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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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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2016.04.25 16:32

한 칠팔 년 전 ‘과학동아’ 기자로 일할 때 하루는 의대에 취재를 갔다가 우연히 연구실에 있는 광고지가 눈에 들어왔다. 시가 15만 원인 의학백과사전을 의사들에게 반값에 공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검색이면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는 시대에(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244년 역사를 뒤로 하고 지난 2012년 종이책 제작을 중단했다) 수천 쪽 분량의 책을 상당한 돈을 들여 사려고 하는 필자가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아무튼 필자는 두꺼운 책을 뒤적거리는 걸 좋아한다.

 

광고지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해 솔직히 직업을 밝히고(의사는 아니라고) 기사를 쓰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어떻게 같은 조건으로 줄 수 없는지 물었다. “글쎄요...” 떨떠름한 대답에 이어 “그러세요. 그럼...”이라며 선선히 그 가격에 주겠단다. 이렇게 갖게 된 의학백과사전은 지금까지도 짭짤하게 이용하고 있다.

 

사전을 뒤적거리다보면 ‘정말 병도 가지가지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인체 조직 역시 무척 다양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 의대를 안 가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의학에서 해부학이나 병리학의 기초는 더 연구할 게 없고 이제 의학의 과제는 새로운 약물이나 수술 같은 치료법을 개발하는 일뿐이라고 느껴진다.

 

그런데 지난해 제2 순환계라는 림프계가 뇌에서도 발견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뇌에는 림프계가 없다는 ‘의학상식’이 틀렸다는 발견이었다. 원자도 볼 수 있는 현미경이 있는 시대에 뇌 속 림프관의 존재를 최근에야 알았다는 게 의아했지만 논문을 읽어보니 신체조직을 세세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과학카페 237 ‘봉한관과 림프관’ 참조)

 

 

수유기 전후해서만 존재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4월 22일자에는 지난해 뇌 속 림프관 발견이 연상되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포유류의 젖샘에서 세포핵이 두 개인 세포를 발견했다는 논문이다. 잠깐 교과서를 떠올리면 세포는 핵의 유무에 따라 원핵세포와 진핵세포로 나뉜다. 그리고 진핵세포 하나에 세포핵이 하나 있다. 그런데 핵이 두 개인 세포가 있다니 어찌된 영문일까. 그리고 포유류를 상징하는 젖샘 조직에 이런 특이한 세포가 존재하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을까.

 

“2차원 현미경은 수유기 젖샘처럼 조밀한 신체조직의 원래 상태에 있는 세포를 시각화하는데 한계가 있다.”

 

호주 월터&엘리자홀의학연구소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그 이유를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1984년 생쥐의 젖샘에서 핵이 두 개인 세포가 존재한다는 보고를 한 논문이 나왔지만 조직시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인위적인 결과라는 주장에 밀려 사장됐다. 연구자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3차원 공초점 현미경’을 자체 제작해 생체조직 그대로의 상태에서 세포 하나하나를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이 장치를 써서 포유류가 임신을 한 뒤 일어나는 젖샘조직의 변화를 관찰하다가 이런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됐다. 즉 생쥐에서 임신 뒤 16.5일까지는 젖샘의 모든 세포가 핵이 하나였지만 18.5일차에 핵이 두 개인 세포가 보였던 것이다. 이 세포는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일 때까지 보이다가 젖을 끊은 뒤에는 사라졌다. 즉 젖샘에서 관찰된 핵이 두 개인 세포는 수유기를 전후해 존재했다. 핵이 두 개인 젖샘세포가 지금에야 발견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수유기에만 핵이 두 개인 젖샘세포가 보일까?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연구자들은 먼저 이 세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봤다. 그 결과 세포분열과정에 변화가 생겼다. 보통 체세포가 분열할 때는 먼저 게놈이 복제되고 세포핵이 두 개로 나눠진 뒤 최종적으로 세포질도 나눠지면서 세포가 두 개로 된다. 그런데 수유기 젖샘세포의 경우 세포핵이 나눠지는 단계에서 과정이 끝난다. 그 결과 세포핵이 둘인 세포가 된다. 세포분열을 준비하느라 세포질도 늘어났기 때문에 결국 세포가 커진 결과가 된다.

