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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나방 유전자 마침내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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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6월 06일 18:24 프린트하기

초원의 녹색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 헤엄치는 물고기가 안 보이는 개울은 시커멓고 상태가 안 좋다. 평지에는 이곳저곳 석탄과 광산에서 나온 폐기물 더미가 솟아 있다. 얼마 안 되는 나무도 제대로 못 자랐다. 보이는 새라고는 꾀죄죄한 참새 몇 마리가 전부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시커먼 폐기물이 널려 있다.


- 1851년 영국의 철도 안내문에서

 

 

아래 나란히 있는 두 사진에 등장하는 나방은 모두 몇 마리일까? 두 마리라고 답한 당신은 관찰력이 좀 부족한 것 같다. 세 마리를 보았다면 무난하다. 물론 정답은 네 마리다.

 

다윈의 자연선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던 얼룩나방(학명 Biston betularia). 깨끗한 환경에서는 지의류와 구분이 잘 안 되는 밝은 색 나방이 생존에 유리한 반면(왼쪽) 오염된 환경에서는 검은색 나방이 생존에 유리하다(오른쪽)는 실험결과가 1950년대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 에드먼드 포드 제공
다윈의 자연선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던 얼룩나방(학명 Biston betularia). 깨끗한 환경에서는 지의류와 구분이 잘 안 되는 밝은 색 나방이 생존에 유리한 반면(왼쪽) 오염된 환경에서는 검은색 나방이 생존에 유리하다(오른쪽)는 실험결과가 1950년대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 에드먼드 포드 제공

숨은그림찾기 같은 이 두 사진은 1975년 출간된 영국의 생태유전학자 에드먼드 포드의 저서 ‘생태유전학’ 4판에 나온다. 중고교 때 생물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아 이 사진!’하며 반가워할 것이다. 다윈의 자연선택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등장한 ‘얼룩나방’이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출발지인 영국은 19세기 들어 석탄 사용이 급증하면서 공업지대 주변의 환경이 급격히 나빠졌다. 글 앞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미세먼지는 명함도 내밀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1848년 영국 공업지대의 중심인 맨체스터에서 날개가 검은 얼룩나방이 처음 보고됐다. 원래 얼룩나방(peppered moth)은 이름처럼 밝은 색 바탕에 후추를 뿌린 듯 짙은 색 무늬가 흩뿌려진 날개 패턴이 나무 기둥이나 줄기를 덮은 지의류와 비슷하다.

 

그 뒤 영국 전역에서 공업지역을 중심으로 검은색 얼룩나방의 개체수가 점점 늘어가 마침내 원래 얼룩나방보다 많아지기에 이르렀다. 1896년 영국의 곤충학자 제임스 투트는 저서 ‘영국의 나방’에서 이런 변이를 다윈의 자연선택이 진행되고 있는 예라고 하면서 나방의 천적인 새의 섭식이 ‘선택압’이라고 제안했다.

 

즉 과거 공기가 깨끗할 때는 나무 기둥이나 줄기가 지의류에 덮여 있어 낮에 쉬고 있는 나방이 새의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오염으로 지의류가 죽고 검댕이(미세먼지)로 나무 기둥과 줄기가 꺼멓게 되면서 손쉬운 먹이가 됐다는 것. 반면 변이체인 검은 나방은 눈에 안 띄어 점차 개체수가 늘어났다는 얘기다.

 

50여년이 지난 뒤 영국 옥스퍼드대의 유전학자 에드먼드 포드 교수는 투트의 가설을 증명해보기로 하고 의사이자 열정적인 아마추어 인시류(나비와 나방) 연구가였던 버나트 케틀웰에게 이 임무를 맡겼고 케틀웰은 1953년 7월 그 유명한 나방실험을 진행했다. 케틀웰은 날개 밑면에 표시를 한, 밝은 색 수컷 얼룩나방 137마리와 검은색 수컷 얼룩나방 447마리를 버밍엄 인근 오염된 숲에 풀어줬다. 그 뒤 수은등과 유혹용 암컷 나방이 들어있는 포획망으로 수컷나방을 ‘회수’해 그 비율을 조사했다.

