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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14]“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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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14]“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2016.05.07 18:00

                       不醉不歸


                                                                            허수경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절창(絕唱)의 시인 허수경. 이 시가 수록된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에는 유랑 소리꾼 같은 절창이 가득합니다. 이번 주 [마음을 치는 시] 「不醉不歸」(불취불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인 허수경의 시는 소리 내어 읽으면 한결 생동감이 더합니다. 그녀의 시는 그 자체로 ‘창’(唱)이기 때문입니다. 노래이기에, 시의 내용을 떠나 가락만 읽어도 좋은 시입니다. 마치 스페인어를 몰라도 페이소스가 파도치는 어느 라틴 음악을 들으며 멜로디만 애잔히 흥얼거리듯 말입니다.

 

시 쓰기 몇 해 전 어느 봄날, 시인이 야외의 그늘 아래에서 “너”라는 누군가와 술을 마셨나봅니다. 그리고 번번이 “~던가”, “~는가”라는, 추측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로 각운을 놓고 있지만 그 기억은 ‘~했었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어 보입니다. 시 제목을 다시 읽어봅니다. ‘不醉不歸’(불취불귀). ‘취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는다’이거나 ‘취할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다’겠죠. 제게는 전자의 ‘현상’보다는 후자의 ‘의지’로 읽힙니다.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니 말입니다. 야생마처럼 뛰는 마음의 고삐를 ‘놓아보내지’ 않았으니, “너”와 함께한 그날, 화창한 봄날이었겠지만 그늘진 마음을 꼭 움켜쥐고 있었겠죠.

 

매 연마다 나오는 시어 “마음”은 ‘사랑’의 감정이겠죠. “너”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 있었던” 마음이었겠죠. 그러나 “너”는 봄그늘의 경계에 있었기에 몸의 팔로는 안을 수 없어 그늘진 마음으로만 품에 안았나봅니다. 그러니 “마음은 길을 잃고 / 저 혼자 /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길마저 헝클어뜨리”고 맙니다. 흔히 쓰는 사자성어인 취생몽사(醉生夢死)가 아니라, 왜 몽생취사(夢生醉死)였을까요. 술에 취해 살고 죽는 취생몽사가 아니라, 꿈에 취해 살고 죽는 몽생취사라고 했을까요. 주체의 삶이 ‘술’(알코올중독)이 아니라 ‘꿈’(소망 중독)이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시의 화자는 “더는 취하지 않”고(不醉)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不歸)에 묶여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의 ‘안녕’은 ‘작별 인사’가 아니라 ‘평안’이겠죠. 그러고는 그 불행 앞에서(“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마침내 흐느낍니다. 취중의 울음을 웁니다. 그렇게 속상한 마음으로 만취해 그날을 기억할 수 없었을 듯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고 명치끝이 아려오는 회고조로 읊조립니다.

 

그럴 수 있는 게 청춘이겠죠. 그런 청춘의 추억도 없다면 이 봄날은 무감하게 지나가 버리거나 금세 망각하지 않을까요. 그 추억의 배경이 ‘봄볕’이 됐든 “봄그늘”이 됐든 말입니다. 그리고 청춘의 추억은 통증만큼 아름답지 않을까요. 아픔의 색깔은 선명하기 마련이니까요. 어쩌면 인생은 마음에 박힌 추억의 몇 장면이 전부일지도 모르니까요.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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