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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음모론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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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9일 07:00 프린트하기

지난 15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에 벌어졌던 다섯 번의 대국이 막을 내렸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4:1로 알파고가 승리를 거머쥐었죠. 알파고가 3승을 선취해 대회의 승부를 결정지었던 12일은 인간의 만들어 낸 컴퓨터가 인간이라는 벽을 돌파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9단의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었죠.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릴 수 있었던 3연패 후의 짜릿한 1승, 백을 잡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지막 대국에서 흑돌을 집어든 모습,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승자에게 축하를 보낸 인터뷰 등에서 느껴진 건 정점에 도달한 사람만이 뿜을 수 있는 대인의 풍모였습니다. 이번 대회와 관련된 한국기원 측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평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인간의 위대함을 잘 드러낸, ‘아름다운’ 대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구글도 공식 블로그에“이세돌과 알파고가 팀을 이뤄 함께 서로를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회, 해법으로 이끌었다(☞바로가기)”고 썼는데,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게 아닌가 싶네요.

 

헌데, 이번 대회에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이 9단이 충격의 1패를 했던 대회 첫날부터 여러 말들이 흘러나왔는데요, 보아하니 다음 두 가지 정도로 압축이 되는 것 같습니다. 첫째, 알파고는 실제로 구글의 막대한 클라우드 컴퓨팅을 자원을 활용한 부르트 포스(brute force) 방법으로 대국하고 있기 때문에 이 9단은 애초부터 한 판도 이길 수 없는 불공정한 경기다. 둘째, 구글은 알파고가 전승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심과 세계 바둑계의 반발을 우려해 네 번째 대국에서 알파고가 지도록 일부러 기력을 낮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들입니다. 우선 첫 번째, 부르트 포스는 말하자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하는 방법입니다. 다섯 자리 숫자 자물쇠의 번호를 모를 때 00000부터 99999까지 다 넣어보는 거죠. 비효율적이지만 성공률이 100%일 수밖에 없는 강력한 방법입니다. 바둑에 부르트 포스를 적용한다는 건 한 수 한 수마다 대국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 최적의 수를 찾아내겠다는 겁니다. 발상 자체야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죠.

 

문제는 바둑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부르트 포스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100년 내에 바둑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CPU가 1초에 10^10(10의 10승)번 계산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정말 최소한도로 잡아도  2.45 x 1036 개의 CPU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0의 개수를 몇 개 적게 옮겼을 수도 있긴 합니다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가늠도 안 되는 수인데 말이죠. 그러니까 부르트 포스로는 답이 안 나오는 바둑 문제를 딥 러닝과 인공신경망을 도입해 풀어보려 한 것이 알파고인 것이죠. 그 시도가 크나큰 성과를 얻어낸 것이고요.

 

그리고 알파고가 부르트 포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4국 알파고의 패배입니다. 부르트 포스는 성공률 100%의 방법입니다. 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모든 경우를 계산하기 때문에 했다 하면 무조건 성공입니다. 부르트 포스를 사용한 알파고가 이 9단에게 졌다고요? 말이 안 되죠.

 

두 번째 주장도 허무맹랑한 건 마찬가집니다. 대국 후 구글 시가총액이 50조 원 이상 급증했다고 하더군요. 돈은 냉정하지요. 반드시 알파고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겠습니다만, 인공지능의 산업적, 경제적 가치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는 반영되었을 겁니다. 알파고가 전승했다면 시가총액이 더 오르지 않았을까요? ‘구글은 선한 기업’ 따위의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구글이 알파고를 일부러 지게 할 정도의 기업윤리를 가졌다면,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심, 바둑계의 반발 따위를 신경이나 쓸까요.

 

영화 게임 오버: 카스파로프와 기계 포스터 - THINKFilm 제공
영화 게임 오버: 카스파로프와 기계 포스터 - THINKFilm 제공

사실, 이 9단이 우승하지 못했을 경우 이런 음모론이 나오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일이었습니다. 1997년 IBM의 딥 블루가 당시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6연전에서 3.5대 2.5로 최종 승리한 것을 두고도 이런저런 말이 나왔던 전력이 있거든요. 카스파로프 본인이 “딥 블루의 행마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창의성을 봤다”면서 특히 2번 대국 도중에 여러 명의 인간 체스 최고수들이 개입했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IBM이 속임수를 썼다는 것인데요, 일부 사람들은 카스파로프가 딥 블루와의 재대결을 원했지만 IBM이 이를 거부하고 딥 블루를 분해해 박물관으로 넘긴 것이 그 증거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IBM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요. 증거도 없고요.

 

딥 블루와 카스파로프의 대국 자체가 주가를 부양시키려는 IBM의 술책이었다는 주장을 담은 ‘경기 종료: 카스파로프 대 기계(Game Over: Kasparov and the Machine)’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습니다. 실제로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졌던 1997년의 대국 이후 IBM의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는데요, 순진한 카스파로프가 멋도 모르고 IBM이 짜 놓은 그물에 빠져들었다는 것이죠. 흥미로운 주장이긴 하나, 체스계 인사들의 가정과 의심 외에는 특별한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긴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바둑이나, 체스를 둘러싼 이런 음모론들이 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겠지요. 왜 그럴까요?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자신의 저서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기막히게 뛰어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음모론은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안을 좋은 놈과 나쁜 놈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간결하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로 바꿔 제시해 주기 때문에 매력적이라는 것이죠.

 

나아가 그는 음모론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은 왜 이렇게 좋지 못한 일 투성이인가?’가는 근본적 질문에 대해 ‘나쁜 놈 때문이야’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나쁜 놈이 누구인지 알면 이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들의 전략과 전술, 속셈을 낱낱이 알면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갓셜의 말을 곱씹으면서 위의 음모론들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잠재력에 버금가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시작되려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저 인공지능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엇인가를 할 때 인간보다 못해서 그런 건지, 인간보다 뛰어나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이 9단과 알파고의 2번 대국, 처음엔 모두가 알파고의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경기 종반에 가서야 대단한 묘수라고 판명이 났던 한 수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접할 때 그것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려 하기보다는 쉽게 단순화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근거 없는 음모론은 그 결과이겠죠. ‘인간의 바둑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은 개발되지 않았다, 구글이라는 나쁜 놈이 우리를 속인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조만간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올, 이해의 대상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치부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 9단과 알파고 간의 대국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이든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갖는 함의와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찰해 보는 것이, 음모론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더 건설적인 인공지능 시대로 우리 모두를 이끌지 않을까 합니다. 더불어 이건 인공지능에 인간의 ‘지능’ 자체를 내맡겨 버리지 않으려는 연습이기도 하겠지요.

 

 

※ 필자 소개

최순욱. 대학을 졸업하고 전자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IT 전문 매체에서 인터넷, 미디어, 게임 등을 취재했다. 현재는 학교로 돌아와 미디어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미디어와 기술, 제도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에 관심이 많다.  


최순욱 IT 칼럼니스트

wooksoon.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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