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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20]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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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詩) 20]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2016.06.25 18:00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김사인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고요?)
  안 되겠다면 도리 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 이성선(李聖善) 시인(1941~2001. 5)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부분을 빌리다.

 

Keehwan Kim(F) 제공
Keehwan Kim(F) 제공

위의 시의 두 시인은 참 착한 사람입니다. 기억건대, ‘자기 생각이 늘 옳다고 믿는 사람은 정치가나 투사가 되고 자기는 늘 잘못됐다고 여기는 사람은 예술가나 종교인이 된다. 옳다는 신념 없이 싸울 수 없고 잘못했다는 원죄 의식 없이 느낄 수 없다’는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 선생의 유고 일기 『행복한 책읽기』의 한 대목이 먼저 떠오릅니다. 시인의 ‘덕목’은 우선 ‘善’(착함)이 아닐까 합니다. 시인으로서의 착함은 무얼까요. 자기 바깥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아닐까요. 마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액자소설’같이 쓰인 이 시 속의 두 편의 시가 바로 그런 ‘미안한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그중 먼저 「다리」를 읽어보면, 다리를 건너는 상반된 두 사람을 통해 시인의 착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앞사람은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 가다가 쉬며” 천천히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고 뒷사람은 같은 다리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이 시의 이성선 시인에 따르면, 그 후자는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이를 탓하는 게 아니라(바삐 건너가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요), ‘다리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겁니다. 생명도 없는 사물(다리)에게도 정을 주는 ‘착한 마음’이 이 시를 낳았습니다.


시 속의 두 번째 시 「별을 보며」(앞부분)에서는 사물에 대한 이성선 시인의 ‘착한 마음’이 ‘미안한 마음’으로까지 전이됩니다. 별과 하늘을 자주 바라보아 그 별과 하늘이 시인의 잦은 시선에 때 묻어 “더럽혀지지 않을까” 걱정하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착한 마음’에서 비롯된 감성 하나만으로도 시 한 편을 지을 수 있나봅니다. 그러니 ‘마음의 하얀 안경’이라고 다르게 명명할 수 있는 ‘善’(착함)이 앞서 시인의 우선적 덕목이라고 했듯이 그 말은 논리적으로 거짓 명제는 아닐 듯합니다.


서두에서, 이 시의 김사인 시인도 참 착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김사인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이름의 한자 그대로 ‘착한’ 이성선(李聖善) 시인을 조명합니다. 그러고는 고인이 된 시인의 명복을 빌 듯, 그의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이라며 “하느님”께 기원합니다.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을 안쓰러워하는 김사인 시인의 다스한 마음이 그렇습니다.


동시에 그 다스한 마음은 쓸쓸한 마음입니다. 시인이 ‘자발적으로’ 떠나버린 이 세상은 이제 그가 없기에, 적막하기 그지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사인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붙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이 시의 제목을 대하면, 마치 ‘시인이여, 왜 그리 이 세상의 다리를 서둘러 건너버리셨소’라고 애처롭게 말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작고한 시인의 시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 있네”라고 읊조리는 듯합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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