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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로 놀이하듯 체육수업… 왕따-비만? 온몸으로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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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03일 00:00 프린트하기

지난해 5월 중간고사 하루 전날 점심시간. 중학생이 된 지 두 달이 조금 지난 1학년생 미연이(가명·여)는 급식 식판을 받아들자마자 화장실로 가 밥과 반찬을 변기에 모두 버렸다. 눈은 퉁퉁 부어 있고, 낯빛은 어두웠다. 친구들은 미연이를 ‘땅딸보’라고 놀려댔다. 처음에는 웃어 넘겼고 나중에는 맞서 싸우다 결국엔 울고 말았다. 한창 자랄 나이에 끼니를 거르니 오후 수업시간 내내 머리가 몽롱했다. 선생님이 교과서에서 “시험에 꼭 나온다”고 했던 부분에 밑줄을 그을 힘도 없었다. 이튿날 중간고사는 물론 망쳤다. 시험이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다이어트 약을 찾아냈다. 수중에 돈이 부족한 것을 확인한 미연이의 큰 눈망울에 또 물기가 서렸다. 체육교사인 박정현 씨(42)는 미연이를 방과후 스포츠 활동에 참여시켰다. 잘하는 운동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던 미연이가 선생님의 말을 따랐던 이유는 ‘체육 수업’이 아니라 ‘놀이’였기 때문이다. 박 교사는 미연이 말고도 30여 명을 더 모았다. 2차 성징이 시작돼 “남학생들에게 뒤뚱거리며 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럽다”며 체육 수업을 거부하는 여중생들이었다. ▼ 수업시간이 심리치료 시간… 집중력 좋아져 성적도 쑥쑥 ▼ 박 교사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X박스 360 키넥트’라는 몸을 움직이는 게임기로 수업을 진행했다. 화면을 보며 허들도 하고 볼링도 치고 춤도 췄다. 놀이가 더해지니 두려운 체육 수업 시간은 학생들의 마음을 매만지는 심리 치료 시간으로 바뀌었다. 미연이는 1학기 동안 게임에 빠져 격렬하게 운동했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전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게임 스포츠 대회에서 그는 1등을 했다. 몸을 움직이다 보니 얼굴도 더 화사해졌다. 체력이 붙으니 집중력도 좋아졌다. 미연이는 2학기 기말고사 역사시험에서 96점을 받아 전교 12등을 했다. 같은 과목을 1학기 때는 30점을 받았고 전교 등수는 200등을 밑돌았다. 당시 모습을 보여 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게임 하기 전의 증명사진을 보면 볼살이 터질 것 같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지난달 29일 경기 파주시 탄현중에서 박 교사를 만났다. 그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학생들도 게임 단계를 올리는 것이 신나서 기를 쓰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1년간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게임기를 활용한 활동 전후를 비교해 보니 참여한 학생 중 50%가 건강이 좋아졌다. 운동 자체를 좋아하게 됐다는 학생도 30%가량 늘었다. 이날 모인 학생들에게 게임 스포츠를 하는 소감을 말해 달라고 했더니 “기사에 내 이름이 들어가느냐”면서 30여 명 모두가 번쩍 손을 들었다. “몸매가 예뻐지는 것 같다”는 한 학생의 대답에 폭소가 쏟아진다. 박 교사는 “이들 중에는 ‘왕따’로 못 어울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를 정말 아끼는 친구가 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게임기를 활용해 체육 활동을 하는 모습은 기자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수업과 완전히 달랐다. 한 여학생이 교실 안에서 게임기와 연결된 대형 스크린 앞에 서더니, 창던지기 부문 여자 세계 신기록을 보유한 러시아의 마리야 아바쿠모바와 같은 근사한 자세를 취한다. 운동장도 좁고, 체육관도 없는 학교에서 창던지기를 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업 시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기록이 나쁘게 나와도 웃고, 멀리뛰기를 하다가 엉덩방아를 찧어도 웃는다. 이 순간 이들은 체육 수업을 받는 학생이 아니라 ‘게이머’였다.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물었더니 ‘권투’라고 대답한 것도 특이했다. 박 교사는 게임 외에도 체육에 놀이를 결합하는 시도를 해왔다. 예를 들어 유치원 시절에나 해보던 ‘얼음땡’ 놀이를 체육 수업 시간에 하는 식이다. 운동장을 강제로 뛰라고 하면 한 바퀴도 못 뛰던 아이들이 얼음땡을 하며 더 많은 운동량을 소화하더라는 것. 또 남자는 패스만 하고 여자들은 슈팅만 할 수 있게 하는 남녀 혼성축구를 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했다. 박 교사는 말한다. “정말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운동의 쾌감”이라고. 그의 바람과 달리 아직 운동을 싫어하는 학생도 있다. 그럼에도 “운동은 게임처럼 즐거운 것”이라는 사실을 한 번이라도 느낀 학생이라면 성인이 된 뒤에도 스포츠를 즐기는 ‘운동 마니아’가 되지 않을까. 파주=정진욱 동아일보 기자 cool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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