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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우주정거장(ISS)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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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우주정거장(ISS)의 하루

2007.09.28 10:31
‘아침’이라고 정한 시간에 일어나니 마침 해가 뜨고 있다. 사실 여기서 아침의 정의는 애매하다. 아침이 ‘해가 떠서 머리 꼭대기에 이를 때까지’라면 여기 국제우주정거장(ISS)은 하루에 아침을 16번이나 맞는 셈이다. ISS가 지구 주변을 90분마다 한 번씩 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해만 바라보다간 정신이 혼미해진다. 3개월째 여기 머무르고 있는 폴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라며 어깨를 두드렸지만 난 아직 일주일째라고. 그 이전에 시간이 지나긴 지나는 건지 모르겠다. 그저 일과시간이 끝나면 잠들고, 8시간 뒤 알람시계의 울림에 눈을 뜨는 행위를 반복할 뿐. 어쨌든 이곳의 시간은 경도 0도인 영국 그리니치의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일어나자마자 습관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진공 장치가 달린 변기에 엉덩이를 꼭 붙이고, 발판에 끼운 다리에 힘을 빡 주고, 장을 쥐어짜야 한 덩어리가 나온다. 하지만 중력이 없기에 그냥 놔두면 녀석은 영원히 내 엉덩이에 달려있을 거다. 그러니 변기가 진공청소기처럼 ‘슉슉’ 빨아들여야 한다. 소변을 볼 땐 아예 청소기 호스같이 생긴 관을 갖다 댄다. 큰일을 치른 뒤 물수건으로 닦는 것으로 아침 세면을 대신했다. 샤워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 온 첫날만 샤워해 봤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는데, 물방울이 둥둥 떠다니다 콧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스쿠버용 마스크를 써야 했다. 게다가 샤워한 다음 바람으로 몸과 샤워실을 완전히 말린 뒤에야 나올 수 있었다. 돌아다니는 물방울이 ISS 내의 정밀기계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폴이 “네가 샤워하는데 쓴 물이 고작 4.5L야”라고 할 때는 신기했다. 몸을 닦고 싶을 때는 번거로운 샤워 대신 따뜻한 물에 적신 스펀지가 더 좋다. 생활 모듈에 아무도 없을 때를 골라 몸을 닦는다. 지구보다 청결한 공기 속에 있으니 스펀지 목욕으로 충분하다. 머리는 물일 필요 없는 특수 샴푸를 바르고 타월로 닦아내면 끝이다. 씻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이곳 ISS은 천국일지도. 몇 덩어리 빼내고 나니 뱃속이 공허를 호소했다. 신선한 식품을 실은 물자수송선은 내일 도착할 예정이니 오늘은 건조식품을 먹어야 한다. 출발하기 전에 짜놓은 식단에 따르면 오늘 아침 메뉴는 햄버거다. 후추를 뿌려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곳에서 후추 뿌리기는 금물이다. 대신 후추액이 든 주사기를 고기에 찔러 주사한 뒤 먹었다. 주스는 빨대로 마신다. 입을 떼면 주스가 분출하기 때문에 한 번 빨고 조임쇠로 꼭 잡아줘야 한다. 음식 쓰레기는 우주에 버리지 않고 물자수송선이 갖고 간다. 화장실에 모아놓은 ‘덩어리’들도 함께. 간단히 양치를 하고 오늘 주요 일정인 우주 유영을 위해 이동했다. 치약으로 이를 닦는 것까지는 같지만 다 닦은 뒤 꿀꺽 삼킨다. 민트향이 은은히 입에 남는다. 오늘은 태양 활동이 강하지 않아 외부로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베테랑인 폴은 15분 만에 우주복을 다 입고 나선 “처음 훈련할 때 몇 시간씩 걸리던 데 비하면 이건 초광속이지”하며 화통하게 웃었다. 나도 그리 늦은 편은 아니라구. 기압을 조절하는 공간인 에어락으로 갔다. 에어락이 진공으로 바뀌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영화에서 우주비행사가 우주복을 입고 있을 때 들리는 소리는 자신의 숨소리뿐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에어락이 진공으로 바뀌면서 코끼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안전밸브에서 여분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다. 휴대용 환풍기가 윙윙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교신 헤드셋을 통해 폴의 유쾌한 노래(“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도 들을 수 있다. 목숨줄인 노란색 줄을 잡고 풀면서 조심스럽게 태양전지판으로 이동했다. 덜그럭거리는 낡은 판을 떼어내고 새 것으로 교체하는 일은 꽤 힘든 작업이었다. 관제센터의 분석으로는 먼지가 부딪혀 전지판이 망가진 것 같다고 했다. 우주 먼지는 공기저항이 없어 고속으로 움직인다. 먼지 때문에 고정 부분이 박살나다니 지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우주복 안에 있는 영양 바를 먹었다. 야성미 넘치게 입으로 휙 당겨서 힘차게 베어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가는 우주유영 하는 내내 영양 바 덩어리가 헬멧 안쪽을 떠다니는 장면을 봐야 할지 모른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나 싶을 정도로 6시간이 후딱 가버렸다. 우주에서 둥둥 떠 있는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 못 하게 근사하지만, 이 이상 버티다간 산소가 바닥날 거다. 더듬더듬 에어락으로 돌아간 뒤 다시 기압을 올린다. 우주복을 벗고, 공기를 빼고, 배터리는 충전기에, 산소통은 ‘바이바이’다. 미국산 우주복은 산소통을 재활용한다는데, 러시아산은 화끈하게 한 번 쓰고 버린다. 우주에서 힘을 쓰고 나니 몸은 어느새 피로를 호소한다. 32년간 지구 생활에 길들여진 눈과 머리는 아직 혼란에 빠져 있지만, 근육과 위장은 늘 그랬듯 정직하고 우직하다. 동료들에게 저녁인사를 하고 생활 모듈에 있는 조그만 내 방으로 향한다. 모두와 함께 자도 상관없지만 - 무중력 상태에서는 아무도 코를 안 골기 때문에 더더욱 - 어쩐지 오늘은 나 홀로 자고 싶다. 벽에 고정된 침낭에 곰실곰실 기어들어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귀마개를 하고 눈을 감았다. 새어 들어오는 모니터 불빛 때문에 처음에는 안대까지 꼭 챙겼지만, 요새는 안대 없이도 잘 잔다.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사라지고 편안한 공기만이 몸을 감싼다. 이제 1주일, 그리고 앞으로 6개월. 90분마다 지구를 도는 재빠르고 작은 이 공간에서의 생활은 계속 된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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