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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 설화와 ‘10월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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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 설화와 ‘10월의 하늘’

2012.10.30 00:00
우렁각시 설화를 기억하는지? 한 시골 총각이 어느 날 자고 나니 방에 밥상이 딱 차려져 있었다. 일하고 와보니 집안일이 돼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항아리에 사는 우렁이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일을 했더라는 이야기다. 나중에 우렁이는 진짜 사람으로 변하고 심술맞은 고을 원님의 방해를 이기고 총각과 결혼을 한다. 예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총각은 집안일 안하고 뭐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구비문학 자료를 보면 전세계에서 고루 발견되는 보편적인 이야기란다. 엉뚱하게도 과학자들의 소도시 도서관 과학 강연 기부 행사인 ‘10월의 하늘’을 생각하며 우렁각시 설화가 떠올랐다. 10월의 하늘은 매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과학자와 공학자, 의사, 작가, 음악가들이 전국의 청소년을 위해 여는 무료 과학 강연이다. ‘한국도서관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행사는 2010년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트위터에서 제안해 시작됐다. 3회째인 올해는 지난 27일, 전국 41개 공공도서관에서 83개의 과학 강연과 공연이 펼쳐졌다. 최근 일부 ‘재능기부’가 돈 없는 아티스트나 학자들에게 무료 노동을 강요하는 데 쓰이는 등 변질되고 있지만, 10월의 하늘은 자발성에 기반하고 있기에 순수한 의미를 잘 간직하고 있다. 10월의 하늘에도 설화처럼 항아리에 숨어 있는 우렁각시가 있다. 10월의 하늘은 강연 행사다. 모든 설명이 ‘과학자가 소도시 청소년에게 강연을 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매년 참여하는 강연 기부자의 수는 80~90명. 이들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원활하게 강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연자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전 준비 스태프와 현장진행자로 참여한다. 이들은 사실상 10월의 하늘을 만든 사람들이지만, 그늘에 숨어 거의 수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10월의 하늘은 자발적 모임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참여자들이 시간 나는 만큼, 능력 만큼만 일하도록 하고 있다. 스태프와 진행자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눈치 보지 않고 쉴 수도 있다. 준비모임 사이에서는 첫 해부터 ‘기억으로 가입하고 망각으로 탈퇴한다’는 말이 오르내리고 있다. 개방된 참여로 이뤄진 공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열린 참여는 공평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런 큰 행사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누군가는 책임감을 갖고 헌신적으로 일해야 한다. 10월의 하늘 사람들은 이 사실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지난 3년 동안을 돌아 보면, 결국은 매해 가장 책임감이 강한 몇 명이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준비모임의 책임자인 ‘총무’와 10여 명의 스태프가 그 역할을 맡는다. 대개 평범한 직장인인 이들은 일의 양을 감당하지 못해 막판에는 식사를 거르고 밤을 지새우며 일한다. 그만큼 작업의 양이 많다. 거의 200명에 달하는 강연자와 현장진행자를 차질없이 전국에 배치하고 일일이 연락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책상머리에 앉아 엑셀 몇 번 돌리면 끝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강연 직전까지 변경에 변경을 거듭한다. 강연이 확정되면 강연자와 진행자에게 일일이 연락을 한다. 참여 강연자가 많은 만큼 개성도 다양하고 요구조건도 많다. 3회로 오면서 많이 줄었지만, 초기에는 준비모임이나 현장진행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강연자도 있었다. 이들을 대등한 기부자로 봤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준비모임의 책무는 또 있다. 책 등 기부 물품을 받고 분류해 발송하는 일처럼 직접 체력과 비용이 필요한 일도 ‘알아서’ 한다. 스태프가 직접 발품을 팔거나 개인적인 인맥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유지하고 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일, 언론 요청에 대응하는 일 등 행사가 끝나도 일은 끊이지 않는다. 기부자들을 격려하는 마무리 자축 파티도 기획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을 짓누르는 것은 전국적인 행사를 실수없이 마쳐야 한다는 중압감이다. 혹시라도 강연장에 강연자와 진행자가 한꺼번에 도착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봐, 같은 도서관에 가는 참여자에게 모두 각기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가도록 권했다는 첫 해의 일화는 전설처럼 남아 있다. “갈지 않고 수확하고, 일구지 않고 오래 일군 밭 이룬다(不耕穫不菑畬).” ‘주역’의 한 대목이다. 언뜻 보면 불로소득의 달콤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밭 갈지 않고도 수확을 하다니! 하지만 아니다. 중국 위나라의 학자 왕필은 여기에 이런 주석을 덧붙였다. “신하가 대신하고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왕이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신하가 뼈 빠지게 일해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일은 절대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공로가 있다면 누군가는 일했다. 설화 속의 우렁각시도 일했고, 10월의 하늘이라는 아름답고 성공적인 재능기부 강연 행사에도 항아리에 숨어 있는 우렁이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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