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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5] ‘서울 생활이란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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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5] ‘서울 생활이란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 같은 것’

2016.03.05 18:00

鳥致院

 
기형도

  사내가 달걀을 하나 건넨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1시쯤에
  열차는 대전에서 진눈깨비를 만날 것이다.
  스팀 장치가 엉망인 까닭에
  마스크를 낀 승객 몇몇이 젖은 담배 필터 같은
  기침 몇 개를 뱉어내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축축한 의식 속으로
  실내등의 어두운 불빛들은 잠깐씩 꺼지곤 하였다.
 
  서울에서 아주 떠나는 기분 이해합니까?
  고향으로 가시는 길인가보죠.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달걀 껍질을 벗기다가 손끝을 다친 듯
  사내는 잠시 말이 없다.
  조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죠. 서울 생활이란
  내 삶에 있어서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조치원도 꽤 큰 도회지 아닙니까?
  서울은 내 둥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방 사람들이 더욱 난폭한 것은 당연하죠.
  어두운 차창 밖에는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한때 새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간이역에서 속도를 늦추는 열차의 작은 진동에도
  소스라쳐 깨어나는 사람들. 소지품마냥 펼쳐보이는
  의심 많은 눈빛이 다시 감기고
  좀더 편안한 생을 차지하기 위하여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이는 남자들.
  발 밑에는 몹쓸 꿈들이 빵봉지 몇 개로 뒹굴곤 하였다.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덕분에 저는
  도둑질 말고는 다 해보았답니다.
  조치원까지 사내는 말이 없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마지막 귀향은
  이것이 몇 번째일까, 나는 고개를 흔든다.
  나의 졸음은 질 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버린다.
  설령 사내를 며칠 후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한들 어떠랴. 누구에게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
  사내는 작은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견고한 지퍼의 모습으로
  그의 입은 가지런한 이빨을 단 한번 열어보인다.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던 사내가
  마주 걸어오던 몇몇 청년들과 부딪친다.
  어떤 결의를 애써 감출 때 그렇듯이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인다.
  조치원이라 쓴 네온 간판 밑을 사내가 통과하고 있다.
  나는 그때 크고 검은 한 마리 새를 본다. 틀림없이
  사내는 땅 위를 천천히 날고 있다. 시간은 0시.
  눈이 내린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1989년 3월 7일 새벽 3시 20분. 한 사내가 서울 종로의 어느 심야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그의 이름은 ‘기형도.’ 사인은 뇌졸중, 그의 나이 29세였습니다. 두 달 뒤, 그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됩니다.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그의 유일한 시집은 단번에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발간된 지 27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 시집은 한국 문학의 쓸쓸한 별이 되어 수많은 문학 독자들의 손에서 들려 있습니다.

 

그가 “나의 영혼은 검은 / 페이지가 대부분이다”(「오래된 書籍」)라고 노래했듯이, 기형도 시인의 시는 “호롱불 주위로 방 안 가득 풀풀 수십 장의 입김이 날리던 밤”이라고 썼던 「바람의 집」처럼 유년 시절의 우울한 추억이나, 위의 시 「鳥致院」처럼 1980년대 도시인들의 침울한 삶을 담고 있습니다.

 

겨울날, 시인은 아마도 경부선 열차를 타고 대전에 내려가는 중이었나 봅니다. “스팀 장치가 엉망인”, “간이역에서 속도를 늦추는 열차”라면 KTX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 당시에는 서민들이 이용했던 ‘통일호’ 열차가 아니었을까요. 조치원에 도착한 시간이 “0시”이니, 밤 10시가 지난 서울역발 열차였겠지요. 또 “1시쯤에 / 열차는 대전에서 진눈깨비를 만날 것이”라니 대전이 종착역임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시인이 열차에 오른 이유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시인에게 “달걀을 하나 건넨”, 우연히 동석한 “사내”는 “낙향”하는 길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歸鄕)이 아닌,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추락하는 의미인 “낙향”(落鄕)입니다. “사내”로 지칭되는, 한창 산업화 시기에 무작정 상경했던 수많은 이농민들이 척박하고 고단한 서울 생활에 실패하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이라는 땅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시 속의 장면은 몇 장의 흑백 사진 같습니다.

 

“이번엔, 진짜, 낙향”한다는 “사내”에게 “서울 생활이란 / [……]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 방점과도 같은 것”이었고, 그에게 “서울은 / [……] 사람들에게 / 분노를 가르쳐”준 곳입니다. 그래서 끝내 낙향하는 “사내”는 저녁 식사를 걸렀는지 달걀을 먹으며 동석한 시인에게도 한 개 건네는 시골 인심이 있는 분입니다. 자신의 “낙향”이라는 말에 스스로 마음을 다친 듯, “달걀 껍질을 벗기다가 손끝을 다친” 사내는 “서울에서 아주 떠나는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여겼는지 “조치원까지” “말이 없”습니다.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 /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같은, “열차의 작은 진동에도 / 소스라쳐 깨어나는 사람들”, “소지품마냥 펼쳐보이는 / 의심 많은 눈빛이 다시 감기고 / 좀더 편안한 생을 차지하기 위하여 /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이는” 다른 승객들 역시 “사내”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열차에서 선잠에 든 그들 삶의 “발 밑에는 몹쓸 꿈들이 빵봉지 몇 개로 뒹굴곤 하”니 말입니다. 그 삶의 편린을 응시하는 시인은 침울한 어조로 말합니다. “나의 졸음은 질 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버린다”라고요.

 

그렇듯 잠을 이룰 수 없는 시인은 조치원역에서 하차해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던 사내”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이는 몇몇의 청년들과 마주치는 장면을 바라봅니다. 낙향한 그곳 역시 사람들이 “어떤 결의를 애써 감”추며 살아가는 곳임을 암시합니다. 그럼에도 당도한 그곳에서 다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쓸쓸한 “사내”가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천천히 걸어갑니다. 그 모습이, 시인에게는 마치 “크고 검은 한 마리 새”처럼 보입니다. ‘조치원’이라는 지명의 시 제목을 굳이 ‘鳥致院’이라고 한자어로 쓴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곳은 ‘새를 떠나보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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