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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사의 소프트웨어, 진짜 ‘제품’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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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사의 소프트웨어, 진짜 ‘제품’ 맞습니까?

2016.04.28 11:11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뭔가 잘못돼 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세계 11위에 달하는데,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전 세계의 1%에 불과하다. 또 소프트웨어는 국경의 제한을 덜 받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소프트웨어 제품 중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브랜드는 거의 없다.


글로벌 IT 기업들의 고위 임원들은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한국의 개발자와 엔지니어의 수준이 매우 높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 수준 높다는 한국 개발자들이 만든 소프트웨어 제품의 수준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정부는 ‘소프트웨어 중심사회’를 만들겠다고 요란법석을 떠는데, 수혜자가 돼야 할 소프트웨어 기업 대표들의 표정은 점점 울상이 된다.


문제의 원인에 대해 “한국의 소프트웨어들은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박용규 아가도스 대표다.

 

아가도스 박용규 대표
아가도스 박용규 대표

박 대표는 페이스북 프로필에서 자신을 “SW시장 혁신을 위해 몸부림 치는 늙다리 스타트업”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인물인데,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해 쓴소리를 잘 하기로 유명하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주장을 흥미롭게 듣다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왜 우리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팔고 있는 것은 제품이 아닌지, 진짜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 대표 주장의 핵심을 요약하면 “패키징을 했다고 해서 다 소프트웨어 제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이다. 그는 “커스터마이징을 한 후 컴파일을 다시 하지 않아야 제품”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국내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공공기관에 납품을 할 때 GS인증을 받는다. GS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일단 패키징이 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를 패키지 소프트웨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고객들이 이 제품을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용회사의 업무 프로세스 등 환경에 맞춰 소프트웨어에 변경을 가한다. 이를 두고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이라고 부른다.


박 대표에 따르면, 문제는 커스터마이징을 한 그 소프트웨어가 더 이상 GS인증을 받은 그 소프트웨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GS인증을 받은 국내 소프트웨어는 커스터마이징을 한 후 다시 컴파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기존 소프트웨어와 다른 새로운 소프트웨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소프트웨어 제품이란, 엔진과 속성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기능을 1대 1로 개발하는 것은 제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고객의 요구가 들어오면 코드를 새로 짜서 넣는 것이 아니라 속성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SAP를 예로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프트웨어 제품의 교과서는 SAP입니다. SAP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보면 전체를 지배하는 엔진이 있습니다. SAP ERP는 이 엔진(플랫폼) 위에서 구동되며, 고객사들은 각사의 환경에 맞게 설정을 바꿔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설정을 바꿨다고 해서 다시 SAP ERP 소프트웨어를 컴파일 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에 의문이 들었다. SAP ERP 구축 프로젝트를 보면 커스터마이징을 위해 수많은 개발자가 투입된다. 간단히 설정만 바꾸는 수준이 아니다. 이 때문에 대기업의 ERP 프로젝트는 수백억 원이 들어갈 때가 종종 있다. 그의 주장과 달리 SAP라고 별반 다르지 않은 것 아닐까?

 

“그렇게 보는 것은 커스터마이징과 애드온(Add On)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커스터마이징은 소트웨어가 이미 제공하는 기능을 이용자 환경에 맞도록 변경하는 것이고, 애드온은 소프트웨어가 제공하지 못하는 기능을 추가로 개발하는 것입니다. 국내의 SAP ERP 프로젝트에서 하는 것은  커스터마이징이 아니라 애드온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드온을 했다고 하더라도 전체 ERP를 다시 컴파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SAP는 추가적인 기능을 개발해 기존 ERP 엔진에 붙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소프트웨어 제품입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또 하나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꼭 제품이 돼야 할까? 제품이 좀 아니면 어떤가. 고객들에게 필요한 기능을 그 때 그 때 개발해 제공하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박 대표는 “제품이 아니면 사업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10여 년 전 고객관계관리(CRM) 소프트웨어 회사의 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그 회사는 한 때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냈다.


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인력을 기반으로 사업을 펼치다 보니 제품 비즈니스가 망가진 것이다. 새로운 고객사가 생길 때마다 인력을 투입해야 했다. 무작정 인력을 투입할 수 없기 때문에 고객사를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또 고용한 인력을 그대로 둘 수 없기 때문에 억지로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해야 했다.

 

“제가 CRM 소프트웨어를 할 때 시벨시스템즈(현재는 오라클에 피인수)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그 회사 제품을 들여다보면 기능은 저희와 큰 차이가 없었어요. 차이는 하나였죠. 시벨은 플랫폼(엔진)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저희는 개발 프레임워크 위에서 기능을 하나하나 개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벨은 채널 비즈니스가 가능했고, 저희는 모든 고객사에 일일이 다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저희도 일본과 미국 진출을 위해 노크해봤는데, 커스터마이징을 위해 사람을 투입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국내 많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가진 고질적 문제 중 하나다. 특히 이런 방식으로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칠 수도 없다. 해외까지 인력을 파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견한다 해도 그 비용 때문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내수에 머물러 있는 이유다.


박 대표는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제품이 아닌 SI 방식의 사업을 계속할 경우 클라우드 시대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SaaS(Software as a Service)와 ASP(임대형 애플리케이션)이 다른 점은 멀티태넌트입니다. SaaS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그룹의 사용자 요구를 다 받아들입니다. 반면 ASP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하나의 고객밖에 수용하지 못합니다.


SaaS가 되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설정을 통해 각사에 맞는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합니다. 즉, 제품만이 SaaS를 할 수 있습니다. ASP는 기존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온라인 상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는 클라우드가 아닙니다.”


박 대표는 최근 ‘소프트웨어 제품화 지수’라는 것을 만들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스스로 제품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 SI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진단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설문조사다.

 

“우리는 왜 SAP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지 못할까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그들을 연구했습니다. ‘소프트웨어 제품화 지수’는 그들이 도출하는 방법을 기반으로, 그 이상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리스트를 만든 것입니다. 각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스스로 점수를 매겨볼 수 있습니다. 아마 상당수의 국내 기업들은 100점 만점에 10점도 안 나올 것 같습니다.”


오래 전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 관계자로부터  “고객사가 10개, 제품도 10개”라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많이 개선됐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제품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제품 비즈니스를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부터 SI식 개발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은 숙제다.  분명한 것은 제품이 아니면 해외진출이 불가능하고, 좁은 한국 시장으로만은 소프트웨어 기업의 지속적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 필자소개

심재석. IT 전문 기자. 전문 기자들의 멀티채널네트워크, ‘바이라인 네트워크’의 대표.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 소모가 빠른 현대에도 독자에게 정확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의무이자 자부심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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