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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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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어디에..

2016.05.28 16:00
며칠 전 입니다. 모 라디오 아침뉴스에서 앵커가 “인권이 좀 침해되는 일이 있더라도, 정부에서 정신장애인들을 강력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엔딩멘트를 하더군요. 
 
이 말을 듣고 멍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과연 이게 방송에서 해야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말일까요? SNS는 더합니다. 차마 옮길 수도 없는 수준의 막말과 극단적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과거 전체주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이 이슈에 대해서 사회적 갈등이 너무나도 고조되어, 어떤 주장을 하면 자칫 한쪽 입장만 옹호한다고 매도당하기 십상입니다(사실, 필자도 원고을 쓰면서 며칠을 망설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장애인은 스스로 여론을 만들거나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취약하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남역 사건과 정신보건법 개정
 
뉴스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엔딩멘트가 나오게 된 것은 최근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올해 5월 17일 서초동에 위치한 한 노래방 건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한 남성에게 피습돼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입니다.
 
가해자 남성의 진술과 조사 결과로 미루어 볼 때, 당장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조현병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경험했던 사회적, 개인적 경험으로 여성을 타깃으로 하고 있었으나, 그를 더욱 망가뜨리고 범행에 이르게 한 것은 상식 수준에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망상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뒤 이틀이 지난 5월 19일,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동안 수용과 격리 위주의 정신장애인 관리 정책이, 복지서비스와 사회복귀를 위한 정책으로 크게 방향을 전환한 것입니다. 
 
많은 관련 단체가 지적하는 것처럼, 개정된 법의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용과 격리 위주의, 일본 정신보건법을 상당부분 답습한 과거의 정신보건법을 계속 유지하지 않고 바꾼 것은 긍정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개정된 법의 중요한 방향 중 하나는, 바로 정신장애인의 사회복귀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러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이번 사건이 집단적 혐오 현상이라는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보면서 그랬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회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라이샤워 대사 피습 사건을 다른 1964년 3월 24일 재팬 타임지 호외 - Vivian Blaxell, Yellow Blood: Hepatitis C and the Modernist Settlement in Japan, The Asia-Pacific Journal, Vol. 12, Issue 18, No. 1, May 5, 2014. 제공
라이샤워 대사 피습 사건을 다른 1964년 3월 24일 재팬 타임지 호외 - Vivian Blaxell, Yellow Blood: Hepatitis C and the Modernist Settlement in Japan, The Asia-Pacific Journal, Vol. 12, Issue 18, No. 1, May 5, 2014. 제공
 
● 미국 대사를 피습한 일본의 라이샤워 사건
 
눈을 돌려 일본 사건을 보겠습니다. 1964년 3월 24일, 주일 미국 대사였던 에드윈 라이샤워는 대사관 문 앞에서 19세 남자의 칼에 찔리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를 이른바 라이샤워 사건이라고 합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S’라고 알려진 19세 남자 환자는 통합실조증(조현병의 일본용어)을 앓고 있었습니다.
 
1960년 대는 일본 사회가 전후의 극심한 혼란과 공황에서 점점 회복하여 사회적 통합과 복지 등에 조금씩 신경을 쓰던 시기였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정신장애인은 주로 가정에 설치된 감옥과 같은 장소에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이른바 ‘사택감치(私宅監置)’라고 합니다. 
 
당시 일본 정부 문서에도 종종 나오는, ‘비공식’적인 정신장애인 관리 정책이 바로 사택감치였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에게, 정신장애인은 세상에 나타나도 안되고, 그렇다고 치료적 혜택을 받을 가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패전 이후에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사택감치가 전면 금지됩니다. 환자들은 대형정신병원에 대규모로 수용되었습니다. 1960년 대는 이러한 수용 위주의 정신장애인 정책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조금씩 시작되던 시기였지요.
 
그러나 라이샤워 대사의 피습 사건은 막 싹트던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 움직임에 찬 물을 끼얹습니다. ‘같은 일본인으로 부끄럽다’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라이샤워 대사에게 ‘일본식’ 사죄를 했습니다. 
 
