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사회가 정직해야 개인도 정직하다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6년 04월 04일 17:07 프린트하기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水至淸則無魚).
- 송 명신 언행록(宋名臣言行錄)

 

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바란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한 친구는 가까이 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는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요 며칠 시내에 나올 때마다 시끄러워 못살겠다.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선거유세 로고송 때문이다. 절박한 사람들에게 스피커를 끄라고 얘기할 수도 없고 빨리 선거철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이런 성가심은 아마도 필자가 선거에 무관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정치 무관심은 정치인에 대한 실망이 누적된 결과로 보인다. 여야가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처럼 펄펄 뛰며 싸우다가도 국회의원의 권력이나 세비를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킬 때는 조용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기가 찬다. 이렇게 나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에게 투표하겠다고 굳이 내 시간 들여가며 투표장에 갈 마음이 안 생긴다(그렇다고 투표를 안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정의는 고사하고 염치도 없는 위정자나 사회의 모습은 동서고금을 통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상적인 모습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이에 대해 나름의 해결책 또는 처세술을 제시했다. 즉 위에 인용한 중국의 문헌에 나와 있는 문구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런 것으로 오히려 정의가 지나쳐도 사회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입장이 있다. 반면 불교 문헌처럼 그런 모습을 외면하고 홀로 정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물이 탁한 정도도 차이가 꽤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북유럽의 국회의원을 취재한 프로그램을 잠깐 봤는데 수수한 모습이 딱 보기에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렴도가 높은 것 같았다. 반면 몇몇 나라의 부패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나라별로 자기기만 정도 차이 있어

 

학술지 ‘네이처’ 3월 24일자에는 사회를 조금이라도 낫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탈세와 정치부정, 부패 같은 사회의 규범을 어기는 풍조가 만연한 사회일수록 개인의 정직성도 낮다는 내용이다. 한 개인이 불교 문헌에서 인용한 위의 글귀처럼 사회의 관행을 무시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영국 노팅엄대 연구자들은 사회의 정직성이 개인의 정직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먼저 각종 지표로부터 159개국의 PRV지수를 산출했다. PRV는 ‘규범 위반 만연도(prevalence of rule violations)’의 약자다. PRV지수는 정치부정과 탈세, 부패 세 측면의 정도를 측정해 산출한다. 즉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민주화 정도를 평가하는 정치적 권리 지표와 지하경제의 규모, 세계은행의 부패통제지수의 2003년 데이터를 활용했다.

 

규범 위반 만연도(PRV) 지수에 따른 세계. 색이 짙을수록 PRV 지수가 높은, 즉 규범 위반이 일상화된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평균 수준으로 보인다. - 네이처 제공
규범 위반 만연도(PRV) 지수에 따른 세계. 색이 짙을수록 PRV 지수가 높은, 즉 규범 위반이 일상화된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평균 수준으로 보인다. - 네이처 제공

이렇게 얻은 PRV지수는 평균을 0으로 조절하자 나라에 따라 가장 좋은 -3.1에서 최악인 2.8까지 분포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PRV지수를 찾지 못했는데, 지도를 보면 평균 수준으로 나온 것 같다. 다음으로 23개 나라를 정해 2,568명을 대상으로 개인의 정직성 정도를 평가했다. 역시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포함되지 않았다. 참고로 테스트는 2011년에서 2015년 사이 대학생(평균 21.7세)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PRV지수를 산출할 때 영향을 주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직도는 ‘컵 안의 주사위 과제(die-in-a-cup task)’로 측정했다. 실험 참자들은 주사위를 두 번 던져 그 가운데 먼저 나온 값을 얘기해야 한다. 이때 당사자만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예를 들어 1은 1000원, 2는 2000원, 5는 5000원을 받는다. 다만 6은 6000원이 아니라 한 푼도 받지 못한다(0에 해당).

