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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가 ‘재능기부 전도사’ 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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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가 ‘재능기부 전도사’ 된 사연은…

2013.02.18 00:00

햇볕이 뜨거웠던 2008년 여름의 오후. 몸이 축축 늘어질 때, 메시지 알림 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는 논문을 검토한 서울대 의대 주건 교수. “축하한다. 통과했다.” 누군가는 “남들 수능 문제 풀 때 왜 이런 걸 붙잡고 있느냐”고 핀잔을 줬다. 명문대 박사도 하기 힘들다며 만류하는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해냈다. 논문을 제출하고도 3번이나 고친 끝에 얻은 감격.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나물 캐러 산에 갈 때면 항상 손자를 데리고 갔다.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숲을 보면 나무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 사실 수풀 저편에선 많은 일이 일어난단다. 항상 3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거라. 영특한 쥐의 눈, 날렵한 토끼의 눈, 멀리 보는 새의 눈으로.” 어린 가슴에 이 말이 콱 박혔다. 할아버지는 서울대 통계학과 김재주 명예교수. 과학 서적을 곁에 두고, 과학을 사랑하던 학자는 시간을 쪼개 주변 사람을 도왔다. “이건 봉사가 아니란다. 할아비도 이 사람들 도우면서 기쁘고 보람까지 얻으니 서로 돕는 거지.” 그러던 할아버지가 쓰러졌다. 심장동맥(관상동맥)이 막혔다. 아이가 서울과학고에 진학했을 무렵이었다. 병실에 누운 할아버지는 “충분히 살았다. 지금 죽어도 행복하다”며 웃었다. 손자는 다짐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아프고 힘든 사람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소년은 할아버지처럼 아픈 사람의 노쇠한 세포를 활성화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연구에 빠졌다. 2008년 7월, 마침내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국제 학술지에 제1저자로 논문이 실렸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 고교 2학년 학생이 이룬 성과였다. 논문을 본 의대 교수는 “바로 박사 학위를 줘도 손색없을 만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주인공은 김승찬 씨(23). 과학고 졸업 후 그는 우수인재선발전형으로 연세대 생명공학과에 진학했다. 4년 전액 장학금에 일대일 교수 멘토까지 제공받았다. 4학년인 현재까지 SCI급 논문만 8편을 발표했다. 74건의 특허를 냈고, 학술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또 대학 재학 중 ‘대통령과학장학생’으로 뽑혔고, ‘대한민국인재상’도 탔다. 그는 할아버지의 말을 잊지 않았다. 2011년 9월 지인들과 함께 대한민국인재연합회(대인련)를 만들었다. 재능기부와 나눔을 위해서다. 분야별 인재 600여 명이 모였다. 지난달 말 이 단체는 ‘꿈길나무’ 재능 캠프를 열었다. 피드백 및 설문을 통해 학생들의 리더십과 통솔력을 키운다. 앞으로 10년 뒤? 그의 눈은 두 곳을 향해 있다. 의과학 분야를 공부해 직접 개발한 의료기기를 환자들에게 나눠주는 일이 첫 번째, 재능기부 비정부기구(NGO)를 만드는 게 다음이다. 그는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한민족 핏속엔 나눔의 DNA가 있어요. 국민 10명 중 1명이 재능기부 하는 날까지 앞만 보겠어요. 아, 노벨상도 받고 싶어요.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 그 과정도 노벨상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신진우 동아일보 기자 niceshin@donga.com    김담덕 동아일보 인턴기자 연세대 건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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