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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스트다’ 선언이 성차별 대응에 도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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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5월 24일 10:57 프린트하기

옛날 옛적 “미천한 노예자식” 이라며 노예를 마구 치는 주인A와, “힘들지? 하지만 어쩌겠어 네가 노예로 태어난걸. 대신 네가 좋은 노예가 되면 내가 잘 해줄게” 라고 하는 주인 B가 있었다. 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뭘까?

 

차별의 두 종류: 적대적 차별 VS. 우호적 차별

우선 공통점은 A와 B 모두 노예를 자기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쨌든 노예는 주인인 나와는 다르며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정당화하며 ‘다른 대우’와 차별적 구조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B 역시 비교적 착한 노예주인이긴 하지만 여전히 노예를 통제하려 하는 주인으로서의 태도는 고스란히 갖고 있다.


차이는 차별의 형태 또는 방식이다. 흔히 전자를 적대적 형태의 차별이라하고 후자를 온건/우호적 형태의 차별이라 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 둘 다 차별이다.


이 두 종류의 차별은 차별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항상 뒤섞이며 나타나며 성차별에서도 그러하다. 차별 대상에 대한 적극적 혐오 및 공격적 태도와 다수 집단이 볼 때 ‘맘에 드는’, 흔히 착하고 온순하고 그들이 정의한 ‘여자다운’ 여성에 대한 찬양은 함께 나타난다.


즉 ‘여자는 이래서 안 돼!’ ‘여자는 집에서 애나 봐라!’ ‘여자는 3일에 한번씩 패야’ 같은 소리와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만 해’ ‘여성이야말로 부드러워서 애 보는데 딱이지요’ ‘와 정말 개념녀시네요!’ 같은 소리는 발화의 주체들은 다를 수 있어도 성차별 정도가 심한 사회일수록 함께 뒤섞여서 나온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Glick & Fiske, 2011).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은근한 차별의 위험성


그리고 각종 온건한 형태의 차별들, 여성을 독립적이고 대등한 인간으로 보기보다 아래에서 보호되어야 하는 약한 존재로만 보는 것이나 얌전하고 희생적인 여성성을 찬양하는 등의 이야기들이 적대적 차별보다 더 위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었다. 차별의 당사자인 여성들로 하여금 ‘다른 대우’가 나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게하고 자연스럽게 차별에 순응하고 체념케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우호적 차별에 노출된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차별의 존재를 잘 눈치채지 못하지만 스스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떨어지고 의존적이게 되며 그 결과 각종 수행이 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었다 (Dardenne et al., 2007).


또한 여성에 대해 우호적 차별을 하는 남성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온건한 태도를 보이나 자신이 원하는 ‘예쁘고 참한’ 범주를 벗어나는 여성은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런 여성들이 강간 피해자가 되었을 경우는 역시 가차없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연구도 있었다 (Grubb & Turner, 2012).


따라서 “나는 (일반적으로는)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내가 원하는 형태의 여성에 한 해) 여자를 좋아하는데요?”라고 하면서 자신은 성차별에 전혀 가담하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여성을 남성의 아래로 보거나, 여자라면 당연히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고 귀가 시간도 일러야 하는 등 통제되어야 마땅한 존재로 본다면, 남성의 보호와 상관없이 여성 혼자서도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 잘 공감되지 않는다면, 또 여자의 행복이란 좋은 남편을 만나는 거라며 나와 동일한 인간인 누군가의 꿈과 자아실현을 그의 성별을 이유로 제한하는 이야기들에 거부감이 없다면, 연애와 결혼 등에 있어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해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에 동감하지 않는다면 적대적 차별까지는 안 할지 몰라도 여전히 각종 은근한 차별에 개입하고 있는 게 된다.

 


차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란 없다


또한 차별은 사회문화 곳곳에 스며들어 사람들에게 의식적으로든 비의식적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개인이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여성들 스스로도 그 차별을 내면화 하여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들도 있었다. 일례로 54개국을 분석한 결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성차별이 심한 사회일수록 여성들이 ‘남성들보다도 더’ 가부장적 가치관을 잘 받아들이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Brandt & Henry, 2012). 나의 지인 중에도 스스로를 칭찬할 때 ‘나는 그래도 여자치고 참 ○○를 잘하는 편이야’라고 말하곤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역시 여자는 원래 능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는 것일 테다.


