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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다 이겼는데 전쟁을 졌다: 경험의 파편 vs 총체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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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다 이겼는데 전쟁을 졌다: 경험의 파편 vs 총체적 경험

2016.07.06 14:00

전투는 다 이겼는데 전쟁을 지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비슷한 의미로 ‘선수 개개인은 훌륭한데 팀은 예선전에서 탈락했다’도 있다. 실제 2014년 월드컵에서 화려한 삼바축구의 개인기로 유명한 브라질 팀이 무려 7:1로 독일에 패한 바 있다. 좀 더 센 표현으로 ‘부위별 성형은 다 잘 되었는데 거울 앞엔 괴물이 서 있더라’도 있겠다.


디자인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경험의 파편(experience bits)이라 하는데 작은 경험 요소들 각각은 좋은 경험을 제공하지만 요소 간의 전체적인 짜임새와 응집력이 취약해 결과적으로는 안 좋은 고객 경험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경험의 파편과 반대편에 있는 건 총체적 경험(unified experience 또는 holistic experience)이다.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하는 전체의 여정(journey) 속에서 각 경험 요소가 모두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축구로 따지면 선수 개인의 역량 뿐만 아니라 팀플레이가 훌륭한 조직력에 해당한다.  


주변을 한 번 돌아보자. 사용자의 불만은 계속 터져 나오는데 그 원인이 불분명하다. 유관 부서와 직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더 열심히 하는데도 이상하게 해결이 안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서비스의 각 경험 요소가 짜임새 있게 연결되어 있지 않는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 각 경험 요소를 계속 망치로 두드린다고 - 이를테면 직원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라고 다그친다든가 -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얼마 전에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그 날 할 일은 소변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받은 뒤 그 결과에 대해 의사 선생님의 의견을 듣는 것이었다. 한 달 전쯤 예약했을 때의 순서대로 하자면 1. 초음파 검사 (10:30 예약) 2. 소변 검사 (별도의 시간 예약 없음) 3. 의사 선생님 진료 (11:30 예약) 이었다. 

  
그런데 방문 전날에 병원에서 이런 문자를 보냈다 (실명 등만 빼고 문자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안녕하세요. 내일 진료 전 미리 오셔서 접수처에서 도착 확인 → 수납 → 채혈실에서 소변 검사 하시고 대기실에서 대기하여 주세요. 소변 검사 결과는 접수 후 2시간 소요되니 이점 참고하여 미리 검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채혈실은 8:30부터 시작합니다 (초음파 있을 시 예약된 시간에 초음파검사 진행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건 소변 검사와 초음파 검사의 결과를 놓고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었다. 따라서 11:30에 예약된 의사 선생님 진료보다 최소 2시간 전에는 소변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문자를 받고나서나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날 병원에서 또 다른 문자가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문자 내용 그대로 옮겼다)


“K님, XX월 XX일(X요일) XX:XX 영상의학과초음파 어린이병원 X층 소아초음파실 초음파 검사와 소변검사가 함께 있는 경우 반드시 초음파 먼저 진행하세요. 소변 가리면 초음파 검사 전 소변 참고 오세요(최소 1시간) (소변 참고 오세요) 감사합니다.”
 

두 문자를 본 후에 머리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뭔가 스케줄이나 할 일의 순서가 꼬인 느낌이었다. 문자에 따르면 소변 검사와 초음파 검사 사이에도 일의 순서가 정해지는 것이었다. 마치 암호를 풀듯 두 문자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해독(?)해 보았다. 인터넷까지 뒤져 초음파 검사와 소변 검사에 순서가 정해지는 배경도 알아보았다. 정리해보자면,


• 소변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2시간 이상 걸리니까 의사 선생님 만나기 최소 2시간 전에 할 것
• 초음파 검사를 함께 받는 것이면 소변 검사 하기 전에 초음파 검사를 먼저 받을 것
• 소변이 방광에 차 있어야 초음파 검사가 더 잘 진행된다고 함 (인터넷 검색 결과로부터의 추정)


그렇다면 병원에 가서 할 일의 순서는 아래와 같은데, 문제는 예약 시간의 안배였다.