 

만일 날개색으로 인한 선택압 이론이 맞다면 검은색 나방의 생존율, 즉 회수율이 더 높을 것이다. 실험 결과 밝은 색 나방은 18마리가 돌아와 13.1%의 회수율을 보인 반면 검은색 나방은 123마리가 돌아와 27.5%의 회수율을 보였다. 실험이 멋지게 성공한 것이다. 2년 뒤 케틀웰은 추가실험 두 가지를 했는데 반복실험과 깨끗한 숲에 두 가지 나방을 풀어놓은 뒤 회수하는 실험이었다. 반복실험은 2년 전 결과를 재현했고 뒤의 실험 역시 예상대로 배경(지의류)과 구분이 잘 안 되는 밝은 색 나방의 회수율이 13.7%로 튀는 검은색 나방의 회수율 4.7%보다 더 높았다.

 

얼룩나방은 자연선택의 위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다윈의 나방’으로 불리며 생물학 교과서를 장식했다. 그러나 변이체인 검은색 얼룩나방이 언제 나왔고 게놈 수준에서 밝은 색 나방과 어떻게 다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1955년 진행된 케틀웰의 실험 장면. 나방 날개 밑에 표시를 한 뒤(왼쪽) 나무 기둥에 풀어주고(가운데)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회수해(오른쪽) 생존율을 추정했다. - Tinbergen 제공
1955년 진행된 케틀웰의 실험 장면. 나방 날개 밑에 표시를 한 뒤(왼쪽) 나무 기둥에 풀어주고(가운데)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회수해(오른쪽) 생존율을 추정했다. - Tinbergen 제공

●200여 년 전 변이체 등장한 듯

 

학술지 ‘네이처’ 6월 2일자에는 검은색 변이 나방이 보고된 지 168년 만에 마침내 변이를 일으킨 유전자를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영국 리버풀대 일릭 사케리 교수팀은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약 200년 전 얼룩나방의 17번 염색체에 있는 코텍스(cortex)라는 유전자의 첫 번째 인트론에 전이성 인자가 끼어들어가면서 검은색 변이체가 등장했다는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즉 19세기 초에 우연히 나타난 변이체가 마침 극심해지고 있던 오염으로 생존에 유리해지면서 기존의 밝은 색 나방을 대체해나갔다는 것이다.

 

전이성 인자(transposable element)는 게놈 여기저기로 옮겨 다닐 수 있는 DNA조각으로 소위 ‘정크DNA’의 주요 구성원이다. 전이성 인자 대부분은 게놈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이번 경우처럼 유전자 사이게 끼어들어갈 경우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전이성 인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과학카페 210 ‘게놈 속의 잠자는 개를 깨우지 마세요’ 참조.)

 

얼룩나방의 날개 색 변이를 일으킨 유전자가 마침내 규명됐다. 영국 리버풀대 연구자들은 2011년 얼룩나방의 17번 염색체의 40만 염기 영역 안에서 일어난 변이가 원인이라고 밝혔다(위). 그 뒤 범위를 좁히는 연구를 진행해 마침내 코텍스라는 유전자의 인트론에 2만2000 염기 크기의 전이성 인자(가운데 노란색 부분)가 끼어들어갔음을 확인했다. 아래는 전이성 인자의 구조를 상세히 규명한 데이터다.   - 네이처 제공
얼룩나방의 날개 색 변이를 일으킨 유전자가 마침내 규명됐다. 영국 리버풀대 연구자들은 2011년 얼룩나방의 17번 염색체의 40만 염기 영역 안에서 일어난 변이가 원인이라고 밝혔다(위). 그 뒤 범위를 좁히는 연구를 진행해 마침내 코텍스라는 유전자의 인트론에 2만2000 염기 크기의 전이성 인자(가운데 노란색 부분)가 끼어들어갔음을 확인했다. 아래는 전이성 인자의 구조를 상세히 규명한 데이터다.   - 네이처 제공

이번 경우에도 코텍스의 첫 번째 인트론에 전이성 인자가 끼어들어가면서 유전자의 발현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나방 날개의 비늘이 형성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쳐 색이 짙어지는 표현형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진핵생물의 유전자는 엑손(exon)과 인트론으(intron)로 이뤄져 있는데, 엑손은 아미노산으로 번역되는 부분이고 인트론은 엑손 사이에 끼어있지만 아미노산으로 번역되지는 않는 부분이다. 코텍스 유전자의 경우 엑손 9개와 인트론 8개로 이뤄져 있다.

 

역사적인 배경이 있어서 그런지 ‘네이처’는 사설로도 이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데 읽다보니 흥미로운 구절이 나왔다. 즉 1950년대 케틀웰의 실험에 설계상 문제가 좀 있었고 결국 진화론을 부정하는 창조론자들에게 이용되는 지경에 이르자 몇몇 생물학 교재에서 아예 얼룩나방 이야기를 빼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실제 필자의 집에 있는 대학교재인 ‘생명과학’(캠벨 외, 8판, 2008년)과 ‘생태학’(스미스 외, 7판, 2009년)을 뒤적거려봤는데 얼룩나방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한 세기 전에 중고교 교과서를 장식하며 다윈의 자연선택을 상징했던 사례가 어떻게 이런 논쟁에 휘말렸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번 유전자 규명이 케틀웰의 연구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시큼한 분노의 포도?

