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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16] “고된 날에는 사람 냄새에 구토가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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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16] “고된 날에는 사람 냄새에 구토가 일어”

2016.05.21 18:00

낙산 여자

                             함성호


  유년의 바다는 정오의 그림자로
  작열하는 태양의 뒤로,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버렸다)
  낙산의 여자들은 모두
  짙은 화장으로 얼굴의 기미를 숨기고
  모두 비슷비슷하게 그린 가는 눈썹으로
  서로들 닮아간다
  백낮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낙산 여자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만 더
  외로우신 것 같애요, 익숙한 솜씨로 회를 뜨며
  썰물같이 웃던 낙산 여자
  (사라져버렸다)
  식당에서 건어물점에서 사격장에서 백사장에서 늘 억세게 웃고 파도처럼 다가오던 늘 매몰차던 여자
  고된 날에는 사람 냄새에 구토가 일어
  장사할 수 없다는, 어느새 산다는 것을 터득해버린
  무화과나무 그늘 그물이 널려 있던 기와집 너른 마당
  어쩐지 눈빛만은 낯설은
  네가 시를 쓴다며, 깔깔 웃던 낙산 여자
  (사라져버렸다)

 

MANKUEN KONG(F) 제공
MANKUEN KONG(F) 제공

누구에게나 ‘단골’ 음식점이 있겠지요. 더구나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주 드나드는 단골집이 곳곳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곳을 종종 찾는 이유는 방문객의 기호에 따라 다를 겁니다. 그것이 ‘맛’이든 ‘가격’이든 ‘분위기’든 ‘접객’이든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가치’는 방문객의 의미 부여의 정도에 따라 자리매김되고 지인들에게 전파되곤 합니다. 그렇기에 단골집은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의 공유물이기도 합니다.


함성호 시인에게도 단골집들이 있었겠지요. 그중 이 시 속의 그곳은 (“낙산 여자”라니) 강원도 양양의 낙산에 소재했겠습니다. 시인의 고향이 속초이니 낙산과는 멀지 않은 거리입니다. “무화과나무 그늘[에] 그물이 널려 있던 기와집 너른 마당”이 있던 그곳에 시인이 종종 방문했나 봅니다. 그 이유에 대한 정보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 시작이 맛이든 가격이든 분위기이든 말입니다. “고된 날에는 사람 냄새에 구토가 일어 / 장사할 수 없다는” 곳이니 손님이 적지 않은 횟집이었을 듯합니다.


어느 단골집이나 접객 과정에서 손님과 주인장(혹은 종업원)이 친근해지면 그렇듯이, 어느 날에는 시인은 그곳에서 종사하는 “낙산 여자”에게 “식당에서 건어물점에서 사격장에서 백사장에서” 일했던 본인의 인생살이에 대해 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만 더 / 외로우신 것 같애요”라고 존칭어로 말했던 “낙산 여자”는 손님인 시인과 격의 없이 친해지자 “네가 시를 쓴다며”라며 반말을 씁니다. 아마도 동갑내기이거나 누나뻘이었겠죠.


그리고 시인은 “고된 날에는 사람 냄새에 구토가 일어 / 장사할 수 없다는” 그녀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짠한 인생을 봅니다. 그녀는 “짙은 화장으로 얼굴의 기미를 숨기고 / 모두 비슷비슷하게 그린 가는 눈썹으로 / 서로들 닮아”가는 “낙산의 여자들”과 다릅니다. 그녀는 “어쩐지 눈빛만은 낯설은” 표정으로 “썰물같이 웃던 낙산 여자”입니다. ‘썰물 같은 웃음’이라니, 그녀의 웃음은 모래톱에 하얀 치아 같은 파도를 일으키며 웃는 ‘밀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쓸쓸한 쓴웃음인 고소(苦笑)였겠죠.


그래도 그녀가 시인에게 “네가 시를 쓴다며”라고 말할 때는 생기 넘치게 “깔깔 웃”습니다. 그녀의 경쾌한 “깔깔” 웃음에는 손님의 삶에 대한 반가운 살가움도 들어 있는 반면, 마치 ‘네가 문학을 한다고? 다 좋은데, 그런 네가 인생의 짠맛과 쓴맛을 알고는 있니?’라고 말하는 듯한 무거운 물음도 들어 있지 않을까요. 그랬던 그날이 마지막이었나 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어느새 산다는 것을 터득해버린” 그녀가 보이지 않습니다. “낙산 여자”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시에는 “(사라져버렸다)”가 세 번 나옵니다. 시인의 “유년의 바다”가 사라져버렸고, 조금 알아가던 “썰물같이 웃던 낙산 여자”가 사라져버렸고, 이젠 서로 많이 친해졌던 “깔깔 웃던” 그녀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는 여러 빈자리를 확인하면서 생의 공허함을 느낍니다. 외가에서 떠나올 때마다 차창 밖에서 손 흔들어주시던 할머니의 빈자리가 그렇고, 졸업 후 세월이 지나 찾아간 교정의 선생님의 빈자리가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쓴 방에서 사라진 그이의 빈자리가 그렇습니다. 이 시는 상실과 그리움에 대한 드라마입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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