 

그런데 연구자들이 각 실험 참가자들의 실제 결과, 즉 참가자들이 얘기한 데이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지 못하는데 이로부터 어떻게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바로 통계에 답이 있다. 즉 나라별로 여러 사람의 대답을 통계처리하면 거짓말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 사람들이 100% 정직하다면 1에서 6까지 6분의 1에 가까운 확률로 답이 나올 것이다. 가로축(x)이 숫자(6 대신 0) 세로축(y)이 누적빈도인 좌표로 표시하면 y절편이 1/6 기울기가 1/6인 직선이 된다. 반면 100% 부정직하다면 가장 많은 보상을 받는 5가 100%일 것이다. 즉 4까지 누적빈도가 0인 그래프를 그린다.

 

연구자들은 정직도를 평가한 기존의 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 대다수가 이런 극단적인 부정직성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자기기만인 ‘정당화된 부정직성(justified dishonesty)’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정당화된 부정직성이란 거짓말이지만 아주 근거가 없는 건 아니라서 스스로 위안을 줄 수 있는 수준이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주사위를 두 번 던지게 한 게 바로 정당화된 부정직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즉 처음에 1, 두 번째 3이 나온 사람의 경우 차마 5라고 답하지는 못하지만 1 대신 3이라고 답하는 심리가 바로 정당화된 부정직성이다(어쨌든 나온 값이니까). 즉 순서에 관계없이 큰 숫자를 댄다.

 

주사위를 두 번 던진 경우 사람들이 100% 정당화된 부정직성에 따라 행동할 경우 0(6)이라고 보고할 확률은 2.8%(1/36), 1은 8.3%(3/36; (6,1), (1,6), (1,1)), 2는 13.9%, 3은 19.4%, 4는 25%, 5는 30.6%다.

 

‘컵 안의 주사위 과제’ 데이터로 산출한 23개국 사람들의 개인 정직성 그래프다. 가로축이 보고한 숫자이고 세로축이 누적빈도다. 검은 직선은 100% 정직한 경우, 짧은 점선은 100% 부정직한 경우, 긴 점선은 100% 정당화된 부정직성인 경우다. PRV가 높은 나라 사람들(자주색)의 주사위 평균 숫자는 3.53으로 정당화된 부정직성(JDB)의 평균값인 3.47에 가깝다. 반면 PRV가 낮은 나라 사람들(녹색)의 평균 숫자는 3.17로 꽤 낮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 참조. - 네이처 제공
‘컵 안의 주사위 과제’ 데이터로 산출한 23개국 사람들의 개인 정직성 그래프다. 가로축이 보고한 숫자이고 세로축이 누적빈도다. 검은 직선은 100% 정직한 경우, 짧은 점선은 100% 부정직한 경우, 긴 점선은 100% 정당화된 부정직성인 경우다. PRV가 높은 나라 사람들(자주색)의 주사위 평균 숫자는 3.53으로 정당화된 부정직성(JDB)의 평균값인 3.47에 가깝다. 반면 PRV가 낮은 나라 사람들(녹색)의 평균 숫자는 3.17로 꽤 낮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 참조. - 네이처 제공

PRV지수가 -3.1에서 2.0에 이르는(평균 -0.7) 23개국의 누적빈도 그래프의 평균값은 예상대로 정당화된 부정직성 곡선에 가깝게 나왔다. 이를 나라별로 나눠 그려보자 PRV지수가 낮은 나라들의 경우 대부분 정당화된 부정직성 곡선에서 100% 정직성 곡선 사이에 분포했다. 반면 PRV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정당화된 부정직성 곡선에 가까웠다. 나라의 정직성과 국민의 정직성이 대체로 같이 간다는 말이다.

 

게다가 실험 참가자들은 아직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하기 전인 대학생들이다. 즉 세상에 부대끼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처세술을 배우기도 전에 이미 그 사회의 도덕성 수준에 맞게 개인의 도덕성이 설정된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유명인이나 동료, 부모를 역할모델로 해 정식성을 포함한 윤리적 가치관을 세운다”고 설명했다. 기성세대가 썩었으면 자라는 세대도 별 수 없다는 말이다.

 

후대를 위해서 우리사회의 탁도를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낮추려면, 뽑을 사람이 없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나은 후보와 정당을 열심히 찾아봐야 하는 걸까.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6년 04월 04일 17:07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16 + 7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