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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13]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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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13]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2016.04.30 18:00

어떤 적막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 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po♥♡mai♡♥po(F) 제공
po♥♡mai♡♥po(F) 제공

들꽃을 따서 꽃팔찌나 꽃반지를 만들어 보았는지요? 어떤 중년의 남성이 오래전 이십 대 청춘이었을 적에, 연인이 되기 전의 꽃 같은 한 처녀의 손 한번 잡아보려고 핑계 삼아 야외에서 눈에 띈 클로버 꽃이나 냉이 꽃을 줄기째 꺾어 꽃팔찌와 꽃반지를 만들어 여인의 따스한 체온 위에 끼워주었던 추억이 있으신지요? 그렇게 꽃팔찌, 꽃반지를 만드는 동안은 만드는 이의 손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의 눈이나 마치 파릇한 풀을 뜯다가 자꾸 주위를 살피는 겁 많은 산토끼처럼 가슴 뛰는 시간이 흘렀겠지요.


하지만 이 시 속의 들꽃 팔찌는 적적하고 적요한 시간에 놓여 있습니다. 꽃팔찌를 만드는 동안의 설레는, 꾸미지 않아도 예쁜 들꽃 같은 청춘의 시간이 아니라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 들꽃을” 따고 “말없이 만든 시간”이었다니, 그 시간은 아마도 그 행위의 주체가 외로이 홀로 있던 시간인 듯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은 가이없고”, 즉 그 시간은 끝이 없고(“가이없다”는 ‘가없다’를 잘못 쓴 말이지만, 시인은 운율을 위해 부러 그렇게 썼겠지요) 꽃팔찌의 “둥근 안팎”은 마치 낯선 아득한 동굴처럼 적막했겠지요.


2연에서는 그 적막감이 더욱 확장됩니다. 1연에서의 ‘너’가, 아니 “너”마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 네가 없는 동안” 시인은 “꽃팔찌를 바라”봅니다. 그때, “네가 [잠시] 없는 동안”으로 읽히지 않고 ‘너의 영원한 부재’로 읽히는 것은 손목에 차기도 했고 탁자에 놓아두기도 했던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랬던 “네가” ‘지금-없음’을 말하고 있는 시인의 고즈넉한 ‘바라봄’ 때문입니다.


그리로(꽃팔찌로) 생(生)의 이전 같은, 사(死)의 이후 같은 “우주”가 수렴된다니, 다시 말해 무한대로 분산된 까마득한 온누리의 공간이 하나로 모인다니, 그곳은 “쓸쓸함”의 “공기 속”이며 그 적막은 우주처럼 가이없이 “퍼져 나갑니다.” 그리고는 이 시가 독자의 마음을 치는 대목, “그 공기 속에”서 시인이 “적막으로 一家(일가)를 이”룹니다. 일가란 살가운 피붙이이고 삶을 동고동락하는 가족공동체인데 “적막”과 일가를 이룬다니, 참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꽃팔찌를 “만든 손과 더불어”라니, 그 손의 “너”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손의 주인’이겠지요. 그 아름다운 손의 주인은 이제는 부재하지만, 부재하여 적막하지만, 시인은 ‘너’의 부재와 더불어 쓸쓸한 아름다움을 가족으로 삼아 정붙이겠답니다. 독자 여러분 어떠신가요. 이럴 때 우리는 시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평론가들이 정현종 시인을 일컬어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주는 시인이라고 말하는가 봅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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