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비교는 쉽고, 애정어린 비판은 어렵다

통합검색

비교는 쉽고, 애정어린 비판은 어렵다

2001.06.30 22:33
내가 <방문 학생>(visiting student)신분으로 토론토대학 과학사학과에 머물 때의 이야기다. 내가 속한 학과가 25주년을 맞아서 거하게 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 나도 한 구석에서 맥주를 홀짝이면서 구경을 했는데, 파티장 모습 중에 참 인상깊은 것이 하나 눈에 띄었다. 우리 학과가 속한 건물의 청소를 담당하는 여자 청소부가 곱게 정장을 차려입고 파티에 참석해서 교수들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교수들 중엔 (한국으로 따지자면) 문리대 학장과 대학원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수와 청소원이 서로의 이름을 알고, 서로가 서로를 그냥 이름(first name)을 부르고, 청소원과 학장이 포도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 놀라왔다. 난 이 얘기를 후배들에게 쓰는 편지에도 썼던 것 같다. 속으로 "맑스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 사회를 보고 신분과 계급이 철폐되었다고 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 때는 통신 같은 것이 거의 없던 시절인데, 아마 그때 통신이 있었다면 캐나다에 비해서 위계적이고 폼잡기를 좋아하는 한국 사회를 꼬집는 글을 썼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각종 파티에 참석하는 회수가 많아지면서 내 생각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건물에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이 줄잡아 한 10명은 되는데, 그 사람들 중 다른 누구도 교수들과 학생들의 파티에 초대를 받거나 참석하는 사람이 없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교수와 청소원은 함께 섞여서 담소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며, 내가 초기에 목격한 것은 범례(example)가 아니라 예외(exception)에 가까왔던 것이다. 여기도 사실 (물론 한국보다는 조금 덜할지 모르지만) 서열, 직위의 고하와 "신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임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왜 그 파티에선 청소원과 교수가 어울렸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 있기는 힘들지만, 나는 두 가지 답을 끌어 낼 수 있었다. 먼저 그 파티는 그 자리에 왔던 청소원의 30년 근속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자리기도 했다. 두 번째 요소는,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청소원이 금발의 백인 여자(할머니)였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청소와 같은 보수가 적은 허드레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 중에 백인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청소원은 대부분 남미나 아시아의 유색인 이민자거나 폴란드 같은 동구 출신 이민자들이다. 현재 우리 건물의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들 중에 백인은 한명도 없다. 이들은 대부분 영어가 무척 서툴다. 백인 교수와 유색인 청소원 사이의 거리는 까마득한 것이다. 지금 내가 한국과 캐나다를 비교하는 글을 쓴다면 훨씬 더 신중할 것 같다. 외국에 살아보거나 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한국에서 만연하는 "말도 안되는" 문제들이 (하다못해 사람들이 길에 침을 퉤퉤 뱉는 것부터 일상적인 부패가 만연 한 것 등) 눈에 잘 띄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의 이런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한국에만 있다보면 이런 것조차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렇지만 쉬운 비교에는 위험이 있다. 넌 왜 A처럼 공부 못하니? 당신은 왜 B처럼 돈을 못벌어요? 너는 왜 C처럼 이쁘지 못하지? 왜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처럼 질서를 잘 지키지 못하지? 왜 한국 공무원은 서양의 공무원처럼 친절하지 못하지? 이렇게 툭툭 던지는 비교에는 애정이 없다. 이런 비교는 싸잡아서 욕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될지 모르지만, 대안의 제시에는 인색하다. 상대에 애정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상대에게 상처를 내기 위해서 내 뱉는 얘기일 경우가 많다. 이런 얘기들은 새로운 가능성과 비전으로 사람에게 기운을 불어넣기보다는 사람을 맥빠지게 한다. 내 경험이 보여주듯이 이런 비교에는 피상적인 비교도 많다. 최근에 한국(한국인, 한국문화, 제도...)을 비판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이중 어떤 책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접하고, 이 책이 그저 쉬운 비교를 이용한 악의적인 비난의 목적을 가지고 씌어진 책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고나서, 잠깐 스쳐지나간 생각들이다. ※ 이 내용은 'Frontier flaza'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태그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이 기사어떠셨어요?

댓글 0

5 + 4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