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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홍성욱]오픈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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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홍성욱]오픈 사이언스

2012.04.12 00:00
[동아일보]

많은 사상가들에게 과학은 ‘열림’을 상징했다. 20세기 미국의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턴은 과학적 탐구와 민주주의 사이에 본질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과학은 과감한 추측을 던지고 이것이 논박하는 반증을 통해 발전한다고 본 과학철학자 카를 포퍼는 과학이 진보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새로운 사상과 발전에 열려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열린사회라고 불렀다. 이들에게 과학은 진보, 민주주의, 열린사회와 친화력을 지닌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1960년대를 겪으면서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 연구를 통해 성장한 군산복합체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경고했으며, 철학적으로는 과학이 기존의 정상과학 패러다임을 완벽하게 하는 문제풀이 형태를 지닌다고 주장한 토머스 쿤이 머턴과 포퍼를 비판했다. 쿤에 의하면 정상 과학은 기존 이론을 의심하고 이를 반증하기는커녕 의심하는 태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활동이었다. 과학이 닫혀 있다는 비판은 시민사회에서도 제기됐다. 발암 화학물질, 원자력발전소, 유전자변형식품의 위험을 놓고 시민들이 느끼는 위험과 과학자들이 계산한 위험은 큰 차이를 보였고, 이 결과는 전문가들의 평가에 대한 불신을 낳으면서 과학적 합리성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시민운동가들은 과학기술이 낳는 위험이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에는 시민들이 직접 개입해 과학기술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외쳤다. 다중지성의 힘 빌려 난해한 문제 해결 과학자 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도전에 대응했다. 과학을 예술과 접목해 시민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다양화한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고, 익명으로 수행했던 동료평가제도에서 실명을 공개하거나 자신의 연구가 가지는 이해관계를 공개하는 방식을 통해 평가와 연구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것은 또 다른 시도였다. 이런 경향이 발전해 최근에는 자신의 데이터나 소프트웨어 같은 연구 일부를 아예 공개해 다중지성의 힘을 빌려 연구를 수행하는 오픈 사이언스(open science)가 시도되기에 이르렀다. 2009년 수학에서 노벨상에 해당하는 필드상을 받은 티머시 가워스는 자신이 풀지 못하는 ‘폴리매스 문제’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다른 수학자의 도움을 청했다.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던 수학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하기 시작했고, 이 문제는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모인 수학자 40여 명의 공동작업을 통해 6주 만에 해결됐다. 물리학과 천문학, 생물학 분야에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연구자들의 컴퓨터를 연결해 메가슈퍼컴퓨터를 만들어 과학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며, 인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오픈소스신약발견그룹은 130개국의 5000명이 넘는 연구자들의 협력을 유도해 제3세계에 만연할 질병의 치료약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노력 중에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를 넘는 것들도 있다. 2010년 생물학 분야의 저명 학술지인 생물학 보고서는 런던대 신경과학자 B 로토 교수가 초등학생 28명과 함께 연구해 이들 모두를 공저자로 올린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을 쓴 초등학생들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실험을 통해 벌이 어떻게 꿀이 있는 꽃을 고르는가를 새롭게 해석했다. 국내에서도 KAIST 정재승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모집한 55명의 보통 사람들과 함께 ‘왜 세계적으로 야구에서 4할대 타자가 사라졌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오픈 사이언스가 어떻게 자리 잡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미 많은 지식에 지식재산권이 걸려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무상으로 내어 놓으라는 외침이 얼마나 큰 반향을 얻을지 불분명하다. 또 아직도 대부분의 과학 지식은 과학자들 개개인이 실험실에서 수백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어렵게 만들어내는 것이며, 따라서 이렇게 애써 모은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것도 어렵지만 실제로 인터넷 등을 통한 협력이 특정 영역을 넘어서 과학 일반에 얼마만큼이나 유용할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있다. 지식생산-유통 과정에 혁명 부를수도 그렇지만 오픈 사이언스가 논문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데이터를 회람하거나 특정 연구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배포하는 행위도 과학자들의 중요한 기여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점에서 오픈 사이언스 운동은 21세기 지식 생산과 유통 과정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다. 이 씨앗을 어떻게 튼튼한 식물로 키우는가는 과학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몫이다. 잘 자랐을 경우 오픈 사이언스는 과학이 지식의 상업화와 논문 위주의 지식 생산체계라는 경계를 넘어 양극화를 향해 치닫는 세상에 대해서도 조금은 해독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픈 사이언스는 과학자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상정치’이며, 우리의 미래는 이를 이공계 출신 몇몇을 국회로 보낸 것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할지도 모른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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