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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년 동안 지은 종가, ‘백불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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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년 동안 지은 종가, ‘백불고택’

2012.12.06 00:00
동계정 좌측으로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41호인 ‘수구당(數咎堂)’이 있다. 이곳은 백불암이 초호를 ‘수구암(數咎庵)’으로 짓고 사랑채에 수구당(數咎堂)의 현판을 걸어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전면 3칸, 측면 1칸 반이다. 전면과 측면에 툇마루가 있는데 측면은 전면보다 높이가 다소 낮다. 수구당을 지나면 안길 끝에 있는 ‘백불고택’의 전면으로 진입한다. 백불고택은 대구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으로 1982년 대구민속자료 제1호로, 2009년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61호로 지정됐다. 현재의 건물 중 가장 먼저 지어진 안채와 가묘(家廟)는 1694년에 처음 건설됐다. 이후 안채는 몇 차례 수리됐고 사랑채는 철거된 동천서원의 재목을 일부 활용해 1905년에 지었다. 총 212년에 걸쳐 종가의 건축이 이뤄진 것이다. 백불고택의 생활영역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고방채 등 4채로 이루어진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물매가 완만한 지붕에 간결한 3량구조다. 옻골의 다른 집이 거의 일자형이거나 ‘ㄱ’자형인데 반해 백불고택은 ‘ㄷ’자 모양의 안채와 일자 모양의 사랑채가 결합된 ‘튼ㅁ’자형이다. 대문칸은 7칸 사랑채의 가운데 칸을 향해 열려 있다. ●쟁쟁한 사대부집에 평대문?… 대갓집에서 중요한 ‘대문채’ 이 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대문채다. 조선시대 쟁쟁한 사대부 집인데도 불구하고 평대문을 달고 있기 때문.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으로 처음에는 볏짚을 덮었으나 1940년대에 기와로 바꾸었다. 본래는 지금보다 약 15~20m 앞에 세웠다고 전한다. 대문 우측에 뒷간이 있는데 영남 상류 가옥에서는 흔한 예다. 현재 이 화장실은 수세식 변소로 바뀌었는데 이는 백불고택에 일본의 저명인사가 방문한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최진순 백불고택 장손이 집을 안내하던 도중 일본 저명인사가 화장실에 갔다 온 뒤 새파랗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는 것. 화장실이 집밖에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것도 소위 전통 화장실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인의 거주를 돕는 기능을 가진 대문채(행랑채)는 대갓집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사랑채나 안채는 독립된 구조와 형태를 갖지만, 행랑채는 작은 방들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간단한 구조와 부속적인 형태를 갖는다. 여기에는 하인들이 기거하는 방과 창고, 외양간, 문간 등 다양한 부속기능이 수용된다. 한옥은 칸을 기본 단위로 하므로 그것을 덧붙여 확장하거나 기존 칸을 없애 축소할 수도 있어 건축할 때 융통성이 크다. 특히 행랑채의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융통성을 발휘하기 좋다. 반면에 더 격식을 갖춘 건물에 많이 사용하는 팔작지붕은 마구리가 삼각형모양의 합각돼 있어 확장이 거의 불가능하다. ●마당이 있어 사생활 침해 막는다고? 평대문으로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마당이 보이고 이를 통해 각 채로 들어갈 수 있다. 각 채들은 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돼 거의 모든 방에서 마당이 보인다. 또 담장 안에 있는 마당은 각 방의 방문이 열렸어도 밖에서 보이지 않아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한옥의 마당은 그를 에워싼 건물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한다. 안채에 싸인 안마당, 사랑채 앞의 사랑마당, 하인들의 행랑마당, 부엌 뒤 작업공간인 고방마당, 사당 앞의 제사마당, 안채 뒤 정원인 뒷마당 등이다. 큰 집의 경우 마당 수가 늘며 보통 ‘여섯 마당’ 정도를 가져야 종가라고 할 수 있다. 마당 수가 증가하면 기능도 분화하지만, 한두 개의 마당을 가진 작은 집에서는 하나의 마당이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용한다. 그만큼 마당은 융통성이 있는 여유 공간이다. 참고문헌 :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1985 『미수 허목선생 소전』, 양태진, 미수연구회, 2004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한필원, 북로드, 2007 『백불고택』, 김광언, 민속원, 2008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한필원, 휴머니스트, 2011 「속세와 거리 둔 400년 세거지…양반의 고고함 오롯이 품어」, 진용숙, 경북일보, 2011.07.11 (12-5에 계속)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과학저술가 mystery123@korea.com
이종호 박사(사진)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
※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thescience.co.kr)가 공룡유산답사기, 과학유산답사기 2부에 이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통마을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3부를 연재합니다. 전통마을은 사상, 문화, 전통, 역사 등 인문학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지역입니다. 유교 사상인 성리학을 질서로 따라 마을과 구성원이 살아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백 년 동안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마을 구성원이 합리적이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구성된 곳이기도 합니다. 더사이언스는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조상들의 과학지식이 잔뜩 담겨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의 전통마을에 대한 기사를 더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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