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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18] “죽음은 싸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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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18] “죽음은 싸지가 않다”

2016.06.04 18:00

구매자

                              장정일


  누가 죽음을 싸다 하는가
  죽음은 싸지가 않다
  살아 생전 온갖 상품의 구매자였던 당신
  당신이 죽으면
  당신은 두 눈을 감고
  마지막 구매를 해야 한다

 
  죽음은 싸지 않다
  당신이 죽으면
  장사치들이 똥파리같이 달려들어
  (여기서 내가 감히 당신을 똥과 같이 취급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너에게 대한
  점포 정리를 시작한다 우선
  전문적인 염꾼은 너에게
  바가지에 가까운 목욕비를 요구한다
  그리고 장례사는 최신 유행의
  관값을 받을 것이고
  전문적인 운구업자는
  전국운구업자협회가 정한
  협정 운임비를 받아낸다
  까다롭게 굴지 말고
  그들이 부르는 대로 후하게 주라
  시신을 비싸게 파는 자는
  천국에 가기 쉬우니
  매장업자에게
  듬뿍 무덤 판 값을 주고
  전문적으로 호곡하는
  (지금 당신은 매우 정중하게
  극히 전문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여인들에게 호곡비를 주어라

 
  되도록 너는 많이 벌어놓아야 한다
  죽음은 싸지가 않고
  너는 많은 사람을 대접해야 할 테니
  사람들이 당신의 부덕함을 흉보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당신은
  푸짐하게 대접해야 한다


  산 자를 위해 죽은 자는
  돼지머리를 삶고
  술을 내고
  떡을 구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깨끗이 손발을 닦고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왜냐하면 산 자들은 다시 깨어
  일어날 일이 많으므로)
  하얀 봉투에 섭섭하지 않은
  차비를 넣어주어야 한다
  그리고도 죽음은 싸지 않다
  죽음은 싸지가 않은 것이다
  그대는 비석을 세워야 할 것이고
  (주민등록을 석판에 새기기 위해)
  묘지 관리인에게 관리비를 납부해야 하고
  (아파트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조화 장수에게 매달의 꽃값을
  지불해야 한다
 

  살아 생전 온갖 상품의 구매자였던 당신
  당신은 죽어 비로소
  영원한 구매자가 된다
  (그야말로 뼈만 남는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이 시를 읽으니, 오래전 뉴스가 생각납니다. 어릴 적, 중동 사람들은 ‘식수’(食水)를 사 마신다는 얘기를 듣고 물이 부족하기에 그러려니 했습니다만, 선진 유럽 국가 국민들도 병에 든 ‘식수’를 슈퍼마켓에서 사 마신다 하여 꽤 저는 놀랐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제가 이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자 우리 사회도 다를 바 없어졌습니다. 당시 환경처장관이 수돗물이 식수로서 안전하다는 홍보를 하며 직접 수돗물을 떠 마시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했지만 그 즈음부터 우리 사회는 정수기를 구입하거나 생수를 사 먹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 돼버린 오늘날은 정유 값과 생수 값이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오늘날의 ‘식수’만이 아니라, 인류가 사유재산제로 사회를 이룬 이후 인간 세상은 그 무엇 하나도 구매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 됐습니다. 생활의 기본인 ‘의식주’뿐만 아니라 기호(嗜好)와 선택으로서의 교육이나 문화 활동을 고려해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구매자인 동시에 다른 구매 대상자를 위해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기어 바퀴의 멈추지 않는 운동 속에서 직업으로서의 일을 하고 그 대가인 화폐를 받아 또 다른 구매 대상자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경제사회 제도를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 유일한 방법은 국유림이나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바닷가에서 별도로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지구의 공기를 마시며 자연 생태가 저절로 생성해놓은 양식이 될 만한 것들을 수렵 채취하는 원시 상태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밖에 다른 방법은 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웅변조의 산문 형식으로 다소 길게 씌어진, 장정일 작가의 위의 시 「구매자」도 이런 우리 사회의 본질적 인식에서 시작했겠습니다. 그리고 그 인식은 ‘살아 있는 자’, ‘살아가는 자’에 대한 경제 활동을 넘어, 망인(亡人)조차도 ‘구매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생활문화에 주목합니다. 물론 그 장례를 위해 구매해야 할 온갖 것들은 망인이 남긴, 살아 있는 자들인 유족의 몫이지만 말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 직후에 그 죽음을 다뤘던 직업인들로부터 청구되는 갖가지 장례비들. 이 시에서 거론되는 입관비, 운구비, 하관비, 접객비, 묘지 관리비 등 말고도 망인을 위해(혹은 간혹 유족의 체면을 위해) 유가족이 구매(해야)하는 예의 차림의 가짓수는 양손가락을 접고 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의 차림의 비용이 많든 적든 그 주체는 이 시의 제목대로 ‘구매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적지 않은 장례비의 경제적 부담을 알기에 조문할 때 부의금 봉투를 준비합니다.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구매자’로서 살(죽을) 수밖에 없음에 장정일 같은 시인은 사고파는 관계에서만 돌아가는 세상을 응시하며 시를 씁니다. ‘그게 왜?, 그게 뭐가 문젠데?’라고 생각한다면 이 시는 한낱 쓸데없는 말로 여겨질 겁니다. 하지만 여러 예술과 종교의 본질적 문제의식이 그렇듯이, 얼핏 당연한 것 같은 현실 문제에 ‘그래야 할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진지한 인간의 진정성도 있습니다. 그 물음의 이유는 평생 ‘구매자’로서 살다 죽는 세상의 모든 이가 결국 “그야말로 뼈만 남”기 때문이 아닐까요.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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