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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디자인만 바꿔도 치매치료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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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디자인만 바꿔도 치매치료 효과

2016.03.11 09:14


[동아일보] 침실엔 젊었을 때 사진… 수도꼭지엔 냉-온 표시 스티커… 차분한 단색 벽지…
환경 개선땐 생활 수행능력 향상… 서울시, 인지건강 가이드북 발간

“저 사진을 도대체 어디서 찾았지…. 그래도 이렇게 걸어 놓으니 옛날 생각도 나고 좋아요.”

서울 양천구의 한 연립주택에 사는 이순임(가명·79·여) 씨 부부의 침실 벽에는 빛바랜 사진 두 장이 나란히 걸려 있다. 각각 40여 년 전 찍은 이 씨와 그의 남편의 독사진이다. 잡동사니에 섞여 오랜 기간 행방을 알 수 없던 사진들을 최근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직원인 김원기 씨(37)가 발견했다. 3일 김 씨는 “추억이 담긴 친숙한 물건은 기억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씨 부부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차분한 느낌이 든다. 베이지색 벽지 덕분이다. 원래 붉은색의 꽃무늬 포인트 벽지가 화려하게 있던 곳이다. 눈에 잘 띄지 않던 흰색의 조명 스위치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는 검은색 스위치로 바뀌었다. 현관 옆에는 1m 높이의 수납장이 생겼다. 바닥과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밥통과 각종 물건들이 이곳에 차곡차곡 정리됐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수납장 첫 번째 칸에는 집 열쇠와 할아버지의 약이 들어 있었다. 원형이었던 방 문고리는 힘을 조금만 줘도 열리는 레버형으로 교체됐다.

복잡하기만 하던 이 씨 부부의 집이 이처럼 차분하게 바뀐 것은 지난해 3월. 4년 전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이 씨 남편(77)의 ‘인지건강’을 돕기 위해서다. 서울시가 인지건강 연구진의 아이디어에 따라 집 안 곳곳을 변화시켰다.

인지건강 디자인의 핵심은 ‘간소한 일상’. 서울시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정지향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잡동사니가 많아 물건을 찾지 못하는 등 일상의 어려움이 있으면 환자들이 당황하게 되고 생각 자체를 꺼리게 된다”며 “이런 요인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집 안 찬장과 서랍장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스티커가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스티커마다 ‘수건’ ‘수저’ ‘침구’라는 글씨와 그림이 인쇄돼 있다.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있던 자리를 금방 잊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얼핏 보면 사소한 디자인이지만 이 씨 부부의 삶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대한치매학회 연구진과 정지향 교수, 최경실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장이 부부의 삶을 6개월간 관찰한 결과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77.78% 향상됐다. 부부의 동의 아래 24시간 비디오 촬영 관찰을 해보니 행동의 정확성이 크게 높아졌다. 이 씨는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만으로도 무척 편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 씨 부부의 사례 등을 토대로 ‘인지건강 주거환경 가이드북’을 국내 최초로 발간했다. 집 안 공간마다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과 체크리스트, 스티커가 부록으로 들어 있다. 각 자치구 치매지원센터에 있고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전자책으로도 볼 수 있다. 시민청 서울책방에서 구매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인지건강 디자인이 치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약물 치료보다 환자의 일상을 돕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가벼운 인지장애를 겪는 노인에게 치매 예방 효과도 있다”며 “치매서비스개발센터를 두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영국처럼 노인 친화적인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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