참고로,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그간 남성이 더 좋은 수행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수학, 공간지각력 등의 과제에 있어서도 ‘성차별 정도가 낮은 사회(교육의 기회가 평등하고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높은 사회)’일수록 성차가 나타나지 않으며, 단기간만 트레이닝시켜도 성차가 사라지는 등의 결과들을 보여준 바 있다 (Ceci et al., 2009; Else-Quest et al., 2010).


흑인인권운동으로 유명한 넬슨 만델라도 흑인이 기장인 비행기에 탔다가 ‘흑인이 기장이라니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온다. 이렇게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오묘하게 도사리고 있는 차별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변화의 시작은 남성과 여성 모두 스스로 적대적 또는 온건한 차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는 데에서 올 것이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성차별을 당했을 때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confrontation)에 관한 연구들을 조금 살펴보자. 한 연구에 의하면 처음 직면을 당하면 상대방에 대해서도 화가 나지만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 서서히 차별적 언사를 줄이게 된다고 한다 (Czopp et al., 2006). 또 어떤 연구에서는 “그것은 성차별입니다”라고 정색하는 것 정도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어떤 사람이 성차별에 저항하는가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여성들의 경우 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할수록, ② 상대방이 친숙하고 위계가 비슷할수록 적극 대응하는 반면 ③ 성차별적 언사에 ‘성적 모욕’이 있을수록 대응하기 어려워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Ayres et al., 2008).


①번을 보건데 인터넷 등에서의 ‘나는 페미니스트다’ 같은 선언이 일상 속의 성차별에 대응하게 하는 한 가지 동력이 될 수 있어 보이고, 그런 점에서도 무의미하지 않아 보인다.


또한 차별의 당사자(여성/흑인 등)보다, 제 3자(남성/백인)가 문제를 제기할 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여성이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을때에 비해 화를 많이 내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며 '오바'한다고 치부당할 확률이 더 높았다고 한다 (Czopp & Monteith, 2003)


또 사실여부와 상관 없이 ‘사람은 변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에 비해 문제 제기와 적극 대응을 잘 하는 편이라고 한다. ‘해봤자 무소용’보다 조금씩이라도 변할 거라 믿는 게 진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Rattan & Dweck, 2010)


오늘도 삶의 각지에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에서 편견과 싸우고 있는 여러분 모두가 더욱 힘내길 바라며, 함께 우리는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본다.

 

 

※ 참고문헌
Glick, P.,& Fiske, S. T. (2011). Ambivalent sexism revisited. Psychology of Women Quarterly, 35, 530-535.
Dardenne, B., Dumont, M., & Bollier, T. (2007). Insidious dangers of benevolent sexism: Consequences for women's performa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3, 764-779.
Grubb, A., & Turner, E. (2012). Attribution of blame in rape cases: A review of the impact of rape myth acceptance, gender role conformity and substance use on victim blaming. Aggression and Violent Behavior, 17, 443-452.
Brandt, M. J., & Henry, P. J. (2012). Gender inequality and gender differences in authoritarianism.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8, 1301-1315.
Ceci, S. J., Williams, W. M., & Barnett, S. M. (2009). Women's underrepresentation in science: Sociocultural and biological considerations. Psychological Bulletin, 135, 218-261.
Else-Quest, N. M., Hyde, J. S., & Linn, M. C. (2010). Cross-national patterns of gender differences in mathematics: A meta-analysis. Psychological bulletin, 136, 103-127.
Czopp, A. M., Monteith, M. J., & Mark, A. Y. (2006). Standing up for a change: Reducing bias through interpersonal confront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0, 784-803.
Ayres, M. M., Friedman, C. K., & Leaper, C. (2009). Individual and situational factors related to young women’s likelihood of confronting sexism in their everyday lives. Sex Roles, 61, 449-460.
Czopp, A. M., & Monteith, M. J. (2003). Confronting prejudice (literally): Reactions to confrontations of racial and gender bia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9, 532-544.
Rattan, A., & Dweck, C. S. (2010). Who confronts prejudice? The role of implicit theories in the motivation to confront prejudice. Psychological Science, 21, 952-959.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시공사 제공
시공사 제공

※ 신작소개
과학동아와 dongascience.com의 인기 작가, ‘지뇽뇽’의 신작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가 출간됐습니다. 세상은 ‘나’를 참 힘들게 합니다. 왜 아파야 청춘이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걸까요? 그냥 있는 그대로, 평온하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내 맘속을 들여다 본 듯, 공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뇽뇽 작가의 말에 귀기울여보세요. ‘나’를 사랑하며 행복해질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드립니다.


지뇽뇽 심리학 칼럼니스트

imaum02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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