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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전 당나라 사람들은 오로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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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전 당나라 사람들은 오로라 봤다!

2016.06.27 17:00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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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해 ‘Proof(프루프)’라는 술의 과학에 대한 책을 번역하다가 흥미로운 구절을 봤다. 즉 증류주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 11세기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글에 나온다는 것이다. 즉 소동파의 ‘물류상감지(物類相感志)’라는 책에 “술에 불이 붙으면, 푸른 천 조각으로 덮어 껐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술에 불이 붙을 정도면 알코올 도수가 꽤 높다는 뜻이고 따라서 소주나 위스키 같은 증류주라는 말이다.

 

적기(赤氣)의 실제 모습. 미국 텍사스주 서부에서 2013년 10월 29일 새벽 찍은 사진이다. 북위 32도 내외인 중저위도에서 이 정도 밝기의 오로라가 나타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 NOAA 제공
적기(赤氣)의 실제 모습. 미국 텍사스주 서부에서 2013년 10월 29일 새벽 찍은 사진이다. 북위 32도 내외인 중저위도에서 이 정도 밝기의 오로라가 나타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 NOAA 제공

저자에 따르면 증류기는 이보다 훨씬 전인 3세기 무렵 이집트에서 발명된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와인으로 증류주(브랜디)를 만드는 시도를 했겠지만 아무튼 증류주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1세기 중국 문헌에야 나온다는 것이다(그것도 상황 설명으로).


필자는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다가 에세이집 ‘생활의 발견’으로 유명한 20세기 중국 문필가 임어당(린위탕)이 쓴 ‘소동파 평전’이 번역돼 있다는 걸 발견했다. 비록 ‘물류상감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지만 이 책을 통해 유명한 시인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던 소동파라는 멋진 인물의 삶에 대해 알게 됐다.


중력파나 게놈처럼 요즘 과학 대부분은 그 개념이 나온 게 100년 심지어 한 세대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옛 사람들과 단절된 것 같아 왠지 삭막한 느낌도 든다. 이를 보상하려고 그냥 넘어가도 될 사소한 언급에 매달려 과학자가 아닌 시인의 전기까지 읽게 된 걸까.

 

중국 명나라의 점술서 ‘天元玉曆祥異賦(천원옥력상이부)’에는 중저위도 지역에서 나타나는 붉은 오로라인 ‘적기(赤氣)’를 묘사한 그림이 있다. - 일본국립자료원 제공
중국 명나라의 점술서 ‘天元玉曆祥異賦(천원옥력상이부)’에는 중저위도 지역에서 나타나는 붉은 오로라인 ‘적기(赤氣)’를 묘사한 그림이 있다. - 일본국립자료원 제공

붉은 증기와 흰 무지개


학술지 ‘일본천문학회출판’(PASJ) 6월호에는 중국의 역사서 두 종에서 당나라 시대에 오로라로 추측되는 대기현상을 언급한 구절들을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945년 완성된 후진의 ‘구당서(舊唐書)’와 소동파가 살았던 1060년 완성된 송의 ‘신당서(新唐書)’다. 오로라는 극광(極光)이라는 번역어가 뜻하듯이 극지방(고위도)의 하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알고 있던 필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오는 플라스마 상태의 입자의 흐름, 즉 태양풍이 지구 자기권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태양풍 입자 일부가 대기권으로 유입돼 공기 입자와 충돌하며 얻은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통 오로라는 위도 60~80도인 고위도 지방에서 나타나고 태양의 활동에 따라 규모가 변한다.


그런데 태양의 활동이 아주 강할 때는 한반도 같은 중저위도 지역에서도 가끔 오로라가 관측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고위도 지역에서 보이는 것 같은 현란한 대기현상도 아니고 빛도 희미해 오로라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드물게는 역사서에 기록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이런 기록이 태양 활동이 예외적으로 강력했던, 즉 엄청난 태양풍을 발생시킨 적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중국 문헌을 검색한 것이다.


