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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15] “밤중에 누가 내 꼬리를 훔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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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15] “밤중에 누가 내 꼬리를 훔쳐갔다”

2016.05.14 18:00

                         김기택


  밤중에 누가 내 꼬리를 훔쳐갔다.

 

  날씨가 더워져 두엄과 오물이 시멘트처럼 굳어 붙은 엉덩이로 질긴 파리들이 꼬여들면 뿌리만 뭉툭하게 남은 꼬리는 어쩔 줄을 모른다. 항문이 먼저 옴씰옴씰거리고 뜨거운 오줌이 나올 듯하다가 드디어 꼬리 밑둥이가 맹렬하게 꼼지락거리기 시작한다. 파리 한 마리 못 쫓는 내 엉덩이를 쳐다보는 웃음소리. 나는 돌처럼 차갑고 딱딱한 힘을 엉덩이로 집중시켜 움직이고 싶어 안달하는 꼬리뼈를 단단하게 붙잡아 조인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느릿느릿 되새김을 계속한다. 이젠 창자로 넘어가도 좋은 것들을 더 곱게 새김질하고 또 새김질하여 귀를 기울이고 기다린다, 위장에서 맑은 소리가 흐를 때까지. 간지러운 내장의 감촉을 만지고 있는, 아아, 이 고요한 표정으로, 꿈벅꿈벅, 새벽의 산사에 가 앉아볼까? 막 그림에서 깨어난 새소리, 바람 소리를 나는 게슴츠레한 눈길로 바라본다. 꿈결같이…… 파리 날개에 몸을 기대고 출렁거리는 무거운 졸음. 감길 듯 누워 있는 졸음의 먼 끝에서 어떤 둔한 박자 하나가 심각하고 격렬하게 까닥까닥거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무거운 내 눈까풀 가물가물 웃음짓다가 갑자기 놀라 깨어난다. 그리고 쏘아본다, 분연히 꿈버억꿈벅, 거친 숨을 몰아쉬며 꼬리 없는 엉덩이의 움직임을.

 

  무엇인가 이것은,
  코뚜레에 너무 오래 붙들려 무력해진 지금
  아픈 코의 대척점에서 일어나는 이 느닷없는 힘은.
  웃음거리가 되어도 어쩔 수 없다
  들입다 흔들어대는 수밖에.

 

K.J.2009(F) 제공
K.J.2009(F) 제공

이번 주는 산문시를 읽습니다. 줄곧 시의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시를 써온 김기택 시인은 암암리에 시의 첫 출발이 ‘관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아마도 시인은 생물학자가 되었어도 좋았을 듯합니다. 예민한 예술적 상상력이 과학적 패러다임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 예술적 상상력은 통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생각은 독자적인 관찰에서 싹틉니다.

 

김기택 시인은 위의 시를 비롯해 ‘소’에 대한 시를 4편 썼습니다. 그중 2편은 도살장에서 몸무게를 늘리기 위해 강제로 물을 먹게 된 소, 도살될 때 몸속의 바람이 빠져나가 가죽부대만 남은 소에 대한 시이고, 다른 1편은 커다란 눈망울 속에 말을 닫아둔 채 되새김질만 하는 소에 대한 시입니다. 그리고 바로 위의 시에서는 엉덩이에 꼬여드는 파리를 쫓아내지 못하는 무력한 ‘소’를 통해 그런 ‘소’와 다를 바 없는 우리네 삶을 응시합니다.

 

시인은 파리 떼에 시달리는 ‘소’의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진화 과정에서 꼬리뼈 가까이까지 줄어든 짧은 꼬리 근육으로 소는 쉼 없이 꼬리를 휘저어보지만 “두엄과 오물이 시멘트처럼 굳어 붙은 엉덩이로” 달려드는 파리 떼에 속수무책입니다. 그 ‘관찰’은 “파리 한 마리 못 쫓는 내 엉덩이를 쳐다보는 웃음소리”라며 ‘소’와 ‘나’를 동일시하는 이 대목부터는 어느덧 ‘소’ 자체가 아니라 “새김질”을 하는 소의 생태를 통해 시인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학교수이지만,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일반 회사의 봉급생활자로 살았던 시인이 여느 직장인처럼 업무에 치여 고단했나봅니다. 그래서 “이젠 창자로 넘어가도 좋은” 업무를 마감하지 못하고 “더 곱게 새김질하고 또 새김질하여 귀를 기울이고 기다”립니다. “위장에서 맑은 소리가 흐를 때까지” 일의 성과를 높여야 했나봅니다. 그랬으니 무척 피곤했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직장인이 그렇듯, 시인도 “아아, 이 고요한 표정으로, 꿈벅꿈벅, 새벽의 산사에 가 앉아볼까?”라며 일상의 일탈을 꿈꿉니다. 그 산사에 듣는 “막 그림에서 깨어난 새소리, 바람 소리”가 무척 간절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꿈결같이” 아스라한 희망일 뿐 현실이 아닙니다. 당장 시인의 현실은 “무거운 졸음”입니다. “무거운 내 눈까풀 가물가물 웃음짓다가 갑자기 놀라 깨어난다”니 시 속의 화자는 아마도 졸음운전 중이었지 않을까요? “졸음의 먼 끝에서 어떤 둔한 박자 하나가 심각하고 격렬하게 까닥까닥거리고 있는 것”은 윈도브러시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 이미지는 마치 소가 제 꼬리를 휘저어 엉덩이에 붙은 파리를 쫓는 이미지와 겹쳐집니다. ‘연상’(聯想)은 시의 언어가 이동하는 징검다리니까요. 시인은 ‘윈도브러시’같이 일에 매여 있는 자신의 노동을 ‘소’에 빗대어 “꼬리 없는 엉덩이의 움직임”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놀라 깨어난” 자신의 처지를 “코뚜레에 너무 오래 붙들려 무력해진” 상태로 인식합니다. 그럼에도 사는 일이 그렇듯, 다시 기운을 차려 일에 종사하는 여느 노동자들처럼 “아픈 코의 대척점에서 일어나” 생활인으로서 힘을 냅니다. 이 시의 첫 구절로 돌아가 “밤중에 누가 내 꼬리를 훔쳐갔”지만, 그렇게 결핍으로써 살아가지만, 그 상실의 꼬리를 “들입다 흔들어대는 수밖에” 없음을 생활인은 잘 알고 있기에 말입니다. 시인도 생활인이기 때문입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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