 

케틀웰 실험에 대한 문제제기에 앞장 선 사람은 미국 매사추세츠대의 동물학자 테오도르 사전트 교수다. 사전트 교수는 1960년대 여러 차례 재현실험을 했지만 새의 선택압 현상을 관찰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케틀웰의 실험이 너무 인위적이라고 주장했다. 즉 야행성인 나방이 낮에 주로 쉬는 장소는 나무 기둥이 아닐 뿐 아니라 실험에서처럼 고밀도로 나방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또 야생에서 충분한 개체수를 확보하지 못해 실험실에서 키운 나방을 같이 쓴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2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주디스 후퍼의 책 ‘나방과 인간’이 나오면서 케틀웰의 실험은 결정타를 맞았다. 책에서 후퍼는 케틀웰을 포드 교수에 이용당한 희생양으로 그리면서 실험의 결함은 물론이고 데이터도 조작됐음을 암시했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주류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실패한 나방(The moth that failed)’이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기사는 말미에 “우리시대 가장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들 몇몇이 공유한 인간의 야심과 자기기만이 얼룩나방 주위로 몰려들었다”는 책의 문구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학술지에 실린 서평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미국 윌리엄메리대학의 브루스 그랜트 교수는 ‘사이언스’에 실은 ‘시큼한 분노의 포도’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후퍼가 뛰어난 글 솜씨를 지닌 건 맞지만 여러 군데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연구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케틀웰의 실험이 완벽했던 건 아니지만 1966부터 1987년 사이 이를 보완하며 재현한 여덟 개의 독립적인 현장연구의 결과가 케틀웰의 결과를 뒷받침했다.

 

한편 1956년 영국에서 ‘청정공기법(Clean Air Act)’가 제정된 이래 공기가 서서히 깨끗해지면서 영국 리버풀 일대의 검은색 얼룩나방의 비율은 37년 만에 93%에서 18%로 급감했다. 또 검은색 나방의 비율과 대기 중 이산화황 및 미세먼지의 비율이 비례관계에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즉 이 모든 정황이 케틀웰 실험이 본질적으로 올바른 것이었음을 보여주는데도 후퍼가 너무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한편 케틀웰의 실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균형있게 평가해온 영국 케임브리지대 마이클 마제루스 교수는 논란이 창조론자들에게 이용되는 수준으로 비화하자 대규모 재현 실험을 진행했다. 즉 2001년부터 2006까지 6년 동안 깨끗한 숲에 얼룩나방 4864마리를 풀어준 뒤 잡아먹히는 비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 하루가 지날 때 검은색 나방의 생존율이 밝은 색 나방보다 평균 9% 낮았다. 참고로 얼룩나방은 성체가 된 뒤 수일 만에 죽는다. 즉 케틀웰의 실험이 멋지게 재현된 것이다.

 

아울러 마제루스는 케틀웰 실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장소 문제도 실험을 해봤다. 즉 야생에서 얼룩나방은 나무기둥에서 낮을 보내지 않는다는 비판의 정당성을 알아본 것이다. 그 결과 낮에 얼룩나방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은 나뭇가지로 52%에 이르렀고 대부분(89%) 아래쪽에 있었다. 그러나 35%는 나무기둥에서 발견됐고 대부분(35%)은 북쪽에 있었다. 즉 직사광선을 피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머지 13%는 잔가지에 붙어 있었다. 즉 케틀웰의 실험이 장소면에서도 큰 문제는 없다는 말이다.

 

여담이지만 ‘나방과 인간’이라는 후퍼의 책 제목과 ‘시큼한 분노의 포도’라는 서평의 제목 모두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다. 즉 ‘나방과 인간(Of Moths and Men)’은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을, ‘시큼한 분노의 포도(Sour Grapes of Wrath)’는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서 따왔다. 스타인벡의 소설을 갖고 와 생물학자들을 폄훼한데 대해 스타인벡의 소설로 응수한 것이다(저자가 맛이 갔다고(sour)).

 

‘생명과학’과 ‘생태학’ 10판(각각 2012년과 2014년 9판이 나왔다)을 만들 때 이번 연구결과를 포함해 다윈의 나방 이야기를 소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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