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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나무의 방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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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나무의 방화벽

2005.11.12 16:47
가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온 산과 들을 빨갛고 노랗게 물들이던 단풍잎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풍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쟁은 꺼지지 않고 있다. 가을이면 나뭇잎에 붉고 노랗게 단풍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수십년 동안 단풍은 잎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현상으로 여겨졌다. 녹색을 띠는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가려져있던 다른 색소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에 단풍 색소가 가을에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단풍은 더 이상 부수적인 현상이 아니라 식물이 무언가를 위해서 만들어내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최근 과학자들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두고 두 갈래로 나뉘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첫번째는 빨갛게 또는 노랗게 물든 잎은 해충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잎의 신호’ 가설로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인 윌리엄 해밀턴 박사가 제안했다. 이 가설은 그가 앞서 발표한 수컷 새들의 화려한 깃털에 대한 가설에서 출발한다. 그는 공작새 등 수컷의 화려한 깃털은 암컷에게 자신이 건강하고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을 자랑하는 광고라고 설명했다. 화려한 깃털을 만들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병균이나 기생충에 시달리지 않는 강한 수컷만이 사치스러운 깃털에 투자할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다. 암컷이 화려한 수컷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하면서 수컷간의 경쟁도 치열해져 더 화려한 깃털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가설이다. 해밀턴은 단풍잎의 선명한 색깔은 나무가 자신이 건강함을 곤충에게 알리는 경고라고 생각했다. 나무는 잎을 갉아먹는 해충에게 독소를 만들어 대항한다. 가을에 나무를 선택해 알을 낳는 진딧물 같은 해충에게 단풍잎은 “나는 내년 봄에 독소를 만들 충분한 에너지가 있으니 다른 나무에다 알을 낳으라”고 경고하는 메시지라는 것. 색이 선명한 단풍잎을 피해서 진딧물이 알을 낳으면 봄에 부화한 새끼들은 독소가 적은 잎을 먹을 수 있다. 반면 선명한 단풍잎을 가진 나무는 해충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진딧물은 선명한 단풍잎을 피하고 단풍잎은 더 선명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설명이다. 잎의 신호 가설은 2000년 봄 해밀턴이 아프리카에 연구하러 갔다가 걸린 말라리아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 제자들에 의해 발표됐다. 그의 제자였던 아체티 박사는 해밀턴의 생각을 수학적 모델을 통해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또 다른 제자인 브라운 박사는 해밀턴의 가설이 예측한 대로 나뭇잎의 단풍이 선명한 종일수록 그 종의 잎만 먹는 진딧물의 종류도 많다고 보고했다. 해밀턴의 가설대로라면 해충에 시달리지 않는 종류의 나무는 경고할 해충이 없기 때문에 필요성 없는 선명한 단풍잎을 만들지 않는다. 반면 해충이 많은 종류의 나무들은 해충의 공격을 덜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더 선명한 단풍잎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이들의 발표에 고무돼 다른 과학자들도 잎의 신호 가설을 시험했다. 노르웨이의 과학자들은 선명한 단풍잎을 만드는 자작나무가 다음해 봄에 해충의 피해를 덜 입는 사실을 보고했다. 또한 아체티는 곤충학자인 레더 박사와 함께 귀룽나무를 조사해 늦은 가을까지 녹색을 띠는 나무에 진딧물이 알을 많이 낳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식물생리학자인 위스콘신대의 호치 박사는 위스콘신 지역에서는 단풍이 들기 전에 이미 잎을 먹는 곤충들이 알을 낳고 죽는다며 잎의 신호 가설을 비판했다. 그는 단풍이 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햇빛으로부터 잎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제안했다. 나무는 겨울을 위해 잎에 있던 엽록소 등 광합성에 관련된 기관들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회수한다. 엽록소가 줄어들면 나뭇잎이 처리하지 못하는 빛의 비율이 증가한다. 과도한 빛은 햇볕이 우리의 피부를 손상시키는 것처럼 식물에게도 해를 끼친다. 필요이상으로 쪼여진 빛은 식물의 광합성작용을 방해하고 활성산소를 발생시켜 잎 내부 기관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이 때 붉은 색을 띠는 안토시아닌과 노란 색을 띠는 카로티노이드가 빛을 막아주고 활성산소 발생을 억제한다. 많은 식물생리학자들은 색소의 이런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단풍잎에 대해서 해밀턴의 설명이 끼어들 부분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호치 박사팀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안토시아닌을 만들지 못하는 돌연변이 나무와 정상 나무를 비교했다. 돌연변이 나무는 가을에 양분을 회수하는 능력이 정상 나무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온실에서 인공조명을 쪼이며 재배하면 정상인 나무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실험은 안토시아닌이 빛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쉐퍼 박사와 그의 제자인 롤샤우슨은 발행을 준비하고 있는 논문에서 식물이 만들어내는 독소는 태양빛에 매우 취약하며 만들어지는 과정이 안토시아닌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안토시아닌이 독소를 보호하거나 독소를 만드는 과정에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단풍색이 독소의 양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풍색이 독소와 관련되지만 곤충에 대한 신호는 아니며, 색소의 주요 기능은 빛을 차단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브라운 박사와 아체티 박사는 색소가 잎을 태양빛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떤 나무는 붉게 물들고, 어떤 나무는 그렇지 않은 지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노란 단풍잎은 햇빛으로부터 잎을 보호하는 작용이 없는 카로티노이드에 의한 색으로 보호작용이 있는 안토시아닌 색소는 없다. 따라서 빛 차단 가설로 노란 단풍잎을 설명할 수 없다. 가을 단풍이 어떤 이유로 물드는지 밝혀지려면 더 많은 나뭇잎이 단풍이 돼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과학이 놀랍고 신비로운 사실들을 설명해버리기 때문에 무미건조하고 재미없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단풍은 과학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 경이롭고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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