수치스러운 일을 저지른 정신장애인에 대해, 일본 사회의 분위기는 험악하게 바뀌고 말았습니다. 경찰은 정신장애인에 대해 보다 강력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이를 착착 실행했습니다. 이후 1984년, 우쓰노미아 스캔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의 기본적인 정신보건정책은 ‘장기 수용과 격리’였습니다. 지금도 정신병원 장기입원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그리고 한국)입니다.
 
메이지 시절, 일본에서 공공연하게 시행되던 사택감치 - 精神醫學入門、西丸四方他著、南山堂より 제공
메이지 시절, 일본에서 공공연하게 시행되던 사택감치 - 精神醫學入門、西丸四方他著、南山堂より 제공
 
●S는 왜 미국 대사를 죽이려 했나
 
S는 왜 미국 대사를 죽이려고 했을까요? 사건 이후, S는 도립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당시 차트에 의하면, S는 같은 반의 여학생들 때문에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선생님이 남학생을 모두 학급의 앞부분에 앉게 하고, 여학생을 모두 뒷부분에 앉게 해주면 고마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여학생과 떨어져 있을 수 있으므로).
 
또 학교에서는 30센티미터 떨어져서 책을 읽으라고 가르쳐 주었는데, 이런 잘못된 지침으로 인해서 자신이 근시가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적당한 거리는 35센티미터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의견을 신문사에 보내거나, 문부성에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아무런 답이 없었지요. 종전 이후 일본은 사실상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래서 S는 남녀가 한 반에서 수업을 받거나, 30센티미터 떨어져서 책을 읽으라는 식의 부당한 피해가 미국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 대사를 습격하여 자신의 의견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S는 전혀 반성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다고 진술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특징적인 형태의 피해 망상입니다. 일찍이 카를 야스퍼스는 조현병의 망상이 ‘불가해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망상은 건강한 논리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고, 심지어 스스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설득이나 교육보다는,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입니다. 
 
S는 자신이 옳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라인샤워 사건 이후로 일본의 수많은 정신장애인이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되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정신장애인들이, 정신장애를 앓는다는 이유로 인생의 대부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확산 우려 
 
정신장애인이 저지른 범죄는 종종 대서특필 됩니다. 정상인과 생각의 흐름이 다른 만큼 정상인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범죄로 이어지면 더욱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고, 그만큼 사회적 관심과 지탄을 받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정신장애인은 소위 ‘정상인’들로 가득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사회적 소수자이며 약자입니다. 정신장애인도 이른바 ‘미친 사람’이라는 더욱 무시무시한 편견과 맞서 거의 절망적인 수준의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남성’이고 여성을 ‘혐오’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신장애인’이었고 ‘정상인’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사회적으로 ‘남성’이라는 강자의 위치에 있지만 ‘장애인’이라는 약자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적절한 정신약물치료를 받으면 그의 편집증은 상당히 호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조사되고 적합한 처벌이 있어야 하겠지만,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 만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혐오가 또다른 혐오로 전이 되지 않기를...
 
에드윈 라인샤워 대사는 치료를 위해서 대사직을 일시 사임하라는 조언을 거절했는데, ‘지금 사임하면 일본인은 사건에 대하여 깊은 죄책감을 느낄 것’이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치료 중 받은 수혈 합병증으로 평생 고생했지만, 그는 ‘이제 내 몸에 일본인의 피가 흐르게 되었다’면서 일본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일본 사건과 강남역 사건을 보면서, 정신장애인을 돕는 일을 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이번 사건에 깊은 절망을 느낍니다. 그리고 유명을 달리한 여성분께, 모든 정신보건 전문가들이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애도와 추모의 마음을 표하는 것에 대해서 깊이 공감합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사건입니다.
 
다만 한 정신장애인의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망상이, 정신장애인 전반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부디 ‘정신장애인은 무조건 다 세상으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든지’와 같은 분위기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혐오, 즉 ‘정신장애인 혐오’일 뿐입니다.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강남역 살인사건 용의자는 재판을 받고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잠재적 범죄자’, ‘여성혐오자’으로 오해받을까 걱정하는 수많은 정신장애인들도 이 사회가 부디 안심시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별과 혐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여성도 정신장애인도 모두 피해자일 뿐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현재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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