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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덕환]교과서 진화론 삭제 논란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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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덕환]교과서 진화론 삭제 논란을 보며

2012.06.27 00:00
[동아일보]

진화론 논쟁이 뜨겁다. 출판사들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해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를 빼기로 했다는 일부 잘못된 소식 때문이다. 진화학자들은 자신들이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돼 버렸다고 야단이고 교육과학기술부도 종교적으로 편향된 청원을 무책임하게 출판사에 떠넘겼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비과학적인 창조론이 우리 사회에 무의미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시조새 등 ‘진화의 예’만 수정 출판사들이 시조새와 말의 화석 변화를 포함한 ‘진화의 예’를 수정하거나 삭제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 자체가 삭제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예를 사용할 것인지는 출판사의 선택이지만 진화론을 빼는 것은 출판사가 함부로 약속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출판사가 수정한 교과서는 법에 정해진 인정 심의 절차를 거쳐야만 교과서로 인정받게 된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교과부가 고시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제2009-41호)에 따르면 모든 과학 교과서는 화석의 변화와 생물종의 진화 과정을 포함한 진화론을 반드시 소개해야 한다. 더욱이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교육과정’의 부속문서인 ‘교육과정 해설서’에는 종교적 측면의 창조론은 언급하지 말도록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교과부가 스스로 고시한 교육과정을 포기할 것이라고 예단할 이유는 없다. 2009년 개정 때 개편된 고교 1학년용 과학에서는 어려운 과학 개념이나 이론의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문과와 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에게 현대과학을 개괄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을 개발했던 기초과학과 과학교육 분야 6개 학술단체가 교과부의 요청으로 2010년 제작했던 ‘모델 교과서’는 그런 취지를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화석 기록이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는 정도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화석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교육과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출판사들이 수정에 동의한 것은 현재 교과서의 설명을 더 정교하게 다듬고 당초 교육과정의 의도를 넘어설 정도로 지나친 설명도 적절하게 줄이겠다는 뜻이다. 1992년 제6차 교육과정에서부터 소개된 시조새와 말의 예는 그동안 진화학계가 이룩한 중요한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교과서 발행 제도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었고 진화학자들도 고교 교과서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던 탓이다. 과학 교과서의 발행 제도가 달라졌다. 과학기술한림원과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기초과학학회연합체 등 13개 과학기술단체의 요청으로 시도교육감이 운영하는 인정제도가 도입됐다. 새 제도에서는 교과부가 과거처럼 교과서의 내용에 시시콜콜 간섭할 수 없다. 물론 새로운 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번처럼 위험스러운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과학기술계가 교과서의 획일화와 하향평준화를 초래했던 제도로 지적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경직된 검정제도에서는 당연히 필요했던 내용의 수정도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시조새와 말의 화석에 대한 설명을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은 새로운 제도의 긍정적인 성과다. 진화론 자체를 빼는 건 아냐 진화학자들의 전문성은 물론 중요하다. 종교적으로 편향된 청원으로부터 진화론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기술계의 합의로 도입한 새 제도를 정착시키고 전향적으로 발전시키는 일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진화론의 과학적 가치는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런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학자들도 진화론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시키려는 과학 교육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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