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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화면에 코를 갖다 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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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화면에 코를 갖다 댄 사연

2013.04.08 00:00
지난 4월 1일 필자는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구글에서 ‘구글 노우즈(google nose)’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그 물체의 냄새가 컴퓨터 화면에서 풍긴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긴가…’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화면에 있는 레몬 이미지를 클릭한 뒤 코를 화면에 갖다 대고 킁킁거렸다. 10초 20초가 지나도 톡 쏘는 레몬 향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해서 구글 노우즈로 검색을 해 훑어보니 만우절 장난이다. 후각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의 일가견이 있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던 필자로서는(예전에 한 화장품회사연구소 향료팀에서 5년간이나 일했으므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는 사실에 누가 보지도 않는데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천재들의 집합소라는 구글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잠깐 이성을 마비시킨 걸까. 아무튼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전화사기에 놀라 수백만 원을 입금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수준 낮은 사기가 먹히는 게 이해가 안 되겠지만 막상 당하는 사람은 그 순간 깜빡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냄새 진동 이론 뒷받침하는 연구결과 나와 컴퓨터에서 냄새가 나게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유는, 컴퓨터가 시각과 청각 같은 물리적 감각만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완전하지는 않지만). 즉 화면을 통해 빛(광자)을 내보냄으로써 시각 정보를, 스피커를 통해 음파를 내보냄으로써 청각 정보를 줄 수 있다. 반면 후각과 미각은 해당 감각을 주는 분자가 직접 감각기관인 코와 혀에 도달해 자극을 줘야 하는 화학적 감각이므로 컴퓨터가 이런 정보를 준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다. 이번 해프닝을 고백한 김에 후각 메커니즘 관련해서 얼마 전 발표된 논문 한 편을 소개한다. 냄새분자가 콧속 후각수용체에 달라붙으면 후각수용체의 구조가 바뀌면서 그 신호가 신경을 타고 뇌에 전달되고, 뇌가 그 신호 패턴을 해석해 어떤 냄새라고 해석한다는 게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후각 메커니즘이다. 사람의 경우 후각이 많이 퇴화해 400종이 채 안 되는 후각수용체가 작동하는데, 냄새 분자마다 반응하는 후각수용체의 종류와 개수, 즉 패턴이 달라 뇌가 ‘아 그 냄새!’라고 지각한다는 것이다. 뜻밖에도 냄새분자와 후각수용체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생화학 교과서를 보면 리간드(ligand, 수용체에 달라붙는 신호분자로 냄새분자도 리간드다)와 수용체 사이는 열쇠와 자물쇠의 관계로 비유되고 있다. 수용체의 구조에 딱 들어맞는 리간드가 붙으면 수용체의 구조가 바뀌면서 신호가 전달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후각도 열쇠-자물쇠 메커니즘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20여 년 전 루카 투린이라는 괴짜가 나타나 후각은 그렇게 작동하는 게 아니라며 딴지를 걸고 나섰다. 즉 후각수용체가 반응하는 건 냄새분자의 모양이 아니라 냄새분자를 이루는 원자 사이의 진동이라는 것이다. 바로 냄새의 ‘진동 이론’이다. 필자는 2010년 ‘더사이언스’에서 루카 투린의 삶과 이론을 소개한 바 있다(‘루카 투린, 향기에 매혹돼 아웃사이더가 된 과학자’ 참조). 루카 투린은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동위원소를 이용하는 기발한 방법을 제안했다. 즉 원자량이 1인 수소(H) 대신 원자량이 2인 중수소(D)가 쓰인 냄새분자를 만들면 분자모양, 즉 구조는 똑같아도 원자 사이의 진동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두 이론 가운데 어느 게 맞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열쇠-자물쇠 메커니즘이 맞다면 우리는 동위원소 냄새분자를 구분할 수 없을 것이고, 진동 메커니즘이 맞다면 서로 다른 냄새라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투린은 아세토페논(acetophenone)이라는 냄새분자의 수소를 중수소로 바꾼 분자를 갖고 둘 사이의 냄새를 비교해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보였다. 그는 이 발견을 포함해 진동 이론을 주장하는 논문을 써 탑 저널인 ‘네이처’에 보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게재가 거절되고 결국 1996년 학술지 ‘화학감각’에 싣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2004년 ‘네이처 신경과학’에 투린의 이론에 찬물을 끼얹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분자를 고도로 정제한 뒤 비교하자 수소 아세토페논과 중수소 아세토페논의 냄새를 구분할 수 없었다는 것. 투린의 결과는 아세토페논 시료에 미량 들어있는 불순물 냄새가 달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작 자신의 논문은 거절하고 그에 반하는 결과를 담은 논문을 자매지에 실어주는 네이처의 처사에 투린은 속이 꽤 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저널 ‘플로스원’ 1월호에 투린이 교신저자로 돼 있는 논문이 하나 실렸다. 기체크로마토그래피로 좀 더 완벽하게 분자를 분리한 뒤 아세토페논 실험을 했더니 정말 차이가 없었다는 내용이다. 투린 스스로 자신의 결과를 뒤집은 셈이다. 물론 그가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위해 따로 논문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인데, 본론은 머스크(musk) 냄새를 지닌 분자인 싸이클로펜타데카논(cyclopentadecanone)의 수소를 중수소로 바꾼 동위원소 분자를 만들어 원래 분자와 냄새를 비교하자 일반인도 느낄 정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는 내용이다. 즉 냄새의 진동 이론이 맞다는 확실한 증거를 얻었다는 것이다. 투린은 논문에서 싸이클로펜타데카논을 고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머스크 냄새를 내는 분자들은 서로 공통점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조가 제각각인데 냄새는 서로 너무 비슷하다는 것. 즉 분자 모양만으로는 머스크 냄새를 설명하기 어렵다. 첨부하자면 원래 머스크 냄새 물질은 사향, 즉 노루의 분비샘에서 얻었는데, 섹시한 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사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향료회사들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들을 여럿 만들었다. 아무튼 중수소가 치환된 싸이클로펜타데카논의 냄새를 맡아보면 기본 머스크 향은 유지되지만 여기에 약간 탄내나 견과류 기름 비슷한 냄새가 섞여 있는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투린은 이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명쾌한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탄소와 수소 결합이 8개뿐인 아세토페논은 중소소로 바뀌어도 다른 수용체가 인식하지 못한 반면, 28개나 있는 싸이클로펜타데카논의 경우 중수소로 치환된 분자를 인식하는 다른 수용체도 인식해 새로운 냄새 프로필이 나타났다는 것. 아무튼 이 발견으로 투린(현재 그리스의 알렉산더플레밍생의과학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다)은 다시 목청을 높이게 됐다. 십 수 년이 지났지만 머스크향을 내는 다양한 분자들의 냄새는 필자의 기억에 아련히 남아있다. 중수소로 치환돼 새로운 뉘앙스를 띠게 된 싸이클로펜타데카논의 향기를 꼭 한 번 맡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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