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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두던 그 사람에게 고백을 받았어요. 하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어요(여성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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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두던 그 사람에게 고백을 받았어요. 하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어요(여성 편)

2016.05.08 10:00

※편집자주: 살림살이 좀 어떠십니까? 뉴스를 보면 도처에 안좋은 소식 뿐입니다. 젊은이들은 취업 걱정, 중장년 층은 노후 걱정에 노심초사합니다. 경제, 정치 심지어 날씨까지 우리 편은 없어 보입니다. 본지는 인류학을 전공한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한번쯤 고민할 법한 주제를 선정, 지면을 통해 상담을 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마음에 품고 사는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고민 

직장에서 늘 만나는 4살 연상의 남자가 있어요. 외모가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뭇사람의 시선을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모난 성격은 아니지만, 최고의 성격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가끔은 고집도 부리고, 성도 내는 것이 젠틀맨은 아니죠. 학벌도, 집안도 평범합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간 훈훈한’ 수준의 남자. 남 주기는 아깝지만, 선뜻 사귀기에도 망설여지는 그런 남자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가 고백을 했어요.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 됩니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 정신과 전문의가 답합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네 줄 요약
1. 인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을 했고, 또 성공했다.
2. 이상적인 사랑을 위한 조건은 아주 까다롭다. 가끔은 아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3.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랑의 복잡한 조건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다.
4. 최소한의 관계가 가능하다면, 일단 시작해보자.

 

1941년 초여름,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시작된 독소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구소련에서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서 모두 2900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다시 말해서 전쟁이 지속된 4년 간 매일 2만 명씩 죽어갔다는 의미입니다(실제로 하루 평균 민간인 1만4000명, 군인 6500명이 사망했습니다). 군인이 부족해진, 소비에트 정부는 전 지역에서 17~51세에 해당하는 남성에 대한 동원령이 내렸습니다. 아마 당시 구소련의 수많은 미혼 여성들은 망연자실했을 것입니다. 연애나 결혼은 고사하고, 사실 상 남자를 구경하는 것조차도 어려웠을 테니까요. 

 
개전 1년 후 모스크바의 혼인건수는 1만2500건으로 감소합니다(41년의 4만4000건에 비하면 대폭 급감한 수치입니다). 그러나 이는 곧 회복되었습니다. 43년과 44년에는 각각 1만7500건, 3만3000건으로 증가합니다. 종전 첫해에는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무려 8만5000쌍이 결혼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젊은 남녀 성비가 거의 1:2에 이르게 된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모조리 죽어나가는 전장 속에서도, 사랑할 사람은 사랑하고 결혼할 사람은 결혼합니다.

 

1945년 8월 14일, 뉴욕 타임스퀘어 가에서 열린 대일본 전승기념일 행사 - V-J Day in Times Square, a photograph by Alfred Eisenstaedt, was published in Life in 1945 제공
1945년 8월 14일, 뉴욕 타임스퀘어 가에서 열린 대일본 전승기념일 행사 - V-J Day in Times Square, a photograph by Alfred Eisenstaedt, was published in Life in 1945 제공

 

