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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3] “맨발로 지구를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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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3] “맨발로 지구를 신고”

2016.02.20 18:00

숭어 한 지게 짊어지고

함민복                         


뻘길 십 리
 
푸드덕 푸드덕
몸망치로 때려 박아
지게에서 내려서려는 숭어
 
맨발로
지구를 신고
 
숭어가 움직이면
움직임을 느낀 만큼
숭어가 되는
 
증발하는 생명 한 지게 지고
뻘에 박혀 있는 흙못 하나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마음을 치는 시]의 세 번째는 함민복 시인의 시입니다. 충북 충주가 고향인 함민복 시인은 대학 시절부터 삼십대 중반까지 서울 변두리에서 거주하다가 1996년, 그러니까 20년 전부터는 강화도 동막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이 오십에 결혼할 때까지 노총각으로 살던 시인은 간간이 몇 곳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한 것 말고는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전업’ 시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가난했던 시인은 오랫동안 보증금 없는 십만 원짜리 폐가를 빌려 살았습니다. 그의 착한 표정만큼 인품도 좋으니 동네 사람들과도 잘 지냈겠지요. 시인의 시들에 등장하는 동막리 청년들과도 어울려 위의 시에서처럼 숭어 잡이에 노동을 보태면서 말이죠.

 

강화도가 위치한 서해는 동해와 달리 갯벌(“뻘”은 방언)이 많습니다. 간조(干潮)와 만조(滿潮)의 차이도 커서 간조 때에는 “뻘길”이 “십 리”나 펼쳐질 정도로 바닷물이 수평선을 향해 물러납니다. 그 바다에서, 그 갯벌에서 어부가 다 된 시인은 숭어를 한 지게나 지고 뭍으로 걸어 나옵니다.

 

아직 살아 있는 숭어들은 시인의 지게 위에서 “푸드덕 푸드덕”거리고, 그렇게 위아래로 날뛰는 숭어들은 물이 아닌 낯선 지게에서 탈출해보려고 스스로 “몸망치”가 되어 직립 동물인 인간의 몸에 자꾸만 충격을 줍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걸음마다 시인의 발을 움켜쥐는 “뻘길”을 걷기도 힘겨운데, 더구나 갯벌의 길이도 무려 “십 리”나 되는데, 무거운 지게 위에서 숭어마저 날뛰니 시인의 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땀범벅이었을 그 상황에서 함민복 시인은 아주 탁월한 시 한 구절을 건져 올립니다. “맨발로 / 지구를 신고”라고요.

 

‘맨발로 지구를 신었다’라는 참 대단한 이 은유는 함민복 시인만의 시적 상상력입니다.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그 갯벌에 빠지는 지친 발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자신의 발이 지구를 신고 있다고 했을까요. 무협지보다도 더한 과장이지만 여기에서 시인은 독자를 빙그레 웃게 만듭니다. ‘유머’는 시에서도 활력을 줍니다.

 

그러면서도 “숭어가 움직이면 / 움직임을 느낀 만큼 / 숭어가 되는” 시인은 이내 진지해집니다. 숭어와는 생태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지만, 자신의 어깨에서 등허리에서 “푸드덕 푸드덕” 살려는, 살아내려는 숭어의 안간힘을, 그러나 결과가 빤한 그 최후의 삶의 진동을 시인은 몸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숭어가 되는”, 즉 동화(同化)되는 시인의 마음이 읽혀집니다.

 

그러니 이어지는 마음의 행로는 “증발하는 생명 한 지게 지고”입니다. 물을 떠나게 된, 햇볕에 노출된 숭어들은 “증발하는 생명”이 되어 죽어갑니다. 인간의 먹거리인 물고기의 죽음 앞에서, 그 사실을 자신의 피부로 느끼는 시인은 괜스레 미안해져 자신도 하잘것없는 존재로 치부해버립니다. “뻘에 박혀 있는 흙못 하나”에 불과하다고요.

 

“흙못.” 왜 자신을 “흙못”이라고 했을까요. 갯벌을 걷는 동안 흙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흙’(자연)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기에, 갯벌에 ‘못’처럼 박혀 있는 듯한 자신을 그 근원적 존재로 은유하지 않았을까요. 이렇듯 좋은 시는 삶의 외연을 끝없이 확장하면서 독자의 마음을 칩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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