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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감… 분노…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에 악플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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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2월 19일 00:00 프린트하기

'악플러 : 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대하여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내용의 댓글을 즐겨 올리는 사람' 2004년 국립국어원이 신조어 사전에 올린 내용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각종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상습적으로 악성 댓글(악플)을 다는 현상이 일반화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출신 울랄라세션의 임윤택 씨가 위암으로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입에 담기도 민망한 악플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말기 암 환자에게까지 무차별 공격을 일삼는 악플러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동아일보는 서울대와 한양대에 재학 중인 악플러 2명과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의 동의를 얻어 문답내용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제공해 심리분석을 의뢰했다. 분석은 장홍석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김범조 삼성사과나무정신과의원 원장이 맡았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막연한 불만, 패배의식, 과도한 자부심 등 복잡한 감정이 온라인을 통해 표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악플 3만 개…우월감 배설 서울대생 A 씨(25)는 인터넷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디씨) '서울대갤'에서 악플러로 명성을 날린다. A 씨는 "내가 단 악플만 3만 개가 넘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디씨같은 홈페이지에 착한 댓글을 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며 죄의식조차 없었다. 심영섭 교수는 '지나친 자기 우월감이 악플을 통해 나타나는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처음부터 A 씨가 악플러로 활동했던 건 아니다. 대학입시에 관심이 많던 시절 입시 관련 커뮤니티에 발을 디디면서 댓글 싸움에 관심을 가졌다. 처음엔 악플을 읽는 게 재미있어서 사이트에 방문하다가 자신도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디씨 서울대갤에서 필명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악플러가 됐다. A 씨의 악플은 공통된 패턴을 보인다. 심 교수는 "'서울대 외 다른 대학은 학교도 아니다'등 학벌과 관련된 언급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가 주로 활동한 사이트도 고3 수험생 커뮤니티인 '오르비스옵티무스'와 디씨 '서울대갤'이다. 학벌에 대한 논쟁이 자주 올라오는 공간이다. A 씨는 "00대에 다닐 바엔 차라리 자살을 하라"는 악플도 서슴지 않고 달았다. 심 교수는 "자신이 서울대생이고, 똑똑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데 현실에서 자랑을 늘어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악플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장홍석 원장은 A 씨가 히틀러식 성향을 좋아하는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디씨 서울대갤에 고등학생이 서울대 진학방법을 묻는 글을 올리면 "서울대갤에 외부종자가 와서 휘젓고 다니는 게 싫다"며 악플을 달기 때문이다. 히틀러처럼 '순수혈통'에 대한 강박이 있다는 것이다. A 씨는 하루 대여섯 시간씩 자신의 악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한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하고 느낀 적도 있지만 곧 '이런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 이 싸움을 끝내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결국 다시 악플달기에 집중한다. 자신의 행동이 범죄로 연결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위대한 전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A 씨는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활동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최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혹시나 임용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앞서 악플도 잠시 중단했다. 그는 "잠시 악플을 달지 않는 내 모습이 '동물원 철창에 갇힌 호랑이'같았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장 원장은 "악플을 절제하는 것이 본능을 억제당하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며 "자기 내부의 감정을 악플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명문대생이면서 악플을 일삼는 A 씨 같은 부류의 악플러는 평판에 민감하고 인정받기를 즐기는 '영웅신드롬'에 사로잡힌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유명인의 성공을 평가절하하는 악플러들과는 구별되는 또다른 유형의 '온라인 찌질이'다. 김범조 원장은 "A 씨는 악플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신상털기를 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남보다 빨리 알고 이를 퍼뜨리며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는데 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다름'을 인정 못하는 강박증 한양대생 B 씨(25)는 처음 PC통신을 접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게임서버에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정한 기준이 있고, 그 선을 넘는 행동에 대해서만 악플을 단다"고 말했다.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최근 B씨는 부동산 가격을 알리는 기사에 상습적으로 악플을 달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부동산시세와 맞지 않았다는 이유다. 정 원장은 B씨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다른 내용을 확인하면 이를 용납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악플을 쏟아내 고쳐야만 속이 후련한 일종의 강박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판단했다. B 씨의 별명은 독설가로 유명한 방송인 '김구라'다. 불만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말다툼을 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택시파괴자'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택시만 타면 기사와 싸우기 일쑤다. 버스에서 등산객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으면 "조용히 좀 합시다"하며 화내고 욕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B 씨의 분노표출은 온라인에서 극에 달한다. 남대문경찰서, 서대문경찰서 등에서 악플 때문에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2009년에는 공익근무요원을 할 당시에는 포털사이트 '네이트'에 악플을 하도 많이 달아서 자신이 일하고 있던 법무부에 항의 팩스가 날아올 정도였다. 한 시민단체에 대해 악플을 달았던 게 화근이었다. B 씨는 "영창에 가지 않기 위해 피해자측에 사과전화를 했지만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왜곡되고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악플을 남긴 것이라 죄책감이 없다"고 해명했다. B 씨는 소위 진보적인 정치견해를 보이는 글에 "빨갱이" "불법시위 폭도들"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쓴다. 그는 "온라인에서 선동하는 좌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이를 고치려는 의도로 악플을 단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B 씨를 "이 세상을 무질서한 공간으로 규정하고, 자신이 이를 바로잡아야 분노가 풀리는 유형"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B 씨는 "댓글을 통해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나면 쾌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정 원장에 따르면 이는 B 씨 자신이 온라인에서 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받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자신이 악플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전지전능한 사람이 된 것 같은 환상에 빠져있다는 뜻이다. 경찰조사를 받고 영창 신세를 질 뻔 했지만 그는 자신의 악플 행위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B 씨는 "세상에 아직도 미친놈이 많다"고 말했다. "악플러로 활동하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B 씨는 "법률적인 처벌을 받을 위기가 있었지만 '똥 밟았네'라는 생각만 들었지 죄책감은 없었다"고 밝혔다. 김범조 원장은 B 씨에 대해 "부모님이 권위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공무원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B 씨가 부모님과 본인 스스로 생각한 성취수준보다 만족하지 못한 상황들이 반복돼 분노가 증폭됐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B 씨의 악플은 주로 타인의 행위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오프라인에서 쌓인 열등감을 온라인에서 정의의 사도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상대를 평가절하 하는 식으로 표출한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 사이코패스 성향에 중독증상 겹쳐 이 같은 악플러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능력이 떨어진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내성적인 경우가 많다. 강도형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나타난 악플러들의 일반적인 심리를 △반사회적 성향 △강박증세 △'대응'을 통한 공격성향 강화 등 세 가지로 설명했다. 특히 악플러들이 악플을 반복할수록 강도가 세지는 것은 다른 사람의 '대응'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쓴 댓글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악플을 다는 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악플러들의 행동이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도박처럼 중독되는 병리현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악플러에 대한 처벌 등 법적 제도로도 막기 어렵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나쁜 짓에 대한 호기심과 실행 욕구를 부른다는 분석도 있다. 최항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악플을 달면 파급효과가 크고 자기 자신의 존재감이 일시적으로 높아진다는 착각에 빠져 쾌감을 느끼는 것"이라며 "악플 다는 행위를 마치 유명 스타를 칼로 찌른 뒤 관심을 한몸에 받는 것과 비슷하게 여기면서 중독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동아일보 기자 sykim@donga.com   곽도영 동아일보 기자 freiheit@donga.com   이철호 동아일보 기자 iron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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