사실 당신의 선조는 짝짓기에 있어서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증조부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당신의 직계 조상 중, 솔로로 생을 마감한 분은 단 한 분도 없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평생 처녀로 지내셨지’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침팬지의 조상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갈라진 이후, 현재까지 약 20만 세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20만 쌍의 직계 조상이 성공적으로 배우자를 찾고, 출산과 양육을 훌륭하게 해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짝을 찾기 위한 인류의 투쟁도 눈물겹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좋은 배우자를 찾기 위한 조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롭습니다. 배우자 선택을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자들도, 이렇게나 많은 조건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소위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가(What Women Want)’ 연구의 결과들은, 서로 명백하게 모순적인 것들도 많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여성은 자신보다 연상의 남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나이가 많은 남성은 상대적으로 안정감과 성실성을 보장하고, 보다 나은 사회적 지위와 관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은 젊고 건강한 육체를 가진 남성을 원한다고 합니다. 젊음은 장기적인 보호와 양육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건강은 유전자의 우수성과 관련되기 때문이죠. 그러니 여성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여성들이 느끼는 미스테리한 심리의 단적인 예가 바로 충실성과 성적 매력의 모순적 관계입니다. 연인에게 충실하고 성적 정절을 지키는 남성을 꺼리는 여성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여성들은 ‘바람둥이’에게 정신을 홀리고 맙니다. 뭇 여성을 울리고 다닌 남성을 자신의 배우자로 삼고 싶어하면서, 동시에 그가 자신을 떠날까 전전긍긍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심리학적 혹은 사회학적 설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력한 진화인류학적 가설에 의하면, ‘바람둥이’ 유전자가 자신의 아들에게 보다 나은 ‘가능성’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바람둥이인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니지만, 아들이 바람둥이라면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물론 ‘진화’적인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뇌신경학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여성의 감정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과 관련된 네 가지 신경호르몬은 에피네프린(Epinephrine)과 도파민(Dopamine), 세로토닌(Serotonin), 옥시토신(Oxytocin) 등입니다. 그 남자를 만났을 때 느껴지는 두근거림과 가빠지는 호흡(에피네프린), 점점 달아오르는 양 볼과 억제할 수 없는 야한 생각(도파민), 하루 종일 눈 앞에 그 남자만 아롱삼삼 떠오르는 사랑의 강박(세로토닌), 옆에 있으면 느껴지는 편안하고 따뜻한 기분(옥시토신) 등 다양한 감정들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처럼, 서로 경쟁하며 우리의 뇌 안에서 춤을 춥니다.


현재까지 진화심리학적 혹은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서 입증된 좋은 배우자의 조건(여성의 경우)은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연령, 피부색, 외모, 키, 신체 비율, 목소리의 톤, 충실성, 성적 매력, 근면성, 야망, 신뢰성, 안전성, 편안함, 지속성, 대인관계, 가족의 크기, 지적 능력, 예술적 자질 등 대단히 많습니다.

 

세부적인 항목으로 들어가면, 잘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책이나 잡지에서 소개하는 ‘좋은 남자의 n가지 조건’과 같은 과학적 근거가 미약한 조언들을 포함하면, 정말 끝도 없는 목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성들에게 인기를 끈 한 지침서에 의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남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남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 동시에 (책의 다른 부분에) 실려 있습니다. ‘엄마의 말을 너무 듣는 남자’는 피하라고 하면서도 ‘남자를 고를 때는 반드시 엄마의 조언을 들으라’는 식으로, 남자친구의 엄마와 자신의 엄마에 대해서 불공정한 대우를 하도록 주문하기도 합니다.


물론 배우자를 까다롭게 고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자손을남기기 위해서 분투하셨던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물려준, 수많은 진화심리학적 선호에 모두 굴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여성의 사회적 권한과 경제적 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물론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근육질 남성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력한 신체를 가진 남성의 보호가 현대 사회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혹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오는 괴팍한 심사위원 같은 심정으로, 원시 시대의 철 지난 기준에 맞추어 눈 앞의 남성들을 모조리 탈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림 형제, 개구리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월터 크래인 편) - The Frog Prince and other stories, by Walter Crane (1874) 제공
그림 형제, 개구리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월터 크래인 편) - The Frog Prince and other stories, by Walter Crane (1874) 제공

 

횡문화적 연구에 의하면, 러시아 여성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다른 문화권의 여성과 다소 다른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러시아 여성은 남성의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2차 대전 이후 구소련 지역에 젊은 남성이 많이 부족해서 일어난 현상인지 혹은 공산주의 이념에 의한 영향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자의 조건이라는 것이 그렇게 절대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여성들은 소녀 시절부터 가졌던 운명적 사랑, 천생연분에 대한 동화적 환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왕자를 만나기 위해서, 일단 수많은 개구리와 키스를 해봐야 합니다. 모처럼 당신에게 ‘대쉬’해오는 개구리가 있다면, 조금은 적극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냥 개구리인지, 혹은 당신의 왕자가 될 운명의 개구리인지 처음부터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 필자 주: 4월 11일자 신경인류학 에세이 4편, ‘☞나는 니트족, 꿈도 열정도 없어요’ 에 대해, 한 독자께서 자신의 가족 중에도 니트족이 있는 것 같다며 문의를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본 에세이에서 다루었던 주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민이 되는 심리적, 정신적 문제나 대인관계의 어려움, 혹은 흥미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문의와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를 선정하여, 후속 에세이의 고민 주제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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