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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17]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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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17]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2016.05.28 18:00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을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Jeong-il Choi(F) 제공
Jeong-il Choi(F) 제공

나희덕 시인이 하얀 연꽃, 즉 ‘백련’(白蓮)으로 유명한 전남 무안군 회산마을의 ‘백련지’(白蓮池)를 찾아갔나 봅니다. 하지만 시인이 그곳을 방문한 때는 일반 관광객처럼 개화기에 맞춘 여름이 아니라 늦가을이나 초겨울쯤이었나 봅니다. 연꽃도 연잎도 연밥도 연못 속으로 사라지고 “수많은 槍[창]” 같은 연꽃 줄기만 남아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는 쓸쓸한 백련지에 서 있었나 봅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시의 호흡이나 시의 연상(聯想)을 보아하니, 아마도 이 시는 시인이 방문했을 당시의 텅 빈 그곳 백련지에 서서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단번에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시의 한 행 한 행이 말의 실타래에 술술 감겨오니 말입니다. 그런 이 시는 전형적인 ‘의인법’(擬人法)의 수사로 씌어져 있습니다. 즉, 연꽃의 총체인 ‘연’(蓮)을 삼인칭 대명사 “그”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연꽃의 생장을 통해 마치 수행자 같은 인생을 연상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읽어나가다가 3연에 가서는 눈치 빠른 독자라면, 시인이 연상하는 거점들 두세 가지가 눈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은 시의 공간인 ‘백련지’(白蓮池)의 동음이 낳은 연상이지 않을까요. 또한 백 년 후라는 불가능한 먼 훗날 그곳에 ‘다시 오는’ 설정은 그곳의 지명, 즉 ‘돌아올 회(回)’자를 쓴 ‘회산’(回山)에서 태어난 생각이 아닐까요. 그래서 마지막 행에서 시인은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이라며 ‘회산’(回山)을 강조했겠습니다.

 

그리고 고대 인도의 바라문교(婆羅門敎)나 불교를 상징하는 꽃인 ‘연꽃’은 자연스레 ‘윤회’(輪廻)를 떠올리게 합니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그 열매인 연밥을 맺고 나면 물속에 가라앉은 연밥에서 새로운 연(蓮)이 자라는 연꽃은 ‘윤회’(輪廻)의 과정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기에 시 속의 화자는 이번 방문에는 연(蓮)을 제대로 못 보지만, 기약할 수 없는 훗날에는 볼 수 있음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그렇게 시인은 훗날의 연(蓮)이 온전한 연꽃이 아닐지라도, 즉 연밥만 있는 연일지라도, 연잎만 있는 연일지라도 “빈손이라도 잡으려나”라고 소박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라며 연꽃까지 하얗게 피어난 연을 기대합니다.

 

백 년의 세월이 너무 길까요? 실제로 연꽃 씨앗인 연밥은 무척 단단하여 물 빠진 연못 바닥에서도 오랜 세월 생명력을 유지한답니다. 진흙바닥에 파묻힌 지 무려 1,300여 년 만에 발아한 해외 사례도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경남 함안의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연꽃 씨앗이 700여 년 만에 꽃을 피운 ‘아라홍련’의 실례도 있다니 말입니다. 그러니 시인이 말하는 “백 년”은 어쩌면 길지도 않은 시간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적 상상력은 과학의 발견을 ‘직관’으로 통찰하기도 합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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