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솔잎 넣고 송편을 찌는 뜻은

통합검색

솔잎 넣고 송편을 찌는 뜻은

2005.09.09 13:39
추석 전날에 온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데, 처녀 총각들은 여간 정성이 아니다. 왜 그런고 하니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배우자가 예쁘고, 볼품 없이 빚으면 신랑신부 될 사람의 미모도 볼품이 없다는 어른들의 말 때문이다. 이는 “밤에 손톱 깎으면 복 달아난다”는 말처럼 생활의 바른자세를 자연스레 가르치려는 어른들의 지혜일 것이다. 과학적으로 송편의 때깔과 배우자의 미모가 무슨 관련이 있을 것인가. 다만 송편 하나라도 정성으로 빚어내는 심성이라면 절세가인인들 어울리지 않으랴. 또 임신한 부인들은 송편에 솔잎 한가닥을 가로로 넣어 쪘다. 이 송편은 아이의 성별을 알려주는 삼신할머니의 메시지였다. 찐 송편을 한쪽으로 베어 물어, 문 부분이 솔잎의 끝 쪽이면 아들이요, 잎꼭지 쪽이면 딸이라고 했다. 솔잎이 과학적인 성별 진단 시약은 아니었지만, 아들 못 나으면 겪게될 시집살이가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른지. 송편에 담아놓은 우리 조상들의 사연이 이렇듯 소박하고 안타까웠다. 세균 죽이는 솔잎 향 송편을 찔 때는 솔잎을 먼저 시루에 깔아 시루 구멍을 덮고 그 위에 송편을 한 줄 놓는다. 다시 솔잎 한줄 송편 한줄 하면서 차곡차곡 놓는다. 아마도 송편의 ‘송’자가 소나무 송(松)인 이유가 솔잎을 넣고 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향긋한 솔잎 향을 배게 해서 맛깔을 더해보려는 지혜 쯤으로 생각돼왔던 솔잎 송편이 기실 더 깊은 과학에 바탕하고 있었다는 것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국민대 김기원 교수(산림자원학과)에 따르면, 식물은 다른 미생물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여러가지 살균물질을 발산하는데, 이를 통칭해 피톤치드(phytoncide)라고 한다. 피톤치드는 공기 중의 세균이나 곰팡이를 죽이고, 해충, 잡초 등이 식물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인간에 해로운 병원균을 없애기도 하는데, 백일해 병실 바닥에 전나무 잎을 흩어놓으니 공기 중의 세균량이 1/10까지 감소됐다는 보고가 있다. 그리고 결핵균이나 대장균이 섞여있는 물방울 옆에 상수리 나무의 신선한 잎을 놓으니, 몇분 후 이 세균들이 모두 죽어버렸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이 싱싱함을 보존하기 위해 생선회를 무채 위에 담고, 구더기를 없애려고 화장실에 할미꽃 뿌리나 쑥을 걸어두고, 바퀴벌레를 쫓기 위해 은행나무 잎을 집안 구석에 두었던 것들도 알고 보면 모두 피톤치드를 이용한 지혜였다. 그러니 솔잎으로부터 피톤치드를 빨아들인 송편에는 세균이 범접하지 못해 오래도록 부패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으니, 실로 과학적인 원리를 잘 이용한 것이 솔잎 송편이었던 것이다. 숲 속의 많은 나무들이 저마다 피톤치드를 내는데, 그 중에서 소나무는 보통나무보다 10배 정도나 강하게 발산한다고 한다. 옛 어른들이 “퇴비는 소나무 근처에서 만들지 않는다”고 한 것도 소나무의 항균작용이 너무 강해 퇴비에 유익한 미생물까지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송편 시루에 다른 잎이 아닌 소나무 잎이 들어간 이유를 알 것이다. 나쁜 귀신은 접근 못해 그렇다면 소나무가 예로부터 잡귀를 쫓는 정화의 상징으로 생각돼왔던 이유도 석연해진다. 제사를 지내는 신당은 물론, 제수를 준비하는 도가집, 공동우물, 마을 어귀 등에는 금줄을 치는데, 금줄에는 백지조각이나 소나무 가지를 꺾어 꿰어둔다. 아이를 낳았다는 표시로 치는 금줄에도, 장을 담글 때 장독에도 솔가지가 꿰어졌고, 무덤가에 빙 둘러 도래솔을 심은 뜻도 모두 잡귀의 칩입과 부정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집 주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으면, 생기가 돌고 속기(俗氣)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한 것도 같은 의미에서였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솔방울을 쥐고 있던 디오니소스가 괴물 타이탄에게 먹혔다가 다시 소생하는데, 서양에서도 소나무가 잡스러움을 물리치는 정화된 힘과 생식을 상징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피톤치드는 특히 편백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 침엽수에서 많이 발산되는데, 향기가 좋고, 살균성, 살충성이 있을 뿐 아니라, 인체에 독특한 작용을 가지고 있다. 피톤치드에는 C10H16, C16H24, C24H32 등 테르펜으로 통칭되는 다양한 화학성분들이 복합돼 있어 이들이 진통작용, 구충작용, 항생작용, 혈압강하, 살충작용, 진정작용 등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테르펜은 사람의 자율신경을 자극하고, 감정을 안정시키며, 내분비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감각계통의 조정 및 정신집중 등에 좋은 작용을 하는 숲 속의 보약이라고도 불린다. 김기원 교수에 따르면, 테르펜이 동물의 스트레스와 관련된 몸 속의 코르티솔의 농도를 현저하게 낮춰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그러니 환자들의 요양소가 왜 늘 숲 속이나 숲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는지도 설명이 된다. 중년의 어른들이 부르는 유행가 중에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하는 ‘산장의 여인’이라는 노래가 있다. 와병 중인 노래의 주인공이 왜 ‘산장’의 여인일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머물렀던 산장 주변에는 분명히 소나무가 많았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향기나는 나무, 향기나는 사람 테르펜 성분을 많이 내는 소나무는 그 쓰임새가 참으로 많다. 도가나 불가의 선식에는 솔잎이 필수품이었다. 선승들이 좌선수행을 할 때 종종 다른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솔잎가루와 콩가루를 섞은 것을 한줌 털어 넣고 물만 마시는데, 그래도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힘이 생기고, 추위와 배고픔도 모른다고 한다. 신경통이나 풍증을 치료할 때는 한증막에 솔잎을 깔고 솔잎 땀을 흘린다. 특히 솔잎이나 솔뿌리를 삶은 물로 목욕을 하면 젊어진다고 하는데, 혹자는 이것이 솔잎에 함유된 옥시팔티민이라는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옛부터 소나무 숲의 샘물은 불로묘약이라 해서 임금님의 수라상까지 올랐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도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강한 인품의 향으로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의 마음과 삶을 대하면 온갖 나태와 불의가 소독되고 정화되는 그런 사람. 이 가을에는 솔잎 송편처럼 향기로은 사람을 만나보자. 그리고 숲에서는 피톤치드의 신속한 작용을 성마르게 기대하지 않고 늘 숲에 친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자신의 변화도 향기 있는 사람과의 지속적인 교감 속에서 새싹처럼 움트는 것이 아닐까. [출처 : 과학동아]

태그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이 기사어떠셨어요?

댓글 0

7 + 6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