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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55년 페니실린 발견 플레밍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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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3월 11일 09:28 프린트하기

나무 가시에 찔리거나 못에 긁히는 것만으로도 운이 나쁘면 팔이나 다리를 잘라야 했다. 심하면 목숨을 잃었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그랬다. 페니실린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1928년 여름휴가에서 돌아온 알렉산더 플레밍은 영국 런던 세인트메리병원 실험실에서 세척할 배양접시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곰팡이가 핀 주변으로 포도상구균 덩이가 녹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곰팡이에서 나온 물질이 세균을 파괴한 것이다. 페니실린 발견의 순간이었다. 1941년 2월 12일 43세의 경관이 최초로 페니실린 치료를 받게 된다. 그의 얼굴에는 온통 고름이 뒤덮였고 감염 때문에 왼쪽 눈을 제거해야 했다. 오른쪽 눈도 위험한 상태였고 뼛속 깊숙이 균이 침투해 오른쪽 팔에서도 고름이 나왔다. 그는 단지 2개월 전 장미나무에 얼굴을 긁혔을 뿐이다. 페니실린 투입 후 환자 얼굴의 농양은 사라졌고 정상 체온을 되찾아 식사도 잘했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만들던 페니실린 생산량이 부족해 결국 치료는 실패한다. 페니실린을 정제하고 대량 생산해 환자 치료에 적용한 인물은 플레밍의 논문을 보고 연구에 매진한 생화학자 언스트 보리스 체인과 병리학자 하워드 플로리였다. 대량 생산된 페니실린은 인류에게 ‘마법’이 됐고, 세 사람은 1945년 10월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위대한 발견은 우연을 디딤돌로 삼았다. 플레밍의 실험실로 날아든 그날의 곰팡이는 ‘페니실리움 노타툼’으로 플레밍 자신도 몰랐던 희귀 곰팡이. 아래층에서 바람을 타고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곳에 균류 전문가의 실험실이 없었다면 얻기 힘든 행운이었다. 또 포도상구균과 곰팡이의 성장 온도는 큰 차이가 나는데 공교롭게도 그해 여름 런던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가 상승하면서 곰팡이가 제대로 피었다. 그러나 그 우연은 ‘준비된 우연’이었다. 플레밍은 콧물 속 효소인 라이소자임이 특정 박테리아를 녹이는 것을 놓치지 않고 봐 두었기에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류를 감염의 공포와 죽음에서 탈출시킬 약제를 찾기 위해 꾸준히 실험하고 준비했다. 1955년 3월 11일 그는 영면했다.

허진석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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