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피할 수 없을 땐 자기합리화?!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6년 07월 05일 14:01 프린트하기

불행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 속에서는 현실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불행과 부조리들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피할 수 없는 나쁜 일들을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맞서 싸우는 것 못지 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흔한 대응법은 ‘있을 법한 일’ ‘원래 그런 것’ ‘다른 데도 다 마찬가지’ 등 괴로움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사람들은 실제로 불행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느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심지어 그 불행의 내용이 불합리하고 비도덕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Kristin Laurin과 동료들은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한 그룹에게는 어떤 이유로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 즉 캐나다에서 벗어나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글을 읽게했다(탈출 불가 조건). 반면 다른 집단에게는 반대로 앞으로 이민이 점점 쉬워질 것이라는 글을 읽게했다(탈출 가능 조건).


그리고 나서 사회 문제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예를 들면 같은 일을 해도 남성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등의 성차별 문제에 대해 이것이 사회의 불공정함을 드러내는 것인지, 혹은 여성이 원래 남성보다 열등하기 떄문인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결과 앞으로 이민이 점점 더 어려워져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탈출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탈출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에 비해, ‘우리 나라는 좋은 나라’ 식의 믿음을 보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탈출이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성차별이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역량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문제의 존재와 그 심각성을 보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더 놀라운 점은 이것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확인한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이렇게 ‘우리 사회는 잘 돌아가고 있으며 문제는 개인들의 탓, 개인들이 노력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체제 정당화(system justification) 사고라고 한다. 어떤 문제와 그 문제가 존재하는 사회로부터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매우 불리한 문제라고 해도 아예 문제를 바라보지 않거나 자신이 속한 사회를 정당화하면서 일시적인 위안 또는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애쓰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실험을 통해 연구자들은 이런 체제 정당화가 ‘자국’의 부조리에 한해서 나타남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 없는 외국의 문제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비판하면서, 그 문제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인 경우에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 태도가 다른 경향을 보였다. 남의 불행은 굳이 합리화할 필요가 없지만 내가 처한 불행은 합리화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재 다니는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편입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글을 읽게 한 실험에서는, 편입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학교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에 대해 비교적 호감을 덜 보이고 도울 의향도 적게 보였다.


한 번 발을 담그면 영원히 간다든가, 우리는 영원히 함께라든가, 좁은 바닥 등의 수식어가 붙는 환경에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을 겪었을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적극적으로 그 부조리를 감추고 부정하려 애쓸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떠나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뗄 수 없는 꼬리표’ 같이 조직의 정체성이 나 자신의 정체성에 차지하는 부분도 더 커질 것이다. 때문에 더 실제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조직을 만들면 좋을텐데, 많은 경우 그건 힘이 들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 합리화로 ‘내 마음 속’ 조직의 정체성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멀쩡하고 꽤 도덕적인 사람들이 타인과 외집단의 불의에 대해서는 입에서 불을 뿜으면서도 그것이 ‘자기’와 관련된 문제가 되면 갑자기 ‘이건 좀 다르지’라며 그 불의가 불의가 아닐 수도 있는 이유에 대해 100가지 이유를 줄줄 읊어대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내부 고발자가 홧김에 또는 편협한 마음에, (열심히 합리화하며 적응해가는 나와 달리) 조직에 적응을 못해서 조직의 이미지를 실추했다고 인지하는 현상 또한 연장선 상에 있겠다.


일상의 사소한 괴로움이나 자연재해 마냥 찾아오는 불행들의 경우 적당한 합리화가 의미 부여나 행복감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합리화의 대상이 비도덕적이거나 부조리한 일인 경우, 또 합리화를 ‘타인에게’까지 강요하는 상황인 경우라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태도를 벗어나 조금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참고문헌
Laurin, K., Shepherd, S., & Kay, A. C. (2010). Restricted emigration, system inescapability, and defense of the status quo: System-justifying consequences of restricted exit opportunities. Psychological Science.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시공사 제공
시공사 제공

※ 신작소개
과학동아와 dongascience.com의 인기 작가, ‘지뇽뇽’의 신작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가 출간됐습니다. 세상은 ‘나’를 참 힘들게 합니다. 왜 아파야 청춘이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걸까요? 그냥 있는 그대로, 평온하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내 맘속을 들여다 본 듯, 공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뇽뇽 작가의 말에 귀기울여보세요. ‘나’를 사랑하며 행복해질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드립니다.


지뇽뇽 심리학 칼럼니스트

imaum0217@naver.com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6년 07월 05일 14:01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16 + 9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