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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6] ‘송진으로 봉한 맷돌편지는 석양만이 풀어 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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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6] ‘송진으로 봉한 맷돌편지는 석양만이 풀어 읽으리라’

2016.03.12 18:00

 

 

붉은 마침표


                                      이정록

 

 

  그래, 잘 견디고 있다
  여기 동쪽 바닷가 해송들, 너 있는 서쪽으로 등뼈 굽었다
  서해 소나무들도 이쪽으로 목 휘어 있을 거라,
  소름 돋아 있을 거라, 믿는다
 
  그쪽 노을빛 우듬지와
  이쪽 소나무의 햇살 꼭지를 길게 이으면 하늘이 된다
  그 하늘길로, 이 마음 뜨거운 덩어리가 타고 넘는다
  송진으로 봉한 맷돌편지는 석양만이 풀어 읽으리라
 
  아느냐?
  단 한 줄의 문장, 수평선의 붉은 떨림을
  혈서는 언제나 마침표부터 찍는다는 것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아마도 위의 시 「붉은 마침표」는 이정록 시인이 좋아하는 술 한 탁배기 걸치고 이 시 제목이 의미하는 “석양”처럼 불콰한 낯빛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해 근방에 있는 충남 홍성이 고향이자 주거지인 시인이 어떤 연유로 동해안에 가 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그래, 잘 견디고 있다”라는 말투로 봐서는 가족이나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나 봅니다. 그리고 “견디고 있다”라고 말로 봐서는 좋은 일로 떠나가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 시는 짧은 답장의 편지입니다. “여기 동쪽 바닷가 해송들, 너 있는 서쪽으로 등뼈 굽었다”라며 동쪽에 떠나와 있는 시인이 자신을 동해안의 소나무에 비유하여 서쪽을 그리워합니다. 그러고는 서쪽의 사람에게 ‘당신도 내가 그리울 테지?’라고 말하는 대신, “서해 소나무들도 이쪽으로 목 휘어 있을 거라, / 소름 돋아 있을 거라,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소나무 기둥의 우툴두툴한 껍질 같은 “소름”은 날씨가 춥거나 두려울 때 돋는 생리 현상이니 이 편지가 오고 간 때일 ‘겨울’의 의미로 읽어야겠죠.

 

그러고는, “그쪽 노을빛 우듬지와 / 이쪽 소나무의 햇살 꼭지를 길게 이으면 하늘이 된다”며 ‘우리’가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킵니다. 서해의 소나무 꼭대기에 걸린 노을과 동해의 소나무 끝에 걸린 햇빛(저물녘이겠죠)을 직선으로 이으면 그 공간이 ‘우리’ 머리 위에서 펼쳐진 하늘이 될 거라는 멋진 표현입니다.

 

이어서, “그 하늘길로, 이 마음 뜨거운 덩어리가 타고 넘는다”며 시인의 간절한 그리움을 “뜨거운 덩어리”, 즉 붉은 석양에 비유합니다. 물리적으로 석양은 동해안보다는 서해안에서 수백 킬로미터 더 가까우니 시인이 석양을 바라보는 행위는 그리운 서쪽을 향해 “타고 넘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 시의 압권, “송진으로 봉한 맷돌편지는 석양만이 풀어 읽으리라”로 이어집니다. 시인이 쓰는 답장의 편지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잘게 갈아’ 쓰고 있는 편지이기에 “맷돌편지”라고 했겠죠. 그리고 시인의 맷돌처럼 ‘묵직하고 섬세한’ 마음은 그 애타는 둥근 모습을 닮은 “석양”만이 알아주리라고 씁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는 이 “맷돌편지”야말로 독자의 마음을 칩니다. 다 말해버리면 시가 협소해지니까요.

 

그러고는 편지의 수신자에게 묻습니다. “아느냐? / 단 한 줄의 문장, 수평선의 붉은 떨림을 / 혈서는 언제나 마침표부터 찍는다는 것을”라고요. “단 한 줄의 문장”은 가로로 쓴 한 줄의 문장이 가로로 한 획을 그은 “수평선” 같다는 비유이고, 그 수평선의 “붉은 떨림”은 화창한 날 잔파도의 배경에 흔들리며 서해의 수평선으로 지는 석양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죠. 그 석양이 수평선 근방의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기에 그 “단 한 줄의 문장”은 “혈서”(血書)가 됩니다. 그리고 붉게 타오르며 사그라드는 석양을 ‘둥근 점’, 즉 “마침표”라고 시인은 씁니다. 그러니 혈서(모든 결의에 찬 글)는 힘 있게 찍는 ‘마침표’처럼 단단한 의지로 시작한다는 삶의 통찰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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