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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정체는 토네이도?, 「드래곤볼」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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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9월 11일 09:58 프린트하기

용의 순수 우리말은 ‘훈몽자회’에 따르면 ‘미르’, ‘아언각비’에 따르면 ‘미리’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龍門山)의 옛 이름은 ‘미리산’으로 ‘미리’가 ‘용’자로 대역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용은 ‘영웅’의 상징이었다. ‘삼국유사’에는 석탈해왕이 용의 자식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고 견훤이 후백제를 창건할 때 용이 관련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고려사’에 실린 서해 용왕은 태조 왕건의 아버지에게 먼 훗날 아들이 왕이 될 것을 예언했고 소설 ‘홍길동’에서도 홍 판서의 꿈에 청룡이 나타나 아들 홍길동의 탄생을 점지한다. 용은 호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에 실린 황룡사 설화에는 구층탑을 세우면 이웃나라의 항복을 받아 나라가 평안할 것이라는 예언이 등장한다. 실제 이 탑을 세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삼국이 통일됐다. 신라 원성왕 때는 당나라 사신이 신라의 호국용을 작은 물고기로 만들어 통 속에 담아 가지고 가려는 것을 저지하고 되찾았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의 낱말 중에는 ‘거룩함’, ‘높음’, ‘어짊’의 뜻으로 ‘용’(龍)자를 취한 것이 많다. 특히 왕에 관한 단어가 많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 임금의 눈물은 용루(龍淚), 임금의 옷은 용포(龍袍), 임금의 의자는 용상(龍床), 궁궐을 용궐(龍闕), 임금이 사용하는 가마는 용가(龍駕), 수레는 용거(龍車), 배를 용주(龍舟)라고 한다. 그리고 임금의 덕을 용덕(龍德), 지위는 용위(龍位), 은혜나 덕을 용광(龍光)이라 부른다. 또 임금의 위광을 빌어 자기 몸을 도사리는 악행을 일컬어 ‘곤룡(袞龍)의 소매에 숨는다’고 했고 입신출세의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했다. 용은 좋은 일이나 좋은 사람에 비유된다. 미천한 집안에서 큰 인물이 나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했으며 좋은 일이 닥쳐 기쁜 마음이 가득하면 ‘물 만난 용 같다’고 한다. ‘용 가는데 구름 간다’ 라든가 ‘용 못 된 이무기’ 등과 같은 속담도 용을 성스러운 동물로 그린다. ‘용산’은 한국 전역에 분포 용은 특히 물과 관련이 있으므로 화재가 자주 나는 곳에서 ‘용’자의 땅이름을 붙였다. 전남 담양군 대덕면의 용대리(龍垈里)는 원래 ‘가잣굴’ 또는 ‘가재동’이라고 불렸는데 마을에 화재가 자주 나자 불을 끄는 데는 용이 물을 내려야 한다고 해서 용대리로 고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후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형이 용 모습이 아니라도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용’자를 붙이기도 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의 용암리(龍岩里)가 그것으로 원래 이곳에는 누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바위와 마을 이름을 ‘누룩바위’라고 했다. 그런데 황간 현감이 지나다가 누룩은 삭는 것이라 하여 ‘용바위’ 또는 ‘용암(龍岩)’으로 고쳤다. 서울의 용산(龍山)은 용의 모습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용산의 용의 눈에 해당되는 자리에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한강로 모랫벌을 개발하면서 새 주택지를 만들고 신용산이라고 했다. 백제 기루왕 21년(98)에 두 마리 용이 한강에 나타났다는 기록을 들어 용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용산’이란 이름은 한국에 유달리 많아 무려 1000여 곳이나 된다. 산 이름에도 용산이 있고 마을 이름에도 용산이 있다. 그런데 지형이 용의 모습이면 풍수적으로 지세가 너무 강하다고 해서 그 고장의 혈을 끊어 놓거나 지맥을 누르는 것이 다반사였다. 충북 충주시의 용산도 그런 예이다. 이곳의 용산은 충주시의 구릉을 이루는 곳인데 고구려와 백제 때에는 산 위에 작은 못을 만들고 못가에 돌탑을 세워 지맥을 눌렀다고 한다. 