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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12] “나는 만져 보고 싶었다, 운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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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12] “나는 만져 보고 싶었다, 운명이여”

2016.04.23 18:00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최승자


  많은 사람들이 흘러갔다.
  욕망과 욕망의 찌꺼기인 슬픔을 등에 얹고
  그들은 나의 창가를 스쳐 흘러갔다.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열망과 허망을 버무려
  나는 하루를 생산했고
  일 년을 생산했고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그래, 끊임없이 나를 호출하는 전화벨이 울리고
  나는 피해 가고 싶지 않았다.
  그 구덩이에 내가 함몰된다 하더라도
  나는 만져 보고 싶었다,
  운명이여.


  그러나 또한 끊임없이 나는 문을 닫아걸었고
  귀와 눈을 닫아걸었다
  나는 철저한 조건반사의 기계가 되어
  아침에 밥을 부르고
  저녁엔 잠을 쑤셔 넣었다.

 
  궁창의 빈터에서 거대한 허무의 기계를 가동시키는
  하늘의 키잡이 늙은 니힐리스트여,
  당신은 나인가
  누가 먼저 지칠 것인가
  (물론 나는 그 결과를 알고 있다.
  내가 당신을 창조했다는 것까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그 전화선의 마지막 끝에 동굴 같은
  썩은 늪 같은 당신의 口腔이 걸려 있었다.
  어느 날 그곳으로부터 죽음은
  결정적으로 나를 호명할 것이고
  나는 거기에 결정적으로 응답하리라.
  타들어가는 내 운명의 도화선이
  당신의 썩은 口腔 안에서 폭발하리라.
  삼십 년 전부터 다만 헛되이,
  헛되고 헛됨을 완성하기 위하여.


  늙은 니힐리스트, 당신은 피 묻은 너털웃음을 한번 날리고
  그 노후의 몸으로 또다시 고요히
  허무의 기계를 돌리기 시작하리라.
  몇 천 년 전부터 다만 헛되이,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 말하기 위하여.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람들은 간혹 시인은 ‘멋지다’고 말합니다. 그런 말에는, 시인은 일반인이 느끼기 어려운 섬세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기에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뜻이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최승자 시인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최승자 시인은 마치 네 발이 묶인 채 사막에 눕혀져 유목민에게 제 몸통의 털을 깎이며 소화되지 않은 초목을 토해내는 낙타처럼, 드넓은 대지에 꽁꽁 묶여 있는 듯한 ‘삶’을 시로써 짙푸르게 게워내는 시인이기에 그렇습니다.


압박과 고통에 꿰인 삶을, 그 심정을 군더더기 없이 날것인 채로 구토해내는 최승자 시인의 시들은 불행의 정면에 자신의 뺨을 내놓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첫 시집 『이 時代의 사랑』 뒤표지의 산문에서 선언하듯 말합니다.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존재한다. 그는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라고요. 그리하여 오늘은 한국 문학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여성 시인으로 손꼽히는 최승자 시인의 ‘마음을 치는 시’를 읽어봅니다.


여러 해 전, 신경숙 작가가 자신의 장편소설 제목(『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으로 차용한 이 시는 최승자 시인이 30여 년 전인 30대 초반에 출간한 시집 『즐거운 日記』의 첫 편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시집의 첫 편이 그렇듯이 ‘서시’(序詩)인 격이죠. 그 시집 제목과는 반어적인 이 시에는 ‘허무’가 가득합니다. 아니, 이 시는 “거대한 허무의 기계를 가동시키는” 세상과 맞서 “열망과 허망을 버무려” 앙버텨내려는 시인의 눈으로 “몇 천 년 전부터” “욕망과 욕망의 찌꺼기인 슬픔을 등에 얹고” “흘러”간 “많은 사람들”(인류)을 응시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고 단언합니다.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을 더 채우려는 욕심이 ‘욕망’이라는 이름이라면, 그 경쟁에서 결정되는 수많은 좌절과 실패에서 태어난 슬픔의 감정은 ‘허망’의 또 다른 이름이겠죠. 그리고 인류의 수레바퀴는 그 “허무의 기계를 돌리”면서 시작됐다고 여기는 것이 “니힐리스트”(nihilist), 즉 허무주의자일 겁니다. 그런 세계관은 “내가 당신을 창조했다”(그 정도로 자신이 니힐리스트라는 뜻이겠죠)고 말하는 최승자 시인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과 여러 종교관과도 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단순한 허무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랬다면, 최승자 시인의 시는 이토록 강렬하지 않았겠죠. 인생은 허망하지만, 시인은 “열망과 허망을 버무려” 하루를 살고 일 년을 살고, 많은 소시민이 그러하듯 매달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합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나[시인]를 호출하는 전화벨이 울”립니다. 일의 성과를 독촉하는 전화벨 소리였겠지요(시인의 다른 시들을 읽어보면 아마도 시인은 외국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을 한 듯합니다). 이에 시인은 “철저한 조건반사의 기계가 되어 / 아침에 밥을 부르고 / 저녁엔 잠을 쑤셔 넣”어 살아가지만, “구덩이에” “함몰된” 듯한 허망한 인생에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만져 보고 싶었다, 운명이여”라고요.


“삼십 년 전부터 다만 헛되이, / 헛되고 헛됨을 완성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 같은 그 운명 앞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그 전화선의 마지막 끝에 동굴 같은 / 썩은 늪 같은 당신의 口腔[구강]이 걸려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당신”은 분명 전화를 걸어와 시인에게 채근하는 사람이겠지만, 그는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노후의 몸으로” “허무의 기계를 돌리”며 흘러가는 세상의 “욕망”으로 읽힙니다. 그래서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라고 역설한 시인은 죽음이 “결정적으로 나를[시인을] 호명”하더라도 그 “욕망”에게 비장하게 응답합니다. “타들어가는 내 운명의 도화선이 / 당신의 썩은 口腔[구강] 안에서 폭발하리라”라고요. 이토록 여성 시인 최승자 시의 슬픔은 참 지독합니다.


이성복 시인이 자신의 책 『극지의 시』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제일 뛰어난 시인이 셋이 있는데, 그중 최승자 시인은 시에 순교했다’라고요. 한 사람의 삶으로서는 처절하지만,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진짜’ 시인은 불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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