친절했고 나름 유머감각도 있었다고 한다. 논문에도 그의 재치있는 ‘친절’이 느껴지는 구절이 보인다. “논문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수학과 어느 정도의 생물학, 기초적인 화학 지식이 있어야 한다. 독자들이 이 모든 주제의 전문가임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사실들이 설명돼 있다. 물론 이 내용은 교과서에 나와 있지만 이걸 뺀다면 논문을 읽기가 어려울 것이다.” 논문의 2절 제목은 ‘요구되는 수학 배경(Mathematical background required)’으로 앞으로 나올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수학수준을 서술하는데, 한 미분방정식에 관한 내용이다. 미분방정식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 함수인 방정식이다. 2절 말미에서 그는 독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여러 절의 상대적인 어려움의 정도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 절에서 얘기한 요점을 따라가지 못한 사람은 3, 4, 11, 12, 13(일부), 14절만을 읽을 시도를 해야 한다. 이 절을 이해한 사람은 7, 8, 9절에서도 뭔가를 얻을 수 있다. 5, 10, 13절은 수학자로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논문은 13절로 이뤄져 있다. 아마 초고에서는 14절까지 있었으나 6절을 빼면서 편집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물에서 보이는 패턴, 물리 법칙으로 충분히 설명 오늘날 ‘반응-확산 모형(reaction-diffusion model)’로 불리는 그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어떤 작용을 하는 형태소(예를 들어 피부색소)들이 서로 상호작용 한 결과 복잡해 보이는 패턴이 나올 수 있는데 이들 형태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확산, 즉 높은 농도에서 낮은 농도로 이동한다는 것. 확산은 물리계에서 널리 관찰되는 현상이므로 새로울 것도 없다. 논문의 제목에 있는 ‘화학적 기초’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핵심은 두 번째 특징인 반응성에 있다. 즉 형태소는 다른 형태소나 때로는 자신의 생성이나 작용을 촉진하거나 억제한다는 것. 결국 형태소 사이의 반응과 확산의 결과로 다양한 패턴이 나타난다. 2010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반응-확산 모형에 대한 리뷰 논문을 보면 튜링의 아이디어가 생물의 패턴 형성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오른쪽 그림을 보자. 맨 위 A는 형태소가 하나만 있는 경우로 농도 기울기에 따른 확산만이 패턴을 결정하는 변수다. 따라서 프랑스 삼색기처럼 단순한 패턴만을 만들 수 있다. 가운데 B는 형태소가 두 개이지만 화학적인 작용(반응)은 없다. 그 결과 역시 확산만이 변수가 되고 약간 더 복잡한 패턴을 얻을 수 있다. 맨 아래 C가 바로 튜링이 제안한 모형이다. 두 형태소는 확산의 법칙도 따르지만 서로에 대해 작용(또는 생성)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반응성이 있다. 그 결과 형태소의 분포가 파동의 형태를 띠게 되고 그에 따라 얼룩이나 줄무늬가 나타난다. 튜링은 논문에서 형태소들이 공간적으로 균일하게 분포할 때, 즉 대칭일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약간의 교란으로 이 대칭성이 깨어질 때 형태소 사이의 반응성과 확산성이 작용하면서 불균일성이 커지고 그 결과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때 형태소 사이의 반응성과 확산성의 정도(방정식에서 계수를 바꾸면 된다)에 따라 6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결과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일정한 파동 형태로 형태소가 재배치되는 소위 ‘튜링 패턴’이다. 튜링의 논문은 발표 당시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1970년대 실제 생물계에서 보이는 패턴을 튜링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뒤 조개껍질의 무늬나 열대어 피부의 무늬 등 수많은 패턴을 튜링의 수식으로 시뮬레이션해 재현할 수 있었다.(아래 사진 참조) 그러나 반응-확산 모형이 자연계에서 보이는 패턴을 재현한다고 해서 튜링의 이론이 증명된 것은 아니다. 이런 패턴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이론모형도 있기 때문이다. 튜링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려면 결국 형태소의 실체를 찾아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확실한 예가 마땅치 않았다. ●형태소가 입천장 주름 패턴 형성 튜링 탄생 100주년이자 형태생성 논문이 나온 지 60주년이 되는 올해 마침내 그의 형태소 이론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연구결과가 ‘네이처 지네틱스(유전학)’ 3월호에 실렸다. 연구의 주인공은 튜링의 나라인 영국의 과학자들이다. 킹스칼리지런던의 제레미 그린 교수팀은 쥐의 입천장 주름에서 그 답을 찾았다. 혀끝을 입천장에 대고 앞뒤로 천천히 움직여보면 매끄럽지가 않고 오톨도톨 한 걸 느낄 것이다. 이를 ‘입천장 주름(palatal rugae)’라고 하는데 사람은 주름이 4개인 반면 쥐는 8개이고 돼지는 21개나 된다. 입천장 주름은 입 안에 들어온 음식을 감지하고 붙잡아두는데 관여한다. 연구자들은 쥐의 발생과정에서 입천장 주름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관찰했다. 그 결과 ‘Shh’라는 유전자가 주름의 돌출 부위에서 발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발생과정의 입천장 조직을 교묘하게 잘라 배양할 때 형성되는 주름의 패턴을 관찰하고 관련된 다양한 돌연변이 쥐들의 입천장 주름 패턴을 분석한 결과 Shh 유전자와 ‘FGF’라는 단백질이 바로 형태소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때 FGF는 Shh의 발현을 촉진하고 Shh는 FGF의 작용과 자신의 발현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는 이 과정에 다른 여러 유전자들이 관여하지만 단순화시키면 두 형태소의 반응과 확산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 튜링의 논문에서 위 그림을 보면 Y라는 형태소가 원래 균일한 분포(점선)에서 조금 벗어났을 때(빗금) X라는 형태소와 반응-확산 과정으로 최종적으로는 떨어진 기둥 형태로 분포하게 되는 예를 보여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입천장 주름의 돌출 부분에서 발현하는 Shh의 분포(아래 그림)가 그림3의 Y의 분포 패턴(세로축이 농도)과 비슷하다. 튜링은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겸손하게 쓰고 있지만 만일 그가 좀 더 오래 살았고 이 논문 같은 결과가 그의 생전에 나왔다면 무척 기뻐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론은 어떤 새로운 가설을 만든 게 아니다. 이건 단지 어떤 잘 알려진 물리 법칙들이 많은 사실을 설명하는데 충분하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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