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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는 더우면 벗는다: ‘자연스럽게’ 행동할 때 반응하는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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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는 더우면 벗는다: ‘자연스럽게’ 행동할 때 반응하는 디자인

2016.06.15 06:00

옛날 옛적 한옛날에 해와 바람이 누가 더 힘이 센지 내기했습니다. 해와 바람은 마침 지나가는 나그네를 보고 그의 외투를 누가 벗겨내는지 겨루기로 했습니다. 바람이 먼저 나서서 온 힘을 잔뜩 줘 세게 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람이 힘을 쓸수록 나그네는 더욱 세게 외투를 단단히 여밀 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해가 나섰습니다. 따뜻한 햇빛을 내려 쬐자 나그네는 자연스럽게 외투를 벗었습니다.

 


어릴 때 누구나 한번 쯤이면 다 들어봤을 이솝 우화다. 이 짧은 우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뭘까? 바로 ‘자연스럽게’이다. 더워지면 외투를 알아서 벗는 건 어린 아이가 듣고도 충분히 수긍이 갈 만큼 해가 바람을 이긴 논리다. 그런데 해와 바람의 동화를 듣고 자란 우리들은 왜 막상 어른이 되어서는 자연스럽지 못한 사용 방식을 자꾸 만들어 내서 고객을 괴롭히는 걸까?


아래 사진은 필자가 정기적으로 수업을 하는 강의실의 문고리다. 이 손잡이의 엽기적인 사용 방식덕분에 매 학기 수업에서 재미있는 사건이 꼭 한번은 발생한다. 수업을 하다 보면 개인 용무로 급히 강의실을 나갔다 오려는 학생들이 있기 마련이다. 학생은 은밀히 일어나 문으로 달려가고, 나는 짐짓 모른 척 하고 강의를 계속 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학생은 조용히 나가려다 문을 열지 못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 하는 것이다.

 

김성우 제공
강의실 문 손잡이의 모습. 자연스럽게 문고리를 잡고 내리면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오히려 문이 잠겨버린다. 김성우 제공

그러면 나는 학생에게 다가가서 “어딜 몰래 탈출하려고, 내 수업이 그렇게 재미없냐?” 라며 혼내주는 척하곤 문을 열어준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이 손잡이는 자연스럽게 밑으로 잡아 내리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면 오히려 문이 잠겨버린다. 손만 올리면 금방이라도 내려갈 듯한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잡고 그대로 밀어야만 열린다. 아래로 내려야만 할 것 같은 행동을 유도하지만 사실은 정 반대로 동작하는 이 문은 행동유도성을 잘못 만든 사례이다.


행동유도성(affordance)은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사물의 속성을 말한다. 사물의 모양새가 사용자의 특정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발 시키는 것이다. 공을 생각해보자. 주먹만한 공을 볼 때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손에 쥐고 던지거나 튕겨보고 싶어진다. 벽이나 바닥에 공을 던져 튕겨보고 싶지 굳이 물거나 뜯어봐야겠다는 생각은 잘 안 든다.

 

강아지가 공을 물고 뜯는 것은 행동유도성에 따른 행위일지도 모른다! - 오가희 기자 solea@donga.com 제공
강아지가 공을 물고 뜯는 것은 행동유도성에 따른 행위일지도 모른다! - 오가희 기자 solea@donga.com 제공

위에 잘못된 문의 손잡이를 예로 들었으니 이번엔 행동유도성이 제대로 탑재된 문고리를 보자. 밀어야 열리는 왼쪽과 당겨야 열리는 오른쪽 손잡이의 형태는 그에 맞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발시킨다.

 

In & Out Door - Samsung Art & Design Institute (sadi) 제공
In & Out Door - Samsung Art & Design Institute (Jeon Hwan Soo) 제공

아래 푸시(push)형 버튼 그림을 보자. 이 버튼은 누구나 다 눌러보고 싶게 생겼다. 그냥 그렇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처럼 행동유도성이 잘 배어있는 UX는 사용자 메뉴얼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쉽고 직관적인 사용 방식을 제공한다. 더워지니까 외투를 벗듯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되기 때문이다.

 

푸시(push)형 버튼 - pixabay 제공
푸시(push)형 버튼 - pixabay 제공

이 버튼을 보고 굳이 잡아서 윗 방향으로 끌어 올리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위로 잡아 올려야만 작동하는 버튼이라면? 아마도 성장 배경에 문제가 있었던 누군가의 뒤틀린 장난질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들 것이다. 적어도 해와 달의 우화를 들으며 컸다면 그런 엽기적인 디자인은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UX 기초를 가르치는 필자의 수업이 열리는 바로 그 강의실의 문고리 부터가 행동유도성을 위배하는 게 우리가 처한 우울한 현실이다. 당신이 지금 만드는 그 상품은 과연 사용자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성공적으로 유도하고 있는가?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기 전에 한번 만이라도 고민해 보자.

 

 

※필자소개

김성우.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 인터랙션 디자인 교수. “기술 너머의 철학 (Philosophy beyond Technology)”을 추구하는 경험 디자인(Experience Design)의 구도자로 경험 생태계, 기업의 전략적 UX 경영, 공공 서비스 디자인, 차세대 콘텐츠 경험 등을 연구한다. 다학제적 융합과 통섭이 요구되는 경험 디자인을 업으로 삼다보니 자연스레 국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와 현업을 통해 전문성을 쌓아왔다. 미국 실리콘 벨리에서 UI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국내에선 삼성전자와 KT에서 UX 연구와 개발을 하였고, 싱가포르에서 필립스 디자인(Philips Design)의 UX 디자인 컨설턴트로도 근무하였다. 학부 및 대학원에서 컴퓨터 공학과 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를 전공하였으며 현업 시절 UX 경영 공부를 목적으로 MBA 과정을 밟았다.

 

편집자주: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주변에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인체공학적, 사용자친화적…. 사람이 이용할 때 편리하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통틀어 UI 혹은 UX 디자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UI(User Interface)는 사용자가 대상물을 통해 과업을 수행하고자 할 때 조작하게 되는 부위와 조작의 결과로 나오는 대상물의 반응을 설계하는 분야, UX(User Experience)는 UI를 포함해 사용자가 어떤 대상을 접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상과 느낌의 축적. UX 디자인은 그런 인상과 느낌을 설계하는 분야라는데, 대체 무엇이고 어디에 어떻게 적용되는 걸까요? 김성우 국민대 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의 칼럼으로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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