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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과 강한 신념 그리고 집단의식이 테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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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과 강한 신념 그리고 집단의식이 테러를 만든다

2016.03.29 14:06

벨기에 브뤼셀에서 벌어진 테러로 인해 세계가 슬픔에 잠겼다. 이런 행위에는 오래된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이유들이 뒤섞여 있겠지만 이것들과 별개로 ‘심리적’으로는 어떤 요인들이 숨어있는걸까?


John Horgan 등의 학자들은 테러행위에 가담하는 사람들의 동기 및 신념 체계로 다음을 꼽는다. 1) 본인이 불의한 시스템의 피해자란 생각, 2) 정치적으로 힘이 없단 느낌, 3) 고로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의’를 집행해야 한다고 믿음, 3) 서로를 잘 이해하는 가족/친구가 있음, 4) 테러 행위에 가담하거나 단체를 지지함으로써 뜨거운 동지애와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생각


이런 생각들이 어떻게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불러오는 데 충분한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피해의식은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든다


근거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일반적으로 억울함 및 이로부터 출발한 피해의식은 사람들의 폭력성을 높인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남들은 몰라도) 나는 충분히 고생했으니 더 이상 고생하면 안 된다’ 같은 생각을 발전시키고 따라서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연구가 있었다(Zitek et al., 2010).


특히 피해의식이 ‘집단’적 양상을 띨 경우(우리 집단이 그간 당한 게 많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며 각종 폭력, 심지어 무고한 대상에 대한 폭력까지도 전부 정당화하고 ‘거리낌 없이’ 행사하는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한다(Noor et al., 2012).

 

 

강한 신념이 양날의 칼이 된다


어떤 무지막지한 행위가 실은 엄청나게 강한 도덕적 신념, 정의를 외치는 마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게 인간사의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테러 행위 또한 그에 해당 될 수 있다.


Skitka 등의 연구(2010)에 의하면 도덕적 신념이 강한 사람, 예컨대 ‘○○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는 절대적으로 옳다’ 등 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강한 신념 덕분에 주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키려 정치참여까지 가는 등 강한 추진력을 보인다고 한다.


반면 태도가 같지 않은 이에 대해 관용이 부족하며, 조직 내에서 얼마든지 발생 가능한 갈등을 용납하지 못하는 등 갈등 해결에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는 점에서 때론 법을 무시하거나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고. 여기에 테러 행위가 해당될 수 있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이렇게 ‘내가 백퍼센트 옳다’고 확신하고 싶을 때일수록 실은 매우 틀린 것일 수 있음을 생각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

 

 

테러리스트는 공감능력이 낮다?


흔히 테러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일 것만 같다. 하지만 연구들에 의하면 의외로 반대의 경우일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공감능력’이 폭력성을 높인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공감능력이 높을수록 ‘우리가 남이가’에 심취하고 친한 사람들을 지키는 데 물불가리지 않는 등, 결과적으로 제3자나 외집단에 해를 가하거나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Buffone & Poulin, 2014).


성격특성 중 ‘원만성(사람들과의 관계, 조화를 중시하는 특성)’과 ‘성실성’이 높을수록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실망시키기 싫은 나머지 잘못된 명령에도 쉽게 복종하기도 한다. 밀그램 실험같이 어떤 사람을 고문하라고 했을 때 원만성이 높을수록 또 성실성이 높을수록 더 높은 확률로 응한단 연구가 있었다 (Bègue et al., 2015).


위에서 살펴본 바 극단적인 예지만 ‘자신들의 정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잔인한 행동을 하는 테러리스트 중에도 자기 집단 사람들에 대해 공감능력, 충성심이 강하고 우리 패밀리를 위해 내 이 한 목숨 희생하겠다고 하는 경우들이 꽤 있을 듯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개인들의 ‘공감능력’과 ‘원만성’만 키우면 세상에 평화가 올 것이다-라고 하는 건 다소 나이브한 생각이라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공감능력이란 ‘만인’을 평등하게 향하기보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 ‘자기 주변’ 등을 선택적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최근 유명한 인지심리학자 Paul Bloom도 The Atlantic 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공감/이타심 같은 감정이 세상을 정말 좋은 곳으로 만드는 걸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들 감정의 한계는 ‘내가 이입할 수 있는 대상’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다음의 예를 언급했다. 감정에 기반해서 도덕적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자기 ‘주변’의 안전을 위해 다른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을 하게끔 만드는 결정을 내리곤 한다. 또는 눈 앞에 ‘보이는’ 문제에만 마음을 빼앗겨 더 크고 전지구적인 문제는 외면하곤 한다.


세상을 정말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자기 자신의 Altruistic joy(스스로의 이타적 생각/행동에서 오는 즐거움)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타인의 관점에서 그들을 어떻게 돕는게 좋을지 생각해 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성’이 필요할 때다.

 

 

하나인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메세지는 그 자체로 위험할 수 있다. 그 자체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우리(인종, 종교 등)는 응집성이 높고 서로 비슷한 가치관/운명을 공유하는 ‘하나!!’ 라는 메시지를 살짝이라도 주면 이런 메시지를 받지 않았을 때에 비해 상관없는 제 3자, 외집단(다른 인종, 종교)등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발견이 있었다. 또한 편견을 속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밖으로 ‘표출’, 예컨대 “흑인 애들이랑은 한 아파트에 살기 싫어!”라고 목소리를 내어 이야기 한다든지 하는 것에 대해서도 훨씬 ‘관대한’ 모습을 보이게 되기도 한다(Effron & Knowles, 2015).


실험을 하나 살펴보자. 백인들에게 ‘백인들은 응집성이 강하고 가치관, 삶의 방식도 비슷… 비슷한 운명을 공유 어쩌고’ 하는 기사를 읽게 한다. 그러고 나면 ‘백인들도 서로 다르고 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어쩌고…’하는 기사를 읽었을 때에 비해 ‘흑인’에 대한 적대심이 높아졌다. 또 흑인에 대해 표출되는 여러 편견(걔들은 다 범죄자야. 상종할 수 없어 등)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냐고 질문했을 때도 꽤 심각한 편견에 대해서도 ‘괜찮다’고 하는 태도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테러’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예로 들었지만, 피해의식, 무지막지한 신념, 한정적인 공감능력, 집단주의 등이 폐해로 이어지는 경우는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늘 의심해보고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다.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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