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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싸움 중에도 소방장비 개발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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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6월 18일 15:02 프린트하기

의릉 정자각 - 이종호 박사 제공
의릉 정자각 - 이종호 박사 제공

경종은 어려서부터 병약했는데 숙종은 세자가 질병이 있으므로 후사가 없을 것을 우려하여 몰래 이이명(李頤命)을 불러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후사로 정할 것을 부탁하였다. 이것이 추후에 큰 화를 불러 그를 지지하는 소론과 연잉군을 지지하는 노론간의 당쟁이 격화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경종이 즉위한 지 2달 만에 그의 무자다병(無子多病)을 이유로 건저(建儲, 왕위 계승자를 정하는 일)의 논의가 일어났다. 노론인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등은 연잉군을 세제(世弟)로 책봉하게 한 후 왕이 병환중이어서 정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우므로 휴양하도록 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세자에 의한 대리청정을 요구하였다. 이에 소론은 왕권을 침해하는 불충이라 해 강하게 반발하여 이 안건은 결국 철회되었지만 나이 어린 연잉군을 앞장 세우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므로 결론적으로 경종 대에 소론에 의해 노론은 철퇴를 맞는다. 마침 노론이 주도하여 경종을 폐출시키려는 역모사건이 소론 목호룡의 고변(告變)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기회를 엿보던 소론 측은 유배 중인 노론 핵심 4명을 사사(賜死)한 뒤 노론의 주도적인 인물 50여인을 처단하고 170여인을 유배 또는 연좌로 처벌했다. 이것이 ‘신임사화(辛壬士禍)’이다.


이후에도 소론의 과격파인 김일경 중심의 정권은 노론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벌여서 그의 재위 4년 동안은 당쟁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이런 정국의 혼란은 경종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고 즉위 4년이 되던 해 자리에 누운 지 단 몇 일 만에 급서했다. 

 
그의 짧은 치세 동안 당쟁이 절정에 달했지만 서양의 수총기(水銃器, 消火器)를 모방해 제작하게 했고 독도(獨島)가 우리의 영토임을 밝혀주는 내용을 담은 남구만(南九萬)의 『약천집』을 간행하는 등 열성적으로 업무에 나서기도 했다. 여하튼 경종이 남다른 것은 재위 4년 동안 신병과 당쟁의 와중에서 불운한 일생을 마쳐 그를 아는 한국인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경종의 왕비 선의왕후는 함원부원군 어유구의 딸로 세자 시절 첫 번째 세자빈이었던 단의왕후가 숙종 44년(1718) 사망하자, 같은 해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경종이 즉위함에 따라 왕비가 됐다. 당시 60세였던 숙종은 눈병이 심해서 며느리인 세자빈이 조현례(朝見禮)를 할 때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백내장이 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매사에 조심스럽고 온유한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선의왕후는 경종이 사망하자 왕대비에 올랐다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다.


 

 

선의왕후 능침 - 이종호 박사 제공
선의왕후 능침 - 이종호 박사 제공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없는 이유로 민담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사약을 받은 희빈 장씨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싶다고 숙종에게 애원했다. 숙종은 처음에는 청을 거절했으나 한때 부부의 연을 맺었던 여인의 마지막 소원을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 결국 세자를 희빈 장씨에게 데려다 주었는데 이때 예기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독기 서린 눈빛으로 변한 희빈 장씨가 세자에게 달려들어 그의 고환을 잡아당겨 남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장희빈의 간악함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후세의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인식하지만 여하튼 경종에게 있어 어머니 장희빈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경종은 평생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병환에 시달렸고 자식도 남기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또 한 가지의 전설은 경종의 독살설이다. 경종은 장이 안 좋으면서 게장을 아주 좋아했다고 하며 그런 왕에게 음식상극인 게장과 곶감을 올렸고 결국 탈이 났다. 이때 연잉군이 직접 인삼차를 달여서 올렸는데 그날에 경종이 죽게 되어 이후 영조가 경종을 죽였다는 소문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야사가 있다. 참고적으로 식중독에는 인삼차가 상극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
   「의릉개방 10년을 맞이하여」, 김흥년, 문화재청, 2006.09.15.
    「[王을 만나다·39]의릉 (20대 경종·계비 선의왕후)」, 이창환, 경인일보, 2010.07.08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사진)

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

 

 

※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dongascience.com)가 공룡유산답사기, 과학유산답사기 2부, 전통마을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3부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4부를 연재합니다.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세계문화유산 속에 숨어 있는 과학지식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mystery123@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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