1.초음파 검사 (10:30 예약)
2.소변 검사 (시간 예약 없지만 3번보다 2시간 전에 수행)
3.의사 선생님 진료 (11:30 예약)


3번의 의사 선생님 진료가 11:30에 잡혀 있으니 그보다 2시간 전이면 초음파 검사 예약 시간보다도 1시간 더 빠른 9:30에 소변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10:30에 예약된 초음파 검사는 소변 검사보다 먼저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0:30에 약 30분 걸리는 초음파 검사를 하고, 11시에 이어서 소변 검사를 하고나서 2시간 후인 1:30으로 진료 예약을 바꿔야 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초음파 검사의 예약 시간을 9시로 더 앞당겨야 한다. 어느 선택을 하든 두 개의 예약 중 하나는 바꿔야 한다.


아마도 윗 설명을 읽은 독자도 머리가 좀 아팠을 것 같다. 복잡한 스케줄 하며, 왜 일정과 일 처리 순서가 꼬였는지 하며, 그것을 풀려면 어떤 해결안들이 있는가 하며… 무엇보다 이를 일일이 설명하는 글을 따라 읽으며 아마도 ‘도대체 내가 왜 이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건데?’란 의구심까지 들었을 것이다.


바로 그거다. 필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필자 역시 ‘왜 내가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란 의구심이 들었다. 이 모든 예약은 병원에서 알아서 잡아준 것이었다. 즉 필자가 속칭 ‘갑질하며' 내 맘대로 스케줄을 잡은 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필자는 그 대학 병원의 대표 예약 번호로 전화하여 상담원에게 일일이 상황 설명을 했고 그 상담원도 소아과, 영상의학검사실(초음파) 및 채혈실(소변검사)에 제각각 연락하여 꼬인 일정을 푸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즉 이 문제로 고객이 수고를 해야 했으며 또 다른 직원의 업무 시간과 노력 (경영 관점으로는 비용)이 들어가야 했다.


앞서 말했듯 한 달 전 예약 과정에서 병원 직원은 모두 친절했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 그러나 그 직원들이 각각 자신의 위치에서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했음에도 고객에게 끼친 고통(painpoint)을 방지하지는 못했다. 이런 건 각 부서에 속한 직원의 개인적 인품과 업무 역량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보다 훌륭한 서비스가 되려면 부서 간의 업무 관계가 내부적으로 정리되고 이것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스케줄을 고객에게 알려주었어야 했다. 이를테면 소변 검사와 초음파 검사 간의 업무 순서와 그 의학적 배경은 병원 관계자가 필자보다 훨씬 잘 파악하고 있을 내용이다. 이걸 의료 분야의 문외한인 고객이 인터넷을 찾아보며 풀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자식이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하는 것 만으로도 이미 불안한 마음 상태의 고객에게 말이다.


‘고객을 불편하게, 불안하게, 문제는 알아서 풀게, 그리고 우리도 코스트(cost)가 들게’ 가 자사의 서비스 모토가 아니라면 오늘부터라도 경험의 파편을 너머 고객에게 제공되는 경험 요소 간의 관계를 따져보면서 총체적인 경험의 고민해 보자.

 

 

※필자소개

김성우.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 인터랙션 디자인 교수. “기술 너머의 철학 (Philosophy beyond Technology)”을 추구하는 경험 디자인(Experience Design)의 구도자로 경험 생태계, 기업의 전략적 UX 경영, 공공 서비스 디자인, 차세대 콘텐츠 경험 등을 연구한다. 다학제적 융합과 통섭이 요구되는 경험 디자인을 업으로 삼다보니 자연스레 국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와 현업을 통해 전문성을 쌓아왔다. 미국 실리콘 벨리에서 UI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국내에선 삼성전자와 KT에서 UX 연구와 개발을 하였고, 싱가포르에서 필립스 디자인(Philips Design)의 UX 디자인 컨설턴트로도 근무하였다. 학부 및 대학원에서 컴퓨터 공학과 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를 전공하였으며 현업 시절 UX 경영 공부를 목적으로 MBA 과정을 밟았다.

 

편집자주: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주변에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인체공학적, 사용자친화적…. 사람이 이용할 때 편리하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통틀어 UI 혹은 UX 디자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UI(User Interface)는 사용자가 대상물을 통해 과업을 수행하고자 할 때 조작하게 되는 부위와 조작의 결과로 나오는 대상물의 반응을 설계하는 분야, UX(User Experience)는 UI를 포함해 사용자가 어떤 대상을 접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상과 느낌의 축적. UX 디자인은 그런 인상과 느낌을 설계하는 분야라는데, 대체 무엇이고 어디에 어떻게 적용되는 걸까요? 김성우 국민대 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의 칼럼으로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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