가뭄이 들었을 때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는 보통 용 모습의 산이나 지명에 ‘용’자가 들어간 곳에서 행했다. 그러므로 기우제를 지내는 곳의 단을 용단(龍壇)이라고 했다. 용소(龍沼) 또는 용연(龍淵)에서도 기우제를 많이 지냈는데 그런 못에는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용은 서양의 용과는 달리 우리의 삶에 매우 밀착해 있다. 일본의 작가 아쿠다카와 류노스께(芥川龍之介)가 쓴 작품에 나오는 용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코우후쿠사(興福寺)의 한 스님이 동료들로부터 핀잔 받은 것에 앙심을 품고 절의 명성에 흠집을 낼 것을 계획했다. 그는 신도들에게 근처에 있는 사루사와 연못에서 ‘3월 3일 날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여주겠다’라고 소문을 퍼트렸다. 사루사와 연못에 용이 살고 있다고 묵시적으로 인정한 절로서는 난처한 일이었다. 용이 코우후쿠사와 함께 있다는 내력으로 신자들을 끌어 모았기 때문에 사실을 밝힐 수도 없었다. 그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 굉장한 반응을 일으켰다. 3월 3일에 연못 주위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맑고 잔잔한 날이었다. 흥복사의 승려들은 좌불안석이었다. 만약에 용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절의 명성에 치명상을 입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오후가 되어도 용이 나타나지 않자 군중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속임수라는 말이 퍼지며 군중이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 갑자기 몇 조각의 구름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바람이 일었다. 순식간에 사방이 어두워지고 폭풍우로 변하면서 억수와 같은 비가 쏟아졌다. 모두들 놀라는 사이에 거대한 흑룡 형상의 연기가 연못에서 솟아올라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자연현상을 ‘용’으로 형상화 중국의 한나라 때 철학자인 왕충이 저술한 책 ‘논형’에 따르면 용이 승천할 때 나무를 꺾고 집을 부수는데 이는 토네이도와 유사하다. 용은 옛 우리말로 미르인데 미르의 어근은 ‘밀’로서 물(水)와 유사하다. 이 때문에 용은 예로부터 물과 관계가 깊은 동물로 흔히 큰 호수나 강, 바다와 같은 물속에 살며, 비와 바람을 몰고 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용왕이라는 바다의 신이 우리나라 해안지방에서 숭배되는 이유도 용이 물을 지배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용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용은 대체로 짙은 안개와 비를 동반하면서 구름에 싸여 움직인다. 또한 바다나 연못 등에서 하늘로 오르내릴 때에는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안개와 구름이 자욱하다. 언론인 이규태는 ‘삼국사기’에 실린 “백제 고이왕 5년에 벼락이 치더니 관문으로부터 황룡이 날라갔다”와 조선왕조실록의 “명종 9년 진부령 근처에서 황룡이 승천하는데 큰 나무들이 뽑혀 날아갔다”는 기록을 들어 용과 토네이도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용의 승천에 관한 설명에서 대부분 나무가 뽑힌다든지 안개, 벼락 등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토네이도와의 연관성이 분명하다는 주장이다. 많은 학자들은 용이 뇌우와 비를 동반하는 것을 감안하여 고대인이 태풍이나 소용돌이 현상을 용이 비상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용은 여의주를 갖고 백성에게 복을 주거나, 오랜 가뭄 끝에 폭풍을 동반한 비를 내려준다. 위대한 힘의 상징과 선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동양의 용은 재난이 아니라 사람들이 꼭 필요할 때 나타나는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전의 흥행에 성공한 ‘드래곤볼’에 나오는 용이 7개의 드래곤볼을 모으기만 하면 원하는 소원을 모두 들어준다는 것도 동양용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계속. 참고문헌 : 『땅 이름 기행』, 배우리, 이가서, 2006 「용」, 전용훈, 『과학동아』 2000년 1월호

이종호 페르피냥대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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