논문을 보니 이미 오로라에 대한 문헌연구가 꽤 있었다. 그 결과 ‘붉은 증기(赤氣)’라는 용어가 오로라를 뜻한다는 주장이 이미 1930년대 나왔다. 일본 교토대 연구자들은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특이한 무지개(虹蜺(홍예))’와 ‘흰 무지개(白虹)’이라는 표현도 오로라를 뜻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구당서’와 ‘신당서’ 데이터베이스에서 이 두 단어를 검색했다. 그 결과 오로라일 가능성이 높은 구절을 여럿 찾았다.


둘 다 290년 당나라 역사(618~907년)를 다룬 책이지만 ‘구당서’에는 오로라로 추정되는 ‘백홍’이 두 곳, ‘홍예’가 한 곳 나온 반면 ‘신당서’에는 ‘백홍’이 아홉 곳, ‘홍예’가 한 곳 나왔다. ‘구당서’의 백홍 한 곳과 홍예는 ‘신당서’와 겹치므로 실제 관측 횟수는 백홍이 열 번, 홍예가 한 번인 셈이다. 참고로 ‘백홍’은 해무리나 달무리를 뜻하는 표현이기도 해서 이런 맥락, 즉 태양이나 달과 함께 언급된 경우는 제외했다.

 

‘천원옥력상이부’에는 ‘흰 무지개(白虹)’를 묘사한 그림도 있다. 최근 백홍 역시 오로라라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나왔다. - PASJ 제공
‘천원옥력상이부’에는 ‘흰 무지개(白虹)’를 묘사한 그림도 있다. 최근 백홍 역시 오로라라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나왔다. - PASJ 제공

과거 태양의 활동 추측하는데 도움


그런데 저자들은 무슨 근거로 백홍과 홍예가 오로라를 뜻한다고 주장하는 걸까. 글자 그대로라면 좀 독특한 무지개 아닐까. 무엇보다도 이런 현상이 관측되는 시점이 중요하다. 오로라는 지상에서 100km는 떨어진 상층 대기권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낮에는 햇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반면 무지개는 공기 중의 물방울에 햇빛이 반사, 굴절돼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당연히 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헌에서 뽑은 열한 곳 가운데 세 곳에서 때를 언급하고 있는데 다 밤이다. 아래 구절들이다.


“882년 10월 밤 서쪽 하늘에서 백홍이 관측됐다.” (‘구당서’)
“757년 2월 20일 난양(북위 33도) 밤하늘에 100장(丈, 거리 단위로 정확히 어느 정도를 뜻하는지는 모름)이 넘는 범위에서 백홍 네 개가 관측됐다. (‘신당서’)
“886년 11월 밤 서쪽 하늘에서 백홍이 관측됐다.” (‘신당서’)


그런데 흰색(백색광) 오로라도 있나? 보통 오로라는 녹색 아닌가? 이에 대해 저자들은 먼저 중저위도 지역에서 관측한 오로라는 고위도의 오로라에 비해 희미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진짜 흰색은 아니었겠지만 색이 흐릿하다보니 허옇게 보인 것이라는 말이다. 또 하나 추측은 ‘오행설(五行說)’에 따라 웬만하면 흰색, 적색, 청색, 황색, 검정색 가운데 하나로 나타내려했고 따라서 희미한 녹색 또는 노란색 오로라를 ‘흰 무지개’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보통 중저위도 지역의 오로라, 즉 적기(赤氣)는 고도 200km 이상에 있는 산소에서 나오는 파장 630나노미터의 빛이다. 따라서 이보다 드문 백홍(白虹)은 태양의 활동이 예외적으로 강할 때 관측되는 현상일 것으로 저자들은 추측했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 같은 지역이고 천문기록 문화를 공유한 한국과 일본의 문헌도 면밀히 검토해본다면 당나라 때 오로라 관측 기록과 일치하는 기록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 문득 창밖을 보다 적기나 백홍을 관측하는 날이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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