 

다음으로 핵이 두 개인 젖샘세포의 유전자발현을 조사했는데 예상대로 유단백질과 유지방, 탄수화물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발현이 높았다. 즉 핵이 두 개인 젖샘세포들이 젖을 만드는 생체공장이라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특이한 세포가 생쥐에만 있는지 포유동물에 공통으로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람과 소, 물개, 왈라비의 젖샘세포도 관찰했는데 역시 같은 패턴을 보였다. 즉 수유기를 전후해 젖샘세포의 세포핵이 두 개가 되는 변화는 포유류의 진화에서 본질적인 사건이라는 말이다.

 

수유기 생쥐의 젖샘조직의 3차원 공초점 현미경 사진(왼쪽). 오른쪽은 왼쪽 작은 네모 안을 확대한 단면 사진으로 세포핵(흰색)이 두 개인 세포들이 뚜렷이 보인다. -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
수유기 생쥐의 젖샘조직의 3차원 공초점 현미경 사진(왼쪽). 오른쪽은 왼쪽 작은 네모 안을 확대한 단면 사진으로 세포핵(흰색)이 두 개인 세포들이 뚜렷이 보인다. -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

세포핵이 감당할 수 있는 부피 한계 있어

 

사실 진핵세포 생물에서 세포핵이 하나가 아닌 세포가 존재한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적혈구나 혈소판의 경우는 세포핵이 없다. 원핵세포처럼 게놈이 세포질에 분포하는 게 아니라 아예 게놈이 없다. 즉 혈액줄기세포가 이들 세포로 분화하는 과정에서 세포핵이 사라진다. 어차피 산소운반이나 혈액응고 같은 정해진 역할만 하면 되므로 굳이 세포핵을 지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적혈구나 혈소판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한마디로 소모품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혈액으로 DNA검사를 할 수 있는 건 백혈구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근육에는 세포 하나에 세포핵이 수백 개나 되기도 한다. 근육은 기다란 섬유로 된 조직이기 때문에 세포 하나가 굉장히 크다. 즉 근육줄기세포가 분화할 때 서로 융합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근육세포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세포핵은 그대로 남아있어 이런 상태가 된다. 그런데 세포핵이 한 개이거나 백 개이거나 담고 있는 게놈정보는 똑 같은데 왜 세포가 융합할 때 여분의 세포핵이 사라지지 않을까.

 

세포핵의 용량 때문이라는 게 이에 대한 유력한 설명이다. 즉 게놈 한 벌(2n)에서 유전자가 발현해 만들어낼 수 있는 단백질이 감당할 수 있는 세포질의 부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세포가 커지면 핵도 여러 개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근육세포처럼 수백 배로 커진다면 모를까 수유기 젖샘세포처럼 겨우 두 배 커지겠다고 이렇게 특이한 현상을 개입시킬 필요가 있을까. 두 배 크기의 핵 두 개인 젖샘세포 대신 보통 크기의 젖샘세포 개수가 두 배이면 같은 양의 젖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논문은 이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젖 생산에 세포핵이 두 개인 젖샘세포가 필수적임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즉 유전적 결함으로 이런 세포를 만들지 못하는 생쥐는 젖을 제대로 분비하지 못한다. 그리고 핵이 세 개 또는 네 개인 세포는 존재하지 않아 이 과정이 정교한 통제아래 일어남을 시사한다.

 

지난 2010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간에 존재하는 다핵세포, 즉 핵이 두 개 이상인 세포에 대한 연구는 젖샘세포의 특이한 현상을 이해하는데 영감을 준다. 즉 다핵세포는 단순히 게놈의 양이 많은 게 아니라 게놈의 재조합(편집)이 일어나면서 기존 세포에는 없는 특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간의 경우 다핵세포는 독성물질 같은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력이 높았다. 단핵세포의 경우 게놈의 편집이 일어나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다핵세포에서는 여유분이 있으므로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핵이 두 개인 젖샘세포도 게놈의 재조정을 통해 젖 생산에 가장 효율적인 상태가 되는 건 아닐까.

 

18세기 생물학자 칼 폰 린네는 동물을 분류할 때 젖분비를 주요 기준으로 삼아 ‘포유강’을 만들었다. 린네가 이번 연구에 대